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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가정법원이 모여 있는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건물.
ⓒ 오마이뉴스 권우성

@BRI@검사 "2007년 1월 14일 새벽 5시 30분께 그 곳(서울 마포구 동교동)을 지나던 60세 가량의 여성에게 다가가 주먹으로 눈 부위를 1회 때린 것을 기억합니까?"
R 이병(피고인) "아니오(No)."

검사 "범행 내용(강간 3회 및 폭행 치사)을 보면 우발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장시간 끌고 다니면서 한 것인데, 그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까?"
R 이병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I don't really recall that)."


26일 오후 3시 30분께 서울중앙지법 424호 법정. 지난달 14일 한국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미군 R 이병(23·미8군 제2보병사단)에 대한 첫 번째 공판이 이한주 부장판사(형사합의 21부) 심리로 열렸다.

R 이병의 대답은 두 문장 이상 넘어가지 않았다. 피해 여성을 폭행·강간하고 장시간 끌고 다녔던 것 그리고 발각 당시 도주한 사실 등 혐의 사실을 묻는 검사의 질문에는 통역이 끝나기 무섭게 "노(No)"라고 짧게 답했다.

반면 사건 당일 점심을 먹은 이후부터 만취한 동료를 홍익대 앞 모텔에 데리고 간 것까지는 명확하게 기억했다. 그는 술집 네 곳을 바꿔가며 자신이 마신 술의 양과 마지막으로 들른 술집의 이름도 명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날 R 이병의 입에서 나온 "예스"는 총 16번, "노"는 14번이었다.

쑥색의 깔끔한 제복 차림으로 피고인석에 앉은 R 이병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정말로(really)"를 연발하기도 했다. 이날 R 이병 측에서는 2명(각각 한국인과 미군 소속)의 변호인이 변호를 맡았고, 피해자 측은 방청석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14번의 "No", 16번의 "Yes"... "술마신 것까지는 기억하지만"

검찰은 이날 R 이병에 대해 "피의자는 혐의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목격자의 진술과 범행 수법 등을 볼 때 당시 심신 미약 정도에 이르는 상태는 아니었다"며 징역 7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또한 "피해자가 66세의 고령으로, 손녀와 어렵게 생활하면서 사건 당일에도 청소일을 위해 출근 도중 피해를 당했다"며 "2개월 이상 육체·정신적 피해가 크다"고 말했다.

검사가 "주차장의 차들 사이로 피해 여성을 끌고가 때려눕힌 것을 기억하느냐" "성교 사실을 기억하느냐"는 등 혐의 내용에 대해 총 15개의 질문으로 물어봤지만 R 이병은 모두 "노"라고 답했다.

다만 R 이병은 "피해자가 다친 사실에 대해 책임을 지느냐"는 질문에 "인정한다"고 답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술에 많이 취해 있었다"고 말했다.

▲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건물.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의 주장에 따르면, 미군 동료 한 명과 용산 미군부대 영내 한 호텔에서 점심 뷔페를 먹은 이후 술을 마시기 위해 홍익대 앞 모텔에 방을 잡았다. R 이병은 2월 귀국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송별파티'를 열기 위한 것이었다.

수중에 12만원을 갖고 있던 R 이병은 그의 동료와 함께 저녁도 거른 채 1차에서 럼주와 칵테일, 2차에서 맥주 1병, 3차에서 맥주 4병과 데킬라 등을 마셨다. 만취한 동료를 모텔에 데려다주고 그는 홀로 나와 근처 바에서 또 칵테일과 맥주를 마신 뒤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샀지만 얼마나 마셨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술취한 동료를 숙소에 데려다주고 홀로 간 술집의 이름까지 기억했지만, 편의점에서 술을 산 뒤부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 R 이병은 지난 16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도 범행 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피해자를 만나기 전까지의 상황을 묻는 변호사의 질문에 연이어 "예스(Yes)"로만 답하던 R 이병은 "피해자를 때리거나 강간한 기억이 없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와 합의할 시간을 갖고 싶다"고 덧붙였다. 별도의 최후 진술은 하지 않았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뉘우치고 있고, 기억은 안 난다고 하지만 정황을 인정하고 있다"며 "미국으로 복귀한다는 들뜬 마음에 저녁 식사를 하지 않고 만취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재판부의 선처를 당부했다. 또한 "피해자와 합의하기 위해 여러 번 접촉을 시도했지만, 마음의 상처가 가라앉지 않아서 합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검사는 그러나 "현장에서 피의자를 검거한 박성배씨에 따르면 당시 피고인은 200m 정도를 도주하고 잡히지 않으려고 주먹까지 휘둘렀다"며 "그랬던 피의자가 전반적인 폭행 혐의를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사실이냐"며 피의자의 진술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R 이병에 대한 선고 공판은 다음달 9일 오전 10시 열릴 예정이다.

폭행강간 재판... 알고보니 이례적인 일

한국 여성을 강간하고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R 이병(23·미8군 제2보병사단)에 대한 26일 서울중앙지법(형사합의 21부·이한주 부장판사)의 공판은 국내 법 절차에 따라 합당한 것이지만, 동시에 이례적인 일이기도 하다.

지난 2001년 1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에 따라 범죄 미군에 대한 형을 확정하기 전이라도 한국 재판부가 구속 여부를 결정하고 형을 확정할 수 있게 된 것. 개정 전까지는 범죄 미군의 형이 확정된 뒤에야 한국 정부가 신병을 넘겨받을 수 있었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에 따라 R 이병은 지난 16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송경근 판사 심리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고,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기소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하지만 R 이병과 같은 경우는 드물다. 한국 정부가 미군 피의자의 신병을 미군에 넘기지 않고 처벌하기 위해서는 살인과 같은 흉악 범죄나 죄질이 나쁜 범죄가 범행 현장에서 붙잡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흉악 범죄와 현행범이 일치하기는 쉽지 않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 전인 1996년 검찰이 동두천 접대부 이기순(44)씨를 죽인 미군 무니치 에릭 스티븐 이병의 신병 인도를 요청했지만, 미군은 이를 거부했다. 또한 1992년 윤금이씨 사건 또한 미군 케니스 마클 이병은 범행 발생 2년 뒤인 1994년 천안교도소에 수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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