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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오라 총리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주도 반정부 세력들이 지난 1월 23일 베이루트 국제공항으로 연결되는 도로에서 타이어와 차량에 불을 지르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AFP=연합뉴스

시니오라 레바논 총리가 파리에서 열린 '레바논 지원회의' 참석을 위해 나라를 비운 사이 지난주 수도 베이루트에서는 친정부 반정부 세력간 10명이 사망하고 수 백명이 다치는 충돌이 있었다.

시아파 헤즈볼라 주도로 지난해 12월 초하룻날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연일 그 강도를 더해가는 가운데 정부 주요 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거부권을 요구하는 헤즈볼라측과 정부의 정통성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현정부의 신경전이 예사롭지 않다.

내전 재발의 위험이 상존, 언제 어디서 무엇을 계기로 다시 터져버릴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레바논 상황을 현지의 시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레바논처럼 된다"

ⓒ 오마이뉴스 성주영
아랍 국가에서 기독교 인구가 더 많으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레바논 처럼 된다"고 하면 정답이다. "레바논 처럼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5년간 내전을 겪고 23년간 이스라엘로부터 점령 당하고 29년간 시리아 통치를 받고 국가의 지도자가 선진국에 돈 빌리러 다닐 정도가 되면 "레바논 처럼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레바논처럼 된다"는 중심 이론은 나눠먹기다. 거창하게 국민협약이니 종파주의니 떠들어 대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능력과 경륜에 근거할 필요도 없고 특별히 단식을 하거나 사과 상자에 현금을 집어넣을 필요도 없다. 부모의 부모의 부모가 믿는 종교를 따라 열심히 교회니 모스크니 다니다 보면 양반집 자제들의 정치 진출은 그냥 보장이 된다.

지난해 피살된 피엘 제마엘 산업부 장관, 지지난해 피살된 라픽 하리리 총리의 2남 사드 하리리와 같은 30대 중반의 신세대가 각각 장관을 맡고 의회내 다수당 리더가 가능한 것이 바로 이런 나눠먹기 토양의 한 단면이다. 신의 비즈니스와 패밀리 비즈니스의 환상적 결합이다.

레바논식 기득권 횡포

나눠먹기의 방식은 총인구 대비 종파별 인구 비율이다. 대단히 합리적이다. 확성기 들고 가가호호 돌아다니며 선거유세에 돈 들일 필요도 없다. 현재의 정치 구조는 총인구를 100으로 보았을 때 기독교 인구가 65였던 시점에 근거하고 있는데 문제는 그 시점이 1932년이라는 점이다.

기독교 인구는 줄어들고 이슬람 인구는 늘어나니 예를 들어 6년 임기의 대통령 취임을 근거로 인구 조사가 병행되어 매 6년 마다 전체 인구 대비 종파별 인구 분포를 새롭게 반영하는 신축적인 제도 같은 것이 필요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 말로 쉽게 설명하면 기득권의 횡포다. 기득권이 횡포를 부리니 국민들 즉 시아파 무슬림이 저항하게 되고 그 저항의 결과가 종파별 동네 싸움에서 내전으로 확대되었다.

레바논 의회 종파별 의석분포

구분

~1989

1989~

현재

마로나이트

30

34

72

그리스 정교

11

14

 

그리스 가톨릭

6

8

 

아르메니아 정교

4

5

 

아르메니아 가톨릭

1

1

 

신교

1

1

 

기타 기독교

1

1

 

기독교합계

54

64

 

수니

20

27

56

시아

19

27

 

드루즈

6

8

 

알라위트

0

2

 

이슬람합계

45

64

 

총계

99

128

128

ⓒ 오마이뉴스 고정미
그런 불균형의 불만이 1975년 내전으로 발발하였고 그렇게 25년간 싸워 얻어낸 결과로 기독교가 54석에서 64석(10석↑), 이슬람이 45석 에서 64석(19석↑)으로 돼 최소한 기독교와 이슬람이 맞장을 뜰 수 있는 바탕은 만들어졌다. 내전 종료는 그렇게 성립되었다.

나눠먹기의 변질

어렵사리 잡아놓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의석 균형이 이번에는 친시리아와 반시리아로 다시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 동안 기독교와 이슬람으로 크게 양분된 권력 구도가 이제는 친시리아와 반시리아 즉 반미와 친미로 다시 헤쳐모여를 시작한 것이다.

수니파 무슬림이 친미의 선봉에 섰다. 아니, 반시리아의 선봉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암살당한 하리리 수상의 표심이 모두 반시리아로 쏠렸다. 시리아가 암살의 배후라고 믿기 때문이다.

변신의 천재 드루즈 종파의 쥼블랏도 이번에는 반시리아에 붙었다. 미국 대통령에 대한 공개적 비난을 서슴치 않던 반미 선봉 쥼블랏도 이번에는 친미로 돌아섰다. 전통적 친미 세력을 통털어 반시리아 의석이 72석으로 늘어난 것이다.

반면 헤즈볼라 연합세력 모두를 합친 친시리아 진영은 원래 의석 보다 8석이 줄어 겨우 56석이다. 하루 아침에 쪽박 신세로 전락되었다.

