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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파업에 들어간 <시사저널> 기자들이 24일부터 직장폐쇄에 맞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6월 금창태 사장은 삼성그룹 관련 기사를 삭제하고, 이에 항의하는 이윤삼 <시사저널> 편집국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그 뒤 사측과 기자들은 공방을 벌여왔고, 최근엔 기자들이 배제된 채 만들어진 '짝퉁' <시사저널>이 만들어지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각계 인사들의 릴레이 기고를 싣고 있다. <편집자주>
▲ 시사저널 노조원들은 사측의 직장폐쇄에 항의하며 24일 오전부터 서울 서대문 시사저널사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정청래 열린우리당 의원과 무소속 임종인 의원이 노조대표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5일부터 시작된 시사저널 파업사태가 대체인력 투입을 통한 '파행발행'에 이어 사측이 직장폐쇄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옴으로써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 사태를 지켜보며 필자는 착잡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8년 전 꼭 이맘 때 필자는 <시사저널>의 모기업인 일요신문사ㆍ서울문화사에서 있었던 '35일간의 파업' 당시 파업 지도부의 한 사람이었다.

동아그룹 부도의 유탄을 맞고 '흑자부도' 상태에 있었던 <시사저널>이 일요신문사ㆍ서울문화사에 인수된 것도 8년 전 파업을 겪은 직후였다. 8년 전의 파업은 노사 양측의 원만한 타결로 35일 만에 끝났지만 이번 파업은, 지금처럼 간다면 최소한 '35일'은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사측이 파업을 학습한 '파업 유단자'라면 노조는 오랜 기간 부도 상태에서 월급 없이 일터를 지킨 경험이 있는 '무임금 투쟁' 유단자이기 때문이다. 경험에 비추어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쥔 심상기 회장이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파업의 장기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 <서울문화사>·<시사저널> 대표이사 심상기 회장
ⓒ 연합뉴스 김동진
심 회장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서 <일요신문> <우먼센스> <리빙센스> <아이큐 점프> 등 16여개에 이르는 미디어를 성공시킨 잡지출판계의 거목이다. 공·사석에서 홍콩의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을 자주 거론하는 등 한국의 '머독'을 꿈꾸어 온 인물이기도 하다. 삼성 출신인 그는 오랫동안 잡지 출판계의 '삼성 신화'를 꿈꾸어왔다.

창업 초기에는 인재를 소중히 여겨 '삼고초려'해서라도 능력 있는 인물을 끌어오기 위해 몸소 스카우트 대상자의 집을 찾아가는 등 존경받는 경영자였다. 그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서울미디어그룹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장담한다. 심 회장에게 흠이 있다면, 삼성의 최고경영자가 그렇듯, 노조를 몹시 불편해하거나 때때로 적대시한다는 점이다.

모기업인 일요신문ㆍ서울문화사에 노동조합이 결성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독립 언론을 자처하는 <시사저널>이 지난해 '삼성 기사삭제 파문'이 있고서야 노동조합을 결성한 데는 이런 배경이 큰 몫을 차지한다. 심 회장이 이번 <시사저널> 파업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사태해결을 어렵게 하는 핵심 인물로 거론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경한 입장의 경영진보다 심 회장이 직접 파업 해결 나서야

거기에 심 회장 주변에는 8년 전의 파업을 겪었던 강경파 경영진이 최측근으로 포진되어 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강경파들은 <시사저널>이란 매체의 특수성과 소속기자들의 독립성을 간과하고 이들을 사내 부적응자로 낙인찍어 '미운오리새끼' 취급하듯 해왔다고 한다.

이들은, 파업이 시작되자 '이번 기회에 확실히 손봐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심 회장에게 주문하고 있다고 한다. 편집권 갈등에서 비롯된 이번 파업이 노조의 승리로 끝날 경우 <시사저널>은 전보다 더 장악하기 어려워진다는 경영진의 인식이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가 심 회장의 손을 떠난 게 아닐까 우려되기도 한다. 심 회장의 인재중시 경영의 표본이었고, <시사저널> 기자들과 사측의 요구를 조화시키려 분투했으며, 필자가 몸담았던 <일요신문>에서 오랜 기간 믿고 따랐던, 이윤삼 편집국장을 한 순간에 내친걸 보면 경영진의 비이성적 광기가 섬뜩하기까지 하다.

