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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 자영업자의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문제를 둘러싼 민주노동당과 카드업계의 신경전이 예사롭지 않다. 급기야 양쪽은 서로 상대방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여는 등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민노당의 주장대로 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하면 영세 자영업자가 되살아날까. 아니면 여신금융협회의 주장대로 수수료를 낮출 경우 카드업계는 공멸의 길로 접어들게 될까. <오마이뉴스>는 이 문제를 둘러싼 좀 더 활발한 논의를 위해 여신금융협회 임유 상무와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의 글을 차례로 싣는다. <편집자주>
▲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노동당 당사 앞에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운동' 선포식이 열렸다.
ⓒ 오마이뉴스 박정호
# 1. 미장원을 운영하고 있는 A씨, 건너편에 새로운 미장원이 개업한다는 소식에 억장이 무너진다. 경쟁은 격화되고 수익은 점점 줄어만 가는데… 때마침 가입하고 있는 미용조합에서 민주노동당과 함께 카드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하겠다면서 서명운동에 동참하란다. 수수료가 선진국의 서너 배에 달하고 대형 가맹점에 비해 너무 높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지역할당제라도 해서 더 이상 고객을 뺏기는 일이 없었으면 제일 좋으련만, 깎아준다고 하니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알아볼 요량으로 지난달 장부를 뒤적여 보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한다. "수수료가 1% 낮아지면 월 3만원 줄어들잖아! 아예 카드를 안 받으면 몰라도."

# 2. 동네에서 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B씨, 인근 대기업 정비업소 때문에 요즈음 죽을 맛이다. 최신식 설비를 들여오면 상황이 나아질 것 같아 은행 문을 두드린 지 한 달, 우여곡절 끝에 오늘 드디어 대출을 받았는데, 금리가 8%란다. 인근 정비업소는 최근 6% 대에 돈을 빌려 현대식으로 꾸몄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은근히 화가 난다. 더구나 매월 부담해야 하는 이자도 만만치 않고 보니 걱정이 태산이다. 그러나 '비록 금리는 높지만 돈을 빌려 투자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쓰린 가슴을 달랜다.


@BRI@설명의 편의를 위해 구성한 가상 장면이지만 현실과 그리 동떨어진 얘기가 아니니 먼저 독자들의 이해를 구한다. 위 얘기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모순점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대출이라는 금융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이자를 지불하는 것처럼 소비자의 카드 사용으로 인한 가맹점의 금융 편익에 대한 대가로서 수수료를 지불하는 것임에도 유독 카드수수료에 대해서는 사업자들이 지불 자체를 부정(?)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그 첫째다.

또 카드 가맹점 수수료의 절대치가 선진국에 비해 서너 배씩이나 높을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두 번째이며, 카드수수료나 대출금리나 모두 다 규모가 작은 영세 자영업자에게 높게 책정되는 듯한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가 마지막 의문이다.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자. 먼저 카드수수료 논쟁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오해부터 풀고 모순에 대한 얘기를 진행해야겠다. 언필칭 '카드수수료'는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의 줄임말인데, 혹여나 수수료라고 하니 마치 은행수수료처럼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카드 수수료 때문에 장사 못 하나?

분명한 사실은 카드수수료는 고객이 신용카드로 결제함에 따라 혜택을 보는 가맹점(사업자)이 부담하는 비용이라는 점이다. 위 사례에서 A씨는 카드수수료 자체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현금으로 받으면 되는데 굳이 카드를 받아 수수료만 나가고 세원만 노출된다는 불만이 근저에 깔려있다는 말이다. 자신이 받은 혜택은 잊어버린 지 오래된 터라, 수수료란 내지 않아도 되는 준조세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과연 가맹점은 카드를 통해 어떠한 금융 서비스도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자. 비록 우리가 잊고 있는 사실이지만 과거 현금사회에서는 결제 방식이 외상 아니면 현금이었기 때문에 대금 회수 여부에 따라 사업의 승패가 결정이 났다. 그런데 지금은 신용카드라는 편리한 결제 수단이 생김에 따라 사업주는 최소한 대금 회수의 문제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어디 이뿐인가. 매출도 늘어난다. 당장 현금이 없어도 구매가 가능하기에 고객은 과거보다 훨씬 손쉽게 구매를 결정하고 사업주는 매출이 증가한다는 말이다.

