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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성준(21, 가명)씨는 입시철만 되면 기분이 우울하다. 각종 신문과 방송에서 보도하는 입시 관련 기사 때문이다. 대입 전형이 본격화되면 대부분의 언론은 버릇처럼 '주요 대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특정 대학만을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이씨는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에 대해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물론 반사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곤 한다. 그는 현재 전공에 만족하고 있지만 이러한 언론 보도를 접할 때마다 사회의 비주류라는 우울함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언론 입맛대로 쓰는 '주요대학'

▲ 언론에서 언급한 '주요 대학'들. 올해 입시기사에서 고려대가 총 46번이나 '주요 대학'으로 언급됐고 그 다음으로 성균관·서울대, 이화여대 순이었다.
ⓒ 이정혜
기자가 2006년 대학 입시 기사를 분석했을 때도 '주요 대학'이라는 말과 일부 대학만이 반복적으로 보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월 29일 기자는 한국언론재단이 운영하는 종합뉴스DB '카인즈(http://www.kinds.or.kr)'에서 '주요 대학'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했다(검색 기간: 2006년 11월 16일(수능시험일)~2007년 1월 28일). '주요'와 '대학'으로 따로 검색된 총 1720건의 기사 중 '주요 대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15개 매체의 기사 132건을 분류했다. '주요 대학'이라는 단어뿐만 아니라 '주요 대' '주요 사립대' '주요 수도권 대학'도 함께 검색됐으며 이 단어들도 조사 결과에 포함 시켰다.

그 결과 신문지상에는 총 36개 대학이 '주요 대학'으로 언급됐으며 고려대(46회), 성균관대·서울대(43회), 이화여대(42회), 연세대(41회), 서강대(39회) 순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한양대, 경희대(27회), 숙명여대(23회), 중앙대(21회), 한국외대(18회), 건국대(10회) 순이었다.

조사 대상인 15개 매체가 '주요 대학'을 언급하는 형식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로 'S대, K대, Y대 등 주요 대학은...' '000대 등 주요 대학은...'과 같은 형식으로 특정 대학을 대표로 보도했다. 둘째로 '주요 대학 전형일정' '주요 대 모집 요강'으로 서술한 후 일부 대학의 대입 상황을 살피는 형식이다. 대체적으로 기사에 '주요 대학'이라고 말한 후 이미 보도했던 대학들을 계속 반복했다.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과 정재민 교수는 "'주요 대학'은 편의성을 잣대로 쓰는 어휘로 옳지 않은 명칭이다. 신문과 방송의 기사가 주는 영향력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만큼 입증되어 왔다. 어떤 의도로 쓰였건 '주요 대학'의 명칭은 소수 대학을 제외한 대학들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로 들릴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 교수는 "주요 대학의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무작정 사용하는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중앙일간지 기자는 "200개 가까이 되는 대학을 다 소개할 수 없다. 나름대로의 기준을 통해서 몇몇 대학을 알려 줘야 되는데 상위권 대학 기준으로 한다. 입학생들의 성적, 대학 인지도, 그런 것들을 종합해서 보도한다. 뚜렷한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학서열체제 연구: 진단과 대안>(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엮음, 한울, 2005)에는 대학서열체제를 강화 시키는 요인에 대한 설문조가 결과가 실려 있다. 일반인, 교사, 대학생 등 총 5771명의 응답자 중 81.0%가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소수 대학의 동정만을 중시"여기는 '언론의 대학입시 보도 관행'이라고 대답했다. 언론이 대학 서열화를 부추기고 고착 시키는 역기능을 하고 있는 것.

▲ 2007학년도 '주요대학' 정시모집 눈술대비법을 소개하고 있는 2006년 11월 27일자 <동아일보> 27면.
ⓒ 동아일보
오랫동안 교육부를 출입해 왔다는 또 다른 중앙일간지 기자는 "기자들도 '주요 대학' 중심의 대학 한 줄 세우기 식의 보도 행태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97년에 대입 보도강령을 만들었지만 2년 전부터 지키지 않는 경향이라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2006년 9월 28일 교육부 출입기자들이 대입 보도강령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가 있었지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보도강령을 받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깨지게 됐다.

