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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핵 6자회담이 13일 6개국의 합의로 타결된 가운데, 이날 오후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폐막 회의에 앞서 참가국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황광모

지난 6자회담에서 2·13 합의가 나온 이후 북핵 문제 해결이 급물살을 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3월 초에 미국을 방문해 북미관계 정상화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할 예정이고, 북한 핵폐기를 감시·사찰할 역할을 맡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북한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할 예정이다.

2002년 10월 북미간의 핵갈등이 재발한 이후 지난 4년 반동안 답답함과 불안감이 팽배했던 때와는 판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위기는 기회'라는 말을 실감케 하듯, 한반도 핵위기는 역설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신질서 구축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합(合)으로 승화되지 못한 채, 정(正)과 반(反)이 악순환을 반복해왔던 한반도 냉전의 역사도 이제 그 종말의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하면 위기는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 위기와 기회의 변증법적 특징이다.

모처럼 조성되고 있는 역사적인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2·13 합의의 특징을 잘 포착하고,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변수들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세워야 한다. 또한 한반도의 合의 시대가 동북아의 반(反)의 출현과 충돌하지 않도록, 한반도와 동북아 문제의 선순환적 해결 구도를 그려 나가야 한다.

2·13 합의, 위기로 돌아가지 않을까

@BRI@[특징①-단계적·포괄적 해결] 2·13 합의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특징을 담고 있다. 첫째는 단계적이면서도 포괄적인 해결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일정을 포함한 구체적인 이행 조치는 60일 이내에 북한이 영변 핵시설를 폐쇄·봉인하고 IAEA의 감시를 허용하기로 한 것과 이에 발맞춰 한국·미국·중국·러시아가 5만톤의 중유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 유일하다.

반면 북한 핵시설의 불능화 조치 및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서의 95만톤의 중유 및 식량 지원에 관한 일정은 나와 있지 않으며,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핵무기와 플루토늄, 그리고 우라늄 농축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담겨 있지 않다.

이는 북핵 해결이 단계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북한이 60일 이후에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모든 핵 프로그램의 신고하는데 동의하고, 여타 국가들이 대규모의 에너지 및 경제 지원뿐만 아니라 테러지원국 해제, 북미·북일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논의도 병행하기로 한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 방식으로서의 '포괄성'을 보여준다.

이는 결국 이행은 단계적으로 하되, 합의는 포괄적으로 함으로써 미래의 기대이익을 통한 현재의 합의 사항에 대한 원활한 이행을 도모하는 메커니즘이 구축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징②-5만톤 중유만으로 합의] 둘째는 북한이 핵동결의 보상 조치로 5만톤의 중유를 받는 수준에서 합의에 동의했다는 점이다.

이는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핵동결의 직접적인 보상조치로 50만톤의 중유를 받은 것이나, 북한이 이전 6자회담에서 요구했던 핵동결의 대가, 즉 경수로 2기에 해당하는 에너지 지원을 요구했던 것과 비교할 때 대단히 낮은 수준이다.

북한이 이러한 조치에 합의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제네바 합의 때와는 달리 북한이 이미 핵무기와 다량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어 여타 국가들의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의 핵동결의 가치가 과거보다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고, 북한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미국 등의 약속 이행과 추가적인 협상을 가능케 하는 지렛대를 남겨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북한의 핵심적인 요구 사항인 테러지원국 해제, 관계정상화, 평화협정 체결 등 근본문제에 대한 협의를 개시하는데 동의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에너지 등 경제지원보다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등 근본 문제의 해결를 선호해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북한으로 하여금 일단 소량의 중유를 받으면서 핵동결 조치를 수용하게 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특징③-근본문제 협의하려는 미국] 셋째는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 및 관계정상화, 그리고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등 이른바 '근본 문제'에 대한 협의 개시 시점을 대폭 앞당기는 데 동의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전까지 이들 근본문제의 해결 시점을 북핵 문제가 해결된 '이후'로 제시했다. 그러나 2·13 합의에서 이들 문제에 대한 협의를 북한의 핵포기 초기 조치와 연동하는데 합의함으로써 중요한 자세 변화를 보여주었다.