헤즈볼라의 반격

종파별 인구에 근거한 나눠먹기 국민 대협약이 내전 이후 이런 식으로 변질되게 되자 최대의 피해자는 당연히 시아파 무슬림이지만 합법 정부를 거부하거나 무력을 사용할 명분이 도무지 없다.

현정부 타도를 위해 한 치라도 무력을 행사할 기미가 보인다면 곧바로 미국이 개입하여 무장 해제를 진두 지휘할 것이니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헤즈볼라 방송국을 통한 대국민 홍보도 한계가 있고 이스라엘 침공 이후 이란의 지원으로 피해 가정 집집마다 뿌린 12000불의 '달러발'도 역부족이다.

이런 배경을 두고 지난해 말 6명의 장관이 헤즈볼라 진영에서 동반 사임을 했다. 주요 국정 사항을 반시리아 연합 일당 독재로 처리하는 것은 불합리하니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 분점 즉 내각의 1/3을 요구했고 관철되지 않자 사퇴한 것이다.

이렇게 되니 내각의 정통성에 대한 시비가 자연스럽게 불거져 나왔다. "6명의 장관이 공석인데 국민협약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에서, "현 내각은 불법 내각이니 총사퇴하라"로 공격 수위가 높아지더니 급기야 "현정부 전복을 위한 무기한 시위"의 시나리오가 발표되었고 마침내 10명이 사망하고 수 백명이 다치는 충돌이 있었다.

아랍 리그 이니셔티브

@BRI@1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최근의 충돌 이후 헤즈볼라가 새로운 시나리오에 근거한 보다 강화된 시위 전략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아랍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의 모임인 아랍리그 아물 무사 총장의 발걸음이 사뭇 바쁘다.

현행 26명 내각을 30명으로 늘려 19+10+1로 나누되 19명을 반시리아(현정부), 10명을 친시리아(헤즈볼라 연합)로 할당하고 나머지 1명의 장관은 무소속으로 하자는 것이 아랍 리그의 공식 최종 중재안이다.

이렇게 되면 헤즈볼라는 최소한 내각 1/3을 대표할 수 있으니 국정의 주요한 결정에 대한 비토 파워가 가능해진다는 계산이다.

▲ 왼쪽부터 지난 11월 암살당한 피에르 제마엘 전 산업부장관(마로나이트 기독교파), 포와드 시니오라 현 총리, 사드 하리리 다수당 리더(수니파 무슬림), 왈리드 쥼블랏 드루즈파 지도자.
신 천지 레바논

레바논의 정치 지도자들은 모두 신(神)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한다. 변절에 변절을 하는 한이 있어도 종교 만큼은 바꿀 수가 없다. 아니, 바꾸지를 않는다. 자신의 종교가 유지되어야 고객 즉 유권자가 유지된다. 국회의석 128석은 이미 종파별로 할당이 되어있으니 국회로 입성하려면 우선 종교가 유지되어야 한다.

일단계 신(神)장사를 마치면 그 다음 단계는 족보 장사다. 예를 들어 베이루트 1지역구는 수니파 2명, 마로나이트 1명, 그리스 정교 1명, 그리스 카톨릭 1명, 기타 기독교 1명의 국회의원으로 이미 할당되어 있다.

유권자들의 일이란 이미 정해져 있는 종파에서 자신들과 안면이 깊은 사람을 뽑으면 되는 것이니 매번 새로운 후보가 나와 정책과 인물을 검증한다는 식은 이 곳에서는 한 마디로 시간 낭비다. 나올 사람도 정해져 있고 뽑힐 사람도 대충 정해져 있다.

기독교 종파가 이렇듯 신을 팔고 가문의 영광을 유지하며 정치 일선에서 여전히 화려한 명맥을 유지한다면 이슬람의 신장사는 보다 종교적이다. 가문도 없고 영광도 없지만 신에 대한 충성이 가장 강한 사람이 그야말로 지도자다.

신에 대한 충성이 가장 강한 사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이스라엘을 가장 나쁘게 말하면 가장 종교적인 사람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수니파 무슬림도 예외는 아니다. 싫건 좋건 이스라엘을 무조건 나쁘게 욕하는 정책은 수니파든 시아파든 공통이다.

도무지 가망이...

세계 최고의 교육 수준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동서의 분열을 극복치 못하는 작금의 현실을 볼 때 수십 수백의 종파와 인종으로 얽히고 섥힌 레바논의 보랏빛 미래는 가망을 보기 힘들다.

워낙에 오래 싸웠으니 내전이 재발될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야 별로 없겠으나 레바논을 달랑 들어 태평양 한 가운데 옮겨놓지 않는 한 신장사와 족보장사의 망국병을 고칠 방법이 현재로선 난망이다.

혹 모르겠다. 가파른 레바논 산맥에 21세기판 노아의 방주라도 다시 재현되어 처음부터 다시 털어서 놓기를 할 기회라도 주어진다면.

태그:#레바논, #기득권층, #해외리포트, #아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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