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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패감시단 요원이 담을 넘어 선물을 전달하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이화영
▲ 신문으로 가리며 현장을 살피고 있는 감시단 요원.
ⓒ 이화영

이번 설에도 공무원들의 촌지 관행이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일부 공기업 직원들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설 연휴를 전후 해 수천~수억원대의 뇌물을 받거나 공금을 빼돌리다가 적발됐다. 또한 건설교통부 감사팀장 H씨가 외부 인사로부터 '떡값'을 받은 혐의로 국무총리실 암행감찰반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정부패추방운동충북본부(아래 부추본)는 설 명절을 앞두고 지난 7일부터 16일까지 부패를 근절하자는 취지로 10일 동안 부패 감시단을 운영했다.

이번 활동의 결과는 고스란히 동영상 카메라에 담겨 공개를 앞두고 있다. 7일간 이들의 현장 활동을 동행 취재했다.

[장면 ①] 2월 14일, 충북 B군청 소속 H사무관 집 앞

▲ 양손에 선물을 들고 H사무관 집으로 향하고 있는 사람이 포착됐다.
ⓒ 이화영
17시 45분, 회색 스포티지 차량에서 내린 한 남성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이 남자는 분홍색 보자기에 싼 선물을 차에서 내렸다. 전달하려는 집 대문이 잠겨있자 전화를 해보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는지 선물을 차에 싣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18시, 흰색 무쏘 차량에서 안경을 낀 한 중년 남자가 내렸다. 그는 빨간색 쇼핑백을 집어든 뒤 주변을 살핀 후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담을 넘어 조심스럽게 선물을 내려놓고 돌아갔다.

곧바로 18시 1분, 쥐색 렉스턴 차량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렸다. 그는 쇼핑백에 담긴 2개의 선물을 들고 방문했는데, 대문이 잠겨있자 담 너머로 선물을 놓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어 18시 44분, 옵티마 차량에서 내린 한 남성이 집안에 놓여있는 선물들을 자신이 타고 온 차에 실었다. 그는 H사무관의 아들로 추정된다.

18시 48분,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 방문했다가 헛걸음을 한 회색 스포티지 차량이 이 곳을 다시 찾았다. 아들로 보이는 사람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감시단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진입했다. 그러자 상황을 감지했는지 받았던 선물을 스포티지 소유주에게 다시 되돌려 줬다.

[장면 ②] 2월 16일 14:00~17:00, 충북 C시청 지하주차장

▲ C시청 지하 주차장에서 선물을 내리는 장면이 포착됐다.
ⓒ 이화영
지하주차장은 차량을 주차시키는 장소만이 아니다. 감시단은 16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3시간 동안 이 곳을 지켜봤는데, 그동안 지하주차장에서는 많은 선물들이 거래됐다.

한 차량에서 많은 양의 선물이 전달됐다. 시청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처음에는 "선물을 내리지 말라"며 만류하더니 전해받은 선물 중 자신의 몫을 챙겨 곧장 뉴세피아 차량에 옮겨 실었다. 이어 또 다른 선물 2점을 건네받기도 했다.

다른 차량에서 여성이 내렸다. 그는 차량 주변에서 서성이다가 어딘가 전화 통화를 했고, 20여분이 지나자 안경을 쓴 신사복 차림의 남자가 나타났다.

여성은 미리 준비해 간 선물을 건넸다. 이 신사는 분홍색 보자기에 싼 묵직한 선물 3점을 주차장 바닥에 내려놓고 차에 올라 1분 가량을 머무르다 내렸다. 감시단은 또 다른 은밀한 거래가 진행되고 있음을 직감했지만 권한이 없어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많이 깨끗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명절을 틈탄 뇌물성 촌지나 선물이 거래되고 있다. 뇌물을 받은 공무원은 그 대가로 업자나 민원인에게 편의를 제공할 것이다. 이 거래의 장소로 시청 지하주차장이 이용되고 있었다.

"감시활동 노출될까봐 방귀 뀌어도 창문 못 열어요"

▲ 박진우(가운데) 본부장이 주의사항과 감시단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화영
공무원노조 충북본부 소속 조합원들은 지난 7일 효과적인 감시 활동과 계획을 논의하고자 회의실에 모였다. 올해로 다섯번째 감시단 활동이지만 이들의 표정에는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고 비장함까지 묻어났다.

박진우 부추본 부장은 "노출되지 않도록 유의하고 대상자들과 출동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달라"며 "힘든 활동이지만 우리의 작은 몸짓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감시에 임해 달라"고 강조했다.

유혹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자치단체장과 고위공무원들이 감사대상자로 선정됐다. 2개조로 편성된 8명의 감사단원들은 대상자와 집의 위치 등을 확인하고 무전기와 캠코더, 망원경 등 감시 장비를 챙겨 현장으로 이동했다.