특히 관계정상화와 관련해 북핵 문제 이외에도 인권, 탄도미사일 및 생화학무기, 재래식 군사력 등 다른 이슈와 연계시켜, 이들 문제가 전반적으로 해결된 이후에 관계정상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2·13 합의에서는 일단 북핵 문제에 초점을 맞춰, 이와 연계된 북미 양자대화를 갖기로 했다. 북미 양자대화에서 미국이 북핵 이외의 다른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과거보다 북핵 문제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태도 변화는 부시 대통령의 임기, 즉 2008년까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문제에 대한 유연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비로소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합의가 이뤄진 2월 13일 오후 김계관 북한 측 수석대표가 환하게 웃고 있다.
ⓒ 연합뉴스 황광모
그러나, 아직 낙관은 이르다

2·13 합의가 북미 양측의 정치적 신뢰 회복을 바탕으로 첫단계 동시 행동에 합의하고 포괄적인 문제 해결의 방향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결코 작지 않다. 특히 대북강경책으로 일관했던 부시 행정부가 임기 내에 북핵 문제 해결 및 이를 위한 상응조치로 근본문제의 해결 의사까지 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60년 넘게 한반도를 짓눌러온 분단체제의 해체가 본격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낙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9·19 공동성명의 완전한 이행을 어렵게 할 걸림돌들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선 2차 북미 핵갈등의 원인이었던 우라늄 농축 문제가 있다. 2·13 합의에서는 첫단계 이행조기 기간인 60일 동안 북한이 "공동성명에 명기된 모든 핵프로그램의 목록을 여타 참가국들과 협의"하고, 다음 단계에서는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를 하는데 동의했다.

이에 따라 북한이 신고 대상에 우라늄 농축을 포함시킬 것인지가 중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 관료는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 대상에는 "핵물질, 관련 설계도, 시설, 핵무기 등이 다 이에 해당하며 플루토늄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우라늄농축 핵프로그램도 이에 포함된다"며, "북한이 얼마나 성실하고 신의있게 신고하느냐에 따라 '2·13 합의'가 우여곡절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이 존재 자체를 부인해왔다는 점에서 신고 대상에 이를 포함시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럴 경우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존재를 확언해온 부시 행정부와의 갈등이 불가피해진다. 이를 눈감고 넘어가기에는 이 문제로 인해 지금까지 치른 비용이 너무 클 뿐만 아니라, 미국 내 강경파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부시 행정부가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을 조작·과장한 것이 이미 드러난 상황에서, 북한의 우라늄 농축 문제마저 허위나 과장으로 드러날 경우 부시 행정부가 입게 될 정치적 타격은 상당히 클 것이라는 점에서 부시 행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보여줄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9·19 공동성명에서 '미래의 의제'로 넘긴 경수로 문제 역시 난제이다. 북미 양측이 이 문제에 대해 양보를 했다거나 타협점을 모색하고 있다는 징후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2.13 합의에서도 경수로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북한의 핵무기 및 플루토늄에 대한 폐기 논의가 시작될 때, 경수로 문제가 핵심적인 쟁점으로 또 다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정치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가장 까다로운 검증 문제도 남아 있다. 1993년 1차 북핵 위기의 직접적인 촉발 요인이 북한의 신고한 플루토늄 양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사찰을 통해 추정한 양 사이의 '불일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과, 앞으로의 검증 과정은 이 때보다 훨씬 복잡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검증 과정에서 또 다시 갈등이 폭발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미국, 테러지원국 해제할까?

▲ 북핵 6자회담 재개를 앞두고 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만찬 협의을 가진 우리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과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진성철
걸림돌은 '북핵 요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고 적성국 교역법 적용 대상에서 북한을 빼줄 것인지가 관심사이다. 우선 미국 국무부는 테러지원국을 지정할 때 전년도를 평가 대상으로 삼아왔다는 점에서 2007년 2월 13일 합의를 근거로 올해 북한을 제외시키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또한 2·13 합의 직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인 엘리엇 에이브럼스가 아시아 정책 및 비확산 담당 관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는 과정을 시작하기로 한 것을 강력히 비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 내 불만세력도 만만치 않다.

아울러 일본이 자국인 납치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해선 안 된다며 부시 행정부를 설득·압박할 가능성도 높다.

만약 부시 행정부가 2007년에도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지 않거나, 해제에 준하는 경제제재 해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북한의 강력한 반발과 맞물려 9·19 공동성명 이행은 또 다시 삐거덕거릴 수 있다.

태그:#6자회담, #한반도, #냉전, #동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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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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