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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저널> 노조원들은 사측의 직장폐쇄에 항의하며 24일 오전부터 서울 서대문 <시사저널> 사옥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시사저널> 기자가 천막농성장에 지지자들의 격려글을 붙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첫 파업치고 '빡세게' 한다."(웃음)

차형석 <시사저널> 기자는 사옥(서울 중구 충정로) 앞에 선 천막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차 기자는 "버텨야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시사저널> 노동조합은 24일, 사측의 직장폐쇄(22일)를 규탄하며 사옥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파업 중인 기자들은 이날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연 뒤 문 닫힌 편집국을 대신할 '임시 편집국'을 사옥 앞 인도에 설치했다.

이들은 사무실 근처에 대체 편집국과 노조 사무실을 열 공간을 찾을 때까지 '72시간 철야농성'에 들어갈 예정이다. 차 기자는 "노조 사무실도 따로 없는 상황에서 사측이 갑자기 직장폐쇄를 하는 바람에 갈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갈 곳이 없어 급조한 천막이다 보니 이곳저곳 엉성했다. 초록색 천막은 이날 오전 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 빌려왔고, 길바닥의 차가운 기운을 막기 위한 스티로폼을 깔 시간도 없었다. 열을 뿜는 것은 천막 한쪽 구석의 난로뿐이었다.

본업이 취재와 글쓰기였던 이들이 천막농성에 익숙할 리 없었다. 정희상 기자는 "파업도 처음이고, 천막농성을 해본 적도 없다, 만날 취재만 다녔는데…"라고 말했다. 차 기자는 '천막농성 선배'인 한 노동자 취재원에게서 '잘 싸우라'는 내용의 전화 연락을 받았다.

▲ <시사저널> 표지를 모아둔 현수막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사측 주도로 제작된 일명 '짝퉁 시사저널'이 발행된 이후, 잡지 표지를 내걸어 놓던 회사앞 게시판이 텅 비어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천막농성 취재기자에서 취재대상으로

천막농성 취재기자에서 취재대상이 된 이들은 "참담하다"고 입을 모았다. 안은주 기자(노조 사무국장)는 "여기까지 오리라고 예측하지 못했다"면서 "직장폐쇄를 하지 않겠냐는 걱정을 하긴 했는데, 이렇게 예상이 적중하다니…"라며 허탈해했다.

정 기자는 "첫 파업이니까 멋모르고 나온 것 같다"며 농담을 건네면서도 "경영진에게 얻어맞고 다니지만 쓰러지거나 굴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줌밖에 안 되는 <시사저널> 노조원들의 투쟁이 경영진에게는 '식은 죽 먹기'겠지만, 우리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신호철 기자는 "노조가 파업 중인데도 잡지가 계속 발행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잡지가 계속 나오면 노조가 사측에 대응할 수단이 없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이어 "일방적으로 직장을 폐쇄한 것 또한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경영진은 기자들이 파업에 들어가자 대체 편집위원을 투입해 3주째 잡지를 제작했다.

노조는 천막까지 치며 사측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사태가 점차 확대되면서 노조원들의 생계도 지장 받게 됐다. 일부 기자들은 기자회견, 천막농성 등이 이어지면서 취재 현장과 멀어지는 걸 걱정하고 있다. 취재원이 찾아와도 "사태 해결 이후에 이야기하자"며 돌려보내야 할 지경이다.

그나마 힘이 되는 곳은 이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차 기자는 지난 19일 열린 거리문화제 영상을 본 장모에게서 "회사에서는 쫓겨나도 언론사에는 남겠네, 당당하게 싸우게"