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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검을 마치고 다음 사업을 기다리는 기관차들의 모습.
ⓒ 정환창
해가 바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 중의 하나가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 일컫는 설이다.

설이 되면 바삐 돌아가던 공장의 기계가 멎고 회사도 잠시 쉰다. 관공서의 문도 일제히 닫힌다. 너나 할 것 없이 한 아름 부푼 기대와 그만큼의 선물을 마련하여 고향을 찾는다. 우리는 이 현상을 민족의 대이동이라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대이동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고 일터를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찰관들이 그러하고, 소방대원들이 그러하고, 고속버스 기사, 열차 기관사들이 또한 그러하다.

이런 분들의 노고를 방송사에서 잊지 않고 라디오나 TV를 통해서 자주 방영해주는 연유로 우리는 그들의 노고를 익히 알고 있으며, 잠시 잠깐이라도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기억이 있다.

그러나 같이 일터를 지키면서도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우린 그런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고 있는 곳 중의 하나인 한국철도공사 충남지사 천안차량사업소를 찾았다.

'천안차량사업소'.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천안시 와촌동 55번지에 있는 철도공사 충남지사 현업소속 중의 하나다.

천안역사 반대편, 서부역 광장 오른쪽으로 난 문을 통해 구내로 들어서자 기관차들이 줄줄이 늘어선, 다소 생경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평소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어 쉬 접할 기회가 없는 탓이고, 많은 기관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 풍경도 쉬 접해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닌 탓이다.

시선을 돌리자 거대한 차고가 하늘을 반쯤 덮는다.

"워낙이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께 아무리 치장을 해도 늙은이 화장한 거 멘치루다가 '뽄때'가 나질 않어유."

박경배 선임 차량관리장. 50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쉰여덟이다. 1974년 10월 11일 입사해 오늘에 이르렀으니 삼십년 넘게 한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해오고 있는 셈이다.

▲ 기관차와 함께해 온 30년 세월 박경배 선임차량관리장.
ⓒ 정환창
사업소에서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시발역에서 여객이나 화물을 싣고 천안으로 온 기관차는 일루다가 죄다 들어와유."

고향이 부강이라는 그는 내내 농익은 충청도 사투리로 답했다.

"여기서 일단 점검을 하지유. 어디 고장난 곳은 읎나 살펴두 보구 또 모자란 것은 보충두 해주구유. 손볼디 다 손 봐주구 나문 연료라든가 냉각수, 그리구 모래두 챙겨줘야 돼유. 철길루 댕기는 기관차다 보니께 제동을 걸어두 쇠바퀴하구 쇳길 사이가 미끄러우니께 미끄럽지 말라구 모래를 뿌리는 장치가 있거덩유."

안내를 받아 차고 안에 들어서면서 공룡과도 같은 기관차들의 기관음이 커지자 박 관리장의 목소리도 따라서 커진다.

"작업대"라 부르는 검수고 한편에 기관차 한 대가 마취된 듯 누워 있다. 측면의 모든 문짝이 열려 있고, 내부엔 엔진이며 크고 작은 부품들이며 전선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숨죽이고 누워 있는 모습이 마치 배가 갈린 채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공룡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모든 기관차는 유지보수지침에 따라 해당되는 정기점검을 받게 되지유. 이 기관차는 6개월에 한 번씩 지정된 부품을 분해해서 기능 시험을 하거나 수명이 다한 부품은 새 부품으루 갈아 끼워주기도 하구유."

일일이 부품을 만지면서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주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전문 용어가 섞이다 보니 반은 놓치고 반만 챙겨 듣는다.

이곳에는 하루 아홉 명의 차량관리원들이 3조 2교대 체제로 근무하고 있다. 하루 평균 15량(기관차를 세는 단위)의 기관차를 일상점검하고, 이틀에 한 번 꼴로 한 달 주기 이상의 정기점검도 시행한다고 한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가끔 운행 중 고장으로 인하여 예비 기관차로 대체되고 난 후 고장난 기관차가 들어오기도 한다.

운행 중에 일어나는 고장은 고객들에게 불편을 초래함은 물론 회사의 신뢰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에 '고장'은 차량관리원들에겐 근절해야 할 영원한 과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을 앞두고는 특별정비계획을 세워서 고장이 일어날 수 있는 개소를 선정하여 중점적으로 정비한다고 한다.

▲ [왼쪽 사진] 기관차 엔진부 정비에 여념이 없는 차량관리원들. [오른쪽 사진] 기관차 내부 전기기기를 점검하는 차량관리원.
ⓒ 정환창
"설에 고향은 가시지 않나요?"
"댕겨올 수만 있으문 댕겨와야지유 명절인디…."


답변은 그리하지만 정작 설날인 18일은 주간 근무라 오전 9시까지 출근을 해야 한다고 옆에서 젊은 직원이 귀띔한다.

그에게 친지들과 같이 설 명절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 비단 이번 설 뿐만은 아니다. 30년을 그렇게 지내왔으면서도 매번 다가오는 명절을 가족 친지들과 같이 보내지 못하는 아쉬움은 줄어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대수송 기간 중 혹 차량고장으로 인해 열차가 지연되어 고객들에게 불편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에 입고하는(차고로 들어오는) 기관차로 향한다.

울부짖음처럼 들려오는 기관차의 윙윙거림, 수시로 들어오거나 나가는 기관차들, 공구를 손에 쥐고 바삐 오가는 차량관리원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람과 기관차가 서로 어우러져 바삐 돌아가는 천안차량사업소의 풍경도 점차 눈에 익어온다.

"하두 오랜동안 기관차만 만치다 보니께 기관차두 사람하구 별반 다를 게 읎다는 것을 알았지유. 얘덜두 생명이 있어유. 아프문 아프다구 말두 하구유. 이 기관차덜찌리 하는 말을 알아듣는디 삽십년이나 걸렸네유."

'오랜 세월 기관차 정비를 하셨으니 기관차와 정도 들었겠다'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실제로 그는 기관차의 기관음만 들어도 고장 난 곳을 족집게처럼 짚어내는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올 설 명절에도 수많은 귀성객들이 열차를 이용해 고향을 찾을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이 어둡고 시끄러운 차고에서 밤을 새며 기관차들과 소통하는 사람들이 있어 편한 귀성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박 관리장의 전송을 받으면서 정문을 나서는데 뒤통수가 가려워 돌아본 차고, 출발선 앞에선 육상선수들처럼 출고선에서 다음 사업을 기다리는 기관차들의 윙윙거림이 '다음에 또 다녀가시라'는 인사말처럼 들려온다.

덧붙이는 글 | 정환창 기자는 한국철도공사 충남지사 동력차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태그:#차량관리장, #철도공사, #박경배, #동력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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