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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25일 신년 기자회견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은 왜 '교조적 진보'를 비판했을까?

여러 해석이 나온다. "진보진영(내의) 대선 주도권 다툼(<중앙일보>)"이라거나 "지지층을 의식한 '담론 투쟁'의 성격(<동아일보>)"이란 해석, 그리고 "민주화 세력의 지지기반 이탈을 막고자 했음(<경향신문>)"이란 해석 등등이 나온다.

해석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시제는 현재형이고, 목표는 정치적이다. 즉 현재 진행되는 대선구도에서 일정하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비판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과연 그럴까? 아닐 수도 있다.

다음 정권 책임 안 지겠다는 노 대통령

@BRI@반박 정황이 있다. 노 대통령은 '교조적 진보'를 비판하면서 딱 잘라 말했다. "다음 선거에서 민주 혹은 진보진영이 성공하고 안 하고는 스스로의 문제"라면서 자신에게 "다음 정권에 대한 책임까지 지우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만이 아니다. 그 전에도 여러 차례 비슷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다른 정황도 있다. 사실 이게 더 중요하다.

여권에서는 통합만이 살 길이라고 한다. 그래서 '소이'를 접고 '대동'의 기치 아래 모두 모여야 한다고 한다. 이것만이 정권 재창출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걷는 길은 다르다. '도로 민주당'은 안 된다고 선을 그은 데 이어 이번엔 '교조적 진보'의 맹성을 촉구했다. 스스로 '통합'의 외연을 좁히고 있다. 오로지 정권 재창출에만 골몰한다면 내보일 수 없는 태도다.

한나라당 집권, 쇼비니즘 대두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염두에 두고 있는 건 뭘까? 미래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단정과 우려를 동시에 표출했다. "한나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99%"라고 했고,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적 반동으로 쇼비니즘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노 대통령도 유시민 장관과 비슷한 판단을 하고 있다면 두 가지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한나라당 집권, 그리고 쇼비니즘 대두이다. 모두가 대선 이후에 빚어질 상황이다.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최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유 장관의 판단을 노 대통령의 인식과 등치시킬 수는 없다.

유시민 장관 스스로 그랬다. "나보고 (노 대통령의) '실세' '복심'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렇지 못하다"고. 노 대통령이 "주위의 만류에도 일을 벌이고 언론과 맞상대하는데 그것은 그의 스타일"이라고 했다. 대통령을 만나면 "좀 조용히 가시죠"라고 하는데 대통령은 그래도 계속 가야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이 말에 따르면 노 대통령 말 따로, 유 장관 말 따로 해석해야 한다. 두 사람은 한 몸뚱이가 아니다.

하지만 다르게 볼 수 있다. 유의할 대목이 있다. 유 장관이 한 몸뚱이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들었던 사례는 스타일에 국한돼 있다. '동체'가 아니라고 해서 '일심'도 아니라고 단정할 근거는 못 된다.

이 말에 주목하자. "지금 노 대통령과 내가 열심히 사회복지정책이나 다른 것들을 많이 쏟아내는 것은 징검다리를 만들어 다음 정부에서 지금껏 이룩한 것들이 깨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말엔 정권 재창출이 아니라 정권 교체 가능성이 전제로 깔려있다. 정권 재창출을 상정한다면 굳이 정책이 뒤집히는 상황을 우려할 이유가 없다.

노무현, 20%의 힘

▲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제 정리가 필요하다. 노 대통령이 정권 교체, 정책 전복 상황을 우려하는 것과 '교조적 진보'를 비판하는 것은 어떤 상관성이 있는 걸까?

두 단어가 도드라진다. 유 장관은 '반동'을 우려했고, 노 대통령은 '진보'의 재정립을 주문했다. 상극의 두 개념이 거의 동시간대에 운위됐다.

조합하면 이렇다. 반동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진보의 현실 대응력을 높여야 하고, 진보의 일치단결을 이뤄야 한다. 참여정부가 구축한 정책을 '집권 한나라당'이 부수려는 반동적 시도를 막는 길은 이것뿐이다.

문제는 '교조적 진보'다. 이들이 교조주의에 빠져 맹동을 벌이면 한나라당의 반동 입지를 강화시킨다. 한나라당은 반동적 차원에서, '교조적 진보'는 맹동적 차원에서 참여정부의 정책을 무너뜨리려 할 수 있다. 이유는 정반대이지만 결과는 같다. 그 뿐인가. 이 과정에서 진보 진영의 내부 분열을 피할 수 없다.

'교조적 진보'를 제어해야만 '징검다리'가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래야 정책이 전복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유연한 진보'의 정치적 진군을 이룰 수 있다.

"내 책임 아니다" "그 밥에 그 나물"... 다음 정권에는 무관심

문제는 힘이다. 과연 이런 힘이 있을까?

다시 유시민 장관에게로 돌아가자. 그는 "노 대통령은 20%를 기본으로 먹고 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야당을 하기로, 그것도 '유연한 진보 야당'을 하기로 작정했다면 20%의 고정 지지층은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핵심 지지층이 이 정도라면 언제든 외연을 넓힐 수 있다. 한나라당이 반동으로 돌아서고 '교조적 진보'를 제어할 수만 있다면, '유연한 진보 야당'의 외연을 넓히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과거 김대중·김영삼 씨도 25% 안팎의 고정 지지층을 갖고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지 않았던가.

구도를 새로 짜야 할 판이다. 여권에선 실용과 개혁을 놓고 갑론을박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유연한 진보'를 내세운다. 여권에선 통합을 운위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배제를 암시한다.

대선을 목표가 아닌 과정으로 보니까 이런 엇갈림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역설적이다. 다시 동질화 현상이 나타난다. 노 대통령이나, '교조적 진보'나 모두 같다. 한쪽은 "정권 재창출은 내 책임이 아니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그 밥에 그 나물이니까 정권이 한나라당에 넘어가도 괜찮다"고 한다.

태그:#진보, #반동, #노무현,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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