부정부패 감시활동에서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감시활동을 마친 21일, 활동평가와 동영상 확인을 위해 모인 감시단원들에게 직접 물어보았더니 노출에 대한 걱정으로 몸을 숨기느라 벌어진 갖가지 '고통'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자동차 안에 하루 종일 앉아있다 보니 몸도 뻐근하고 특히 밥을 먹고 난 후 몰려오는 잠과 싸우느라 고통스러웠다."
"준비해간 차량이 5부제에 걸려 관공서에 진입하지 못하는 바람에 긴급하게 차량을 교체하는 일이 발생했다. 또한 선팅이 진하지 않은 차량이 준비돼 촬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추워도 외부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자동차 히터도 틀지 않았다. 시골지역은 처음 보는 차량이 동네에 들어오면 지나는 사람들이 유심히 관찰한다. 한 사람이 차안을 유심히 들여다봐 노출된 줄 알고 긴장했다. 하지만 선팅된 차창에 비친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고 지나갔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생리현상 해결이 큰 과제였다. 화장실 이용도 노출될 것이 염려돼 참았다가 한꺼번에 몰아서 해결해야 했다. 방귀를 뀌면 창문도 못 열고 인체의 '기관지 필터'를 이용해 공기를 정화시키는 고통이 있었다."
"권한의 벽을 실감했다. 부패현장을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조사나 감사권한이 없어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보는 앞에서 내 지갑이 털리는 기분이었다. 제도권의 감사기관과 연계하거나 권한을 위임받는 것이 필요하다."


▲ 캠코더를 이용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감시단 요원.
ⓒ 이화영
▲ 감시단 활동을 눈치챘는지 승합차로 감시현장을 가려놨다.
ⓒ 이화영
선물 공개하는 공무원들... 자정노력의 열매들

한편 공무원노조의 자정노력이 실효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4일 공무원노조 제주본부는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력 사회단체장이 제주도청 고위공무원들로부터 전해받은 선물을 공개했다.

이 사회단체장은 받은 선물들을 곧바로 공무원노조 제주본부 측에 기탁했는데, 그 내용은 갈치세트·건옥돔·표고버섯 등 수십만원 상당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공무원노조 충남 연기군지부에도 지난 13일 연기군의회 의원이 본인에게 배달된 선물 중 반송이 어려운 선물을 노조 사무실로 가져와 노조에서 사회복지시설에 전달했다.

"예전보단 깨끗해졌지만, 명절 감시만으로는 부족해"
[인터뷰] 박진우 공무원노조 부추본 충북본부장

▲ 박진우 부추본 충북본부장.
ⓒ 이화영
박진우 부추본 부장으로부터 그동안의 활동과 확보된 자료에 대한 처리방안에 대해 들었다.

- 언제부터 선물 안주고 안 받기 등 부패 추방 활동을 해왔나.
"공무원노조는 조직이 탄생과 동시에 가장 큰 비중을 둔 사업이 '부정부패 추방'이다. 그 사업의 하나로 지난 2002년부터 명절 선물 안 받고 안주기 운동을 추진해 지금은 많은 공무원들이 동참해 주고 있다."

- 감시단 활동을 마친 소감은.
"아직까지도 현실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공무원들이 잔존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부패감시단 존재의 이유를 확인한 활동이었다. 특정한 기간에만 부패 감시단을 운영할 것이 아니라 상시 감시체계를 구축해야겠다는 생각도 갖게 했다."

- 선물을 주고받는 관행이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솔직히 과거의 공직사회는 너무 썩어 있었다. 명절 때가되면 이해관계가 있는 업체에서 트럭으로 선물을 실어 날랐고 이를 버젓이 관공서 주변에서 공무원이 챙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과거에 비하면 많이 깨끗해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집행부나 노조에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부패를 근절하려는 자치단체는 진짜 많이 투명해졌다. 하지만 감시활동이 형식적이거나 노조활동이 유명무실한 곳은 아직도 선물이나 촌지 관행이 잔존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 감시단 활동으로 선물이나 촌지 관행이 지능화·음성화 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는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지금은 뇌물성 상품권이 우편을 통해 공무원의 집으로 보내지고 있다. 또한 선물교환권인 도장이 찍힌 명함을 슬쩍 건네 공무원이 선물을 구입해가는 것처럼 위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5년 동안 자정활동을 벌이자 공무원 사회에서 '받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집으로 배달된 상품권을 노조로 반납하고 도장찍힌 명함을 신고하는 현상이 그 증거다."

- 확보된 자료에 대한 처리 계획에 대해 밝혀 달라
"자료를 분석해 경중을 가려 경미한 사안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고 중한 사안은 선거관리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 감사원과 검찰 등에 통보할 것이다. 이와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사회에 고발할 계획이다."

- 부추본의 앞으로 계획과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땅에서 부패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우리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겠다. 많은 국민들의 관심과 성원 부탁드린다. 짧지 않은 10일간 감시단 활동에 고생한 동지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덧붙이는 글 | 감시단 요원들의 노출을 피하려 모자이크 처리했으며, 현장 상황이 담긴 일부 사진은 공무원노조에서 수집한 자료를 촬영했습니다. 

이화영 기자는 공무원노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박진우, #충북, #공무원노조, #부패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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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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