한 발 더 나가 보자. 카드수수료를 금융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 이유가 세원 노출에 따른 과도한 세 부담에 있는 것이라면, 카드 수수료를 인하하라고 요구하기에 앞서 지금도 시행 중인 카드 사용으로 인한 세액공제의 폭을 넓혀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순서상 맞는 것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숨기고 불리한 것만 크게 말하는 것이 세상사 이치라지만 카드수수료 때문에 장사 못하겠다는 주장만큼은 이쯤에서 접어주셔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카드 수수료율이 타국에 비해 높다는 것이(민주노동당은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 수수료가 서너 배나 높다고 주장) 두 번째 오해다. 흔히들 어떤 주장을 정당화하고자 할 때 다른 나라 사례를 들기 때문에 인용하는 것 그 자체야 뭐라 할 수 없지만 사례가 최소한 정당화의 수단으로 인용되는 것만큼은 피해야 한다. 그래야 합리적 토론이 가능해지고 객관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민주노동당이 예로 든 호주(0.99%)의 사례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다. 은행 간 담합으로 수수료가 올라갈 것을 우려해 법으로 정산수수료를 강제한 것일 뿐, 다양한 형태로 부족한 카드수수료를 보전하고 있는 나라를 예로 들면서 명목 수수료만 비교하는 우를 범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달라도 너무 다른 신용카드 시스템을 억지로 끌어다 비교하면서, '서너 배 높다'고 강변한다면 이는 명백히 왜곡이다. 하물며, 우리나라와 가장 흡사한 카드 제도를 갖고 있는 일본의 경우는 우리나라 평균 수수료율인 2.2%보다 훨씬 높은 3.4%임에도 인용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이르러서는 인용 자체의 신뢰마저 의심케 한다.

▲ 지난 2002년 여신금융협회 주최 신용카드 윤리강령 선포 및 자정결의대회(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현 카드 가맹점 수수료는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준

위 두 번째 사례에서 B씨는 대출금리 8%를 받아들이고 있다. 선진국인 일본에 비해 한참이나 높은 수준임에도 말이다. 물론 민주노동당이 우리나라 금리가 선진국인 일본에 비해 너무 높다면서 금리 인하를 촉구하는 입법 청원 운동을 한다는 말 역시 들어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라별 금융환경을 애써 무시하면서까지 우리의 카드수수료가 높은 이유를 설명했던 그 '기준'이라는 것이 왜 대출 금리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인지를 묻는다면 잘못인가? 궁금할 뿐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평균인 2.2%는 여러 조사기관의 분석 결과,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마지막 오해는 힘이 없는 영세가맹점의 카드수수료만 높게 책정했다는 부분이다. 교섭력이 약한 영세 가맹점에게 대형 가맹점에서 손해 본 것을 덤터기 씌우는 것이 아니냐는 항변인 듯싶은데, 이 지점에서부터는 자칫 정치적 논쟁으로 번질 위험이 있기에 조심스럽다. 그러나 필자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영세 가맹점의 수수료가 높은 것이 아니라 대형 가맹점이 낮다.

필자는 모 방송국 토론 프로에서 동일한 질문을 받고 이는 카드 사용 대금 규모의 차이에 따른 고정비 효과 등이 감안된 것이라고 설명한 바가 있다. 한 번에 10만원을 결제했을 때나 만원을 결제할 경우 모두 카드회사가 부담하는 고정비는 같으니 소액 결제가 주류를 이루는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수수료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높은 이유는 또 있다. 거래 규모가 큰 곳을 우대하는 가격정책이 그것이다. 몇 십 포기 단위로 배추를 구입하는 영세 상인에 비해 트럭 단위로 구매하는 대형마트에게 배추값을 낮게 받는다는 시장경제 논리와 같은 맥락이다.

정치권 수수료 인하압력은 카드업계 공멸하자는 것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가맹점별 대손율이나 사용대금 규모 그리고 연계 매출 효과 등과 같은 순전히 경제적 요인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결과로서 가맹점 수수료율이 차이가 나는 것이지 결코 일부 주장처럼 대형 가맹점에서 손해 본 것을 교섭력이 약한 영세 가맹점에 전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해야겠다. 지난날 우리 카드 업계가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형 가맹점 수수료율의 현실화를 주장했을 때는 고객을 볼모로 한다면서 우리의 주장은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아무런 대안도 없이 영세 자영업자의 수수료가 높다고만 주장한다면 이는 모처럼 회생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카드산업을 또다시 위기로 몰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적절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으나, 쥐도 도망갈 구멍을 보고 쫓으라는 말이 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지난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바 있는 카드업계의 '2조원 순익 신화'조차도, 수조원의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연체율 하락이라는 외생적 변수로 인해 모 카드회사가 1조가 넘는 이익을 내고 다른 회사들이 간신히 흑자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가능해진 것 아닌가.

이 시점에 정치권이 제기하고 있는 '인하 압력'은 공멸하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정부나 정치권의 균형 잡힌 시각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어려운 영세 상인들의 형편을 낫게 하자는데 그 어떤 이견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번지수가 틀렸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리 정치의 영역으로 변질된 논쟁이고 자칫 말 잘못했다가는 양극화의 주범으로 찍히는 것이 시간문제라 하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디 세몰이를 통한 자기주장의 반복만은 피하자. 이성적인 대화, 그리고 합리적 토론만이 해결책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진정으로 중소 영세상인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면 우리 카드 업계도 그 논의를 피할 생각이 없음을 밝힌다.

덧붙이는 글 | 임유 기자는 여신금융협회 상무입니다


태그:#수수료 인하, #수수료 논쟁, #신용카드 수수료, #여신금융협회, #신용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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