나는 이 국장의 사표 수리가 심 회장의 본뜻이라기보다는 브레이크가 없이 질주하는 일부 강경파의 독단이 득세하고 있는 사내 분위기의 결과라고 단언한다. 내가 아는 심 회장은 적어도 합리적 경영 리더십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사태가 심 회장의 리더십은 실종되고 <시사저널>이란 매체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한 일부 경영진의 주문대로 굴러가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인수 이후 8년이나 노조를 만들지 않고 있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편집권 문제를 계기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까지 하게 된 상황을 심 회장은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 시사저널에게 편집권 문제는 이 시사주간지의 오늘을 있게 한 '생명선'이나 마찬가지다. 심 회장은 편집국장 임명이 온전히 인사권문제라고 주장할지 모르나 이 인사권이 기자들의 취재현장풍토와 취재 내용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지는 누구보다 기자출신인 심 회장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 시사저널 노조원들은 사측의 직장폐쇄에 항의하며 24일 오전부터 서울 서대문 시사저널사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편집권은 <시사저널>의 생명... 언론인 출신 심 회장이 더 잘 알 것

삼성 관련 기사가 편집국장의 동의도 없이 삭제된 이번 사태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경우 이후 벌어질 사태를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기자들은 앞으로 삼성 관련 문제 취재에 위축될 수밖에 없다. 취재처가 기자들을 무시하거나 모욕을 줄 가능성도 높아진다. 아예 기획 단계에서 걸러지거나 설사 기획안이 통과돼 기자가 근성을 발휘해 열심히 취재한다고 하더라도 '윗선'에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이런 관행이 반복되다 보면 기자들은 스스로 알아서 '기도록' 길들여진다. 우리 언론현실에서 재계 관련 기사가 유난히 '말랑말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날선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성역 없는 취재를 통해 독립 언론의 이미지를 독자들에게 각인시켜온 <시사저널> 기자들이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시사저널>은 '그 자존심'으로 지금까지 먹고 살았고 그것을 버린다면 이미 <시사저널>이 아니라는 판단이 파업결정을 한 배경으로 생각된다. 어떤 형태로든 이번 '기사삭제' 사태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경우의 재발방지책 마련은 필요하다는 얘기다.

심 회장이 직장폐쇄까지 들고 나온 걸 보면 8년 전과는 달리 이번 파업에 노조를 '이기겠다'는 생각이 확고한 듯하다. 이대로만 간다면 이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이길 것이다. 하지만 심 회장의 '승리'는 <시사저널>의 몰락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껍데기를 들고 승리한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렇더라도 이겨야 한다면 그러길 바란다. 만에 하나 원만한 해결을 바란다면 노조와 대화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심 회장은 노조의 파업돌입 이후 아예 대화의 문을 걸어 잠궜다고 한다. 노조가 요구하는 편집국장 임면동의제나 편집국장 중간평가제가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편집국장 불신임제도 차선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심 회장은 창업초기 인재를 아꼈던 합리적 경영자로서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주변의 강경일변도를 외치는 경영진은 심 회장의 합리적 판단을 방해하는 '독버섯'임을 깨달았으면 한다.

비록 8년 전 파업 당시 심 회장을 힘들게 했지만 필자의 가슴 속에 심 회장은 취재 중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해 있던 외진 병원에 몸소 와 따뜻한 위로를 하고 간 분으로 남아 있다. 대타협을 통해 노사 모두 파업에서 이길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길 간절히 빈다.

태그:#시사저널, #시사저널 파업, #노조, #시사저널 노조, #일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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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 연구로 고려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요신문 기자, 고려대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교수, 경상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서 '갈상돈 박사의 뉴스브리핑'을 담당하기도 했다. 현재 사단법인 지방혁신연구원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시사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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