다른 교육부 출입 기자는 "기자들이 대학을 서열화하는 보도를 하지 않으려 해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왜냐하면 제도적인 문제, 기자들의 인식, 대학 측의 공격적인 홍보 등이 맞물려 기자도 사람인 이상 사람과의 관계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취재기자의 인맥, 과연 보도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

한편 <미디어오늘>은 지난 1월 25일 취재기자의 인맥 문제를 거론한 기사를 내보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국언론재단 언론인명록 검색 자료를 토대로 전국 단위 종합일간지 10개사, 통신 1개사, 방송 5개사 등 모두 16개 언론사 정치부장을 분석한 결과 서울대 출신이 7명, 고려대 출신 5명 등 서울대와 고려대 출신이 상대적으로 많았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유력한 대권후보의 출신대학과 정치부장 출신 대학을 연결시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한 일간지 중진기자는 "특정 대학 출신이 논조를 편향되게 끌고 갈 수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어떠한 방식이든 데스크와 기자의 출신 대학과 취재원과의 관계로 비롯되는 기사 방향의 상관관계는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미디어오늘>은 지난 1월 3일에는 언론사 20곳의 편집(보도)국장의 출신학교를 분석한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방송 5개사, 전국 단위 종합 일간지 10개사, 경제신문 2개사, 통신 1개사, 인터넷 신문 2개사 등 모두 20개 언론사의 편집국장을 분석한 결과, 서울대(10명)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고려대는 4명, 한국외대 3명, 서강대 성균관대 전북대 각 1명씩이었다.

▲ 서울의 주요대학 입시 설명회 일정을 소개하고 있는 2006년 11월 18일 <국민일보> 6면.
ⓒ 국민일보
물론 교육 환경 등을 봤을 때 '좋은' 대학과 '좋지 않은' 대학이 있을 수는 있다. 문제는 일부 언론이 '주요 대학'이라는 표현을 습관처럼 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 습관성의 본질은 뿌리 깊게 고정된 대학서열과 최근 대학 마케팅을 그대로 수용하는 관행의 영향 때문은 아닌지 반문해 봐야 한다. 명확한 기준 없이 반복되는 보도 용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정관념이 생기게 한다.

고려대 언어학과 유석훈 교수는 "분명히 '주요'라는 표현의 반복은 그 객체를 부각 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주요 뉴스라고 하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주요 대학이라고 말하면 중요한 대학으로 인식한다. 자꾸 듣다 보면 잘못 됐다는 생각보다는 그게 대중여론이라고 믿게 된다"고 지적했다.

미디어비평지 <오크노>(OKNO)의 박상건 발행인은 "공공저널리즘의 핵심은 사회적 책무다. 기자들은 보도의 영향력이 강하냐, 약하냐, 제한적이냐에 따라 사회에 크고 작은 파장을 미친다. 하나의 키워드도 사실에 근거하고 특정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해 독자를 자극하지 않았는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반복되는 단어는 마치 주사 바늘로 메시지를 주입 시키듯 강력한 효과를 낸다고 해서 언론학에서는 탄환이론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느냐"고 우려했다.

인터넷 취업전문 포털 인크루트의 발표에 따르면 2005년 상장사 및 공기업 489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채용관련 설문에서 '열린 채용을 실시한 기업들의 채용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열린 채용이라 함은 기업들이 자사에 맞는 인재 채용을 위해, 채용시 지원 자격 제한을 두지 않거나 완화하는 것을 말한다. 열린 채용 항목으로 학력이 두드러졌는데 입사지원서에 학력란을 없애거나 제한이 낮아진 기업이 22.1%나 됐다. 한 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우리 기업의 학력제한 폐지는 사회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학벌없는 사회'의 정세근 연구위원장도 "'주요 대학'이라는 표현 관행을 없애는 것은 학벌주의 타파의 중요한 시발점이며 이 폐해를 인지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언론 기관에 의견을 내야 한다"고 밝혔다.

태그:#주요 대학, #입시, #대학 입시, #대학서열, #인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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