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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 가는거야~!" 장애아들에게 겨울은 정말 힘든 계절입니다. 건강한 아이들보다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쉽게 감기에 걸리고 걸음걸이가 불편하기 때문에 사고 위험도 그만큼 크기 때문이지요.
ⓒ 김혜원

폭설과 강추위가 예상된다는 지난 금요일(26일). 장애인 주일학교 아이들과 함께 눈썰매장으로 일일 캠프를 떠났습니다.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장애아들이기에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만 예상외로 포근한 날씨에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언제나 그랬듯 날씨는 우리 편이었습니다.

 

장애아들에게 겨울은 정말 힘든 계절입니다. 건강한 아이들보다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쉽게 감기에 걸리고 걸음걸이가 불편하기 때문에 사고 위험도 그만큼 크기 때문이지요.

 

겨울이 기다려지는 스키, 스케이트, 눈썰매 하다못해 눈사람 만들기나 눈싸움조차도 장애아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놀이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놀이는커녕 잠깐의 외출도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대부분의 장애아는 날씨가 따뜻해지기 전까지는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처럼 집안에서만 지내게 됩니다.

 

"까아악!!!"

"우아!! 우아!!"

"눈이다. 눈이다."

 

눈부시게 흰 눈으로 덮인 넓은 눈썰매장을 본 아이들이 환호하기 시작합니다. 눈썰매장 한 귀퉁이에 모아둔 눈덩이를 만져보기도 하고 맛을 보기 위해 입으로 가져가는 아이도 있습니다.

 

"장갑을 꼭 끼어야 해요. 작은 친구들은 선생님이 안고 타시구요. 몸집이 큰 친구들은 혼자 탈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세요.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곳이니 우리 친구들을 잃어버릴 염려도 있습니다. 자기 짝꿍을 절대 시선에서 놓치지 마세요."

 

 

일찌감치 자기 눈썰매를 가지고 와서 출발선에 의젓하게 앉아 있는 친구. 눈썰매가 처음인지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벌벌 떨고 있는 친구. 얼른 내려가고 싶다고 떼를 쓰는 친구. 실내에서는 볼 수 없는 상기되고 즐거운 표정이 역력합니다.

 

"자 이제 출발합니다. 출발!!"

 

안전보조원의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아이들의 눈썰매는 쏜살같이 아래로 미끄러집니다.

 

"까아아아~"

"이이히~"

"우아아아~"

 

아이들 입에서 가지각색 환호가 터져 나옵니다. 출발선에 앉아 있을 때만 해도 겁이 나서 곧 울 것 같은 표정이던 준화도, 빨리 출발하자고 조르던 서진이도, 무게 때문에 쉽게 밀려나가지 못해 발을 구르던 병휘도 눈밭 위를 시원하게 미끄러져 내려올 때는 날쌘 제비가 따로 없습니다.

 

적지 않은 몸무게 때문인지 단번에 멋지게 미끄러져 내려온 서진이는 정말 신이 나나 봅니다. 평소에는 움직이는 걸 싫어해 겨울잠 자는 곰처럼 꼼짝도 하지 않던 녀석인데 어느새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출발지점을 향해 걸어 올라갑니다.

 

"선생님 재미있어요. 또 탈 거에요. 재미있어요. 재미있어요."

 

 

혼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걸 좋아하는 진우는 넓은 눈썰매장에 오니 더욱 신이 났습니다. 한 마리 노루처럼 눈밭 위를 겅중겅중 뛰는 진우와 땀을 뻘뻘 흘리며 진우를 잡으러 다니는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 우스워 모두들 허리를 잡고 웃습니다.

 

뇌성마비 1급인 택수는 대학생 자원봉사자와는 거의 열 살 넘게 차이가 나는 큰형님입니다. 휠체어도 스스로 밀지 못하는 택수는 학교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부모님이 일을 나가시면 하루종일 집에서 갇혀 지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택수에게 캠프는 정말 좋은 바깥활동의 기회가 됩니다.

 

휠체어에 앉아 다른 아이들의 눈썰매 타는 모습을 지켜보던 택수가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킵니다. 자기도 타고 싶다는 표현이지요.

 

"택수형, 우리도 탈까? 탈 수 있겠어?"

 

얼른 타고 싶다며 휠체어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는 택수. 적지 않은 무게의 택수를 두 남자 선생님이 휠체어에서 안아내려 썰매 위에 내려놓으니 손가락으로 아래쪽을 가리키며 출발하자는 신호를 보냅니다.

 

"좋아 가는 거야!! 형 출발한다!!"

"으으으으."

 

 

택수와 선생님이 탄 눈썰매가 눈밭을 미끄러져 내려옵니다. 커다랗게 벌어진 택수의 입. 한겨울 동안 집안에 갇혀 있으면서 몸속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간 듯 즐거운 비명을 지릅니다.

 

선생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보람인지 직접 경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 중증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이 바깥놀이를 하려면 많게는 두 사람 이상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의 답답함을 이해하면서도 쉽게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장애아들의 캠프는 겨우내 활동량이 없이 집에서만 지내는 아이들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단 하루도 아이 뒷바라지에서 놓여나지 못하는 부모님들에게 잠깐이라도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드린다는 의미에서도 꼭 필요한 행사랍니다.

 

하루 동안의 캠프를 마치고 눈썰매장을 빠져나오니 흐려진 하늘에서는 굵은 눈발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너무나 조용한 차 안 분위기에 문득 뒷자리를 돌아보니 강아지처럼 눈밭을 뛰어 놀던 경진이도 헌수도 준화도 어느새 자원봉사자 선생님과 머리를 맞대고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낮게 코 고는 소리로 가득한 차 안. 밀려오는 행복에 명치끝이 저려옵니다.


#중증장애인#장애인#자원봉사자#장애#장애인 주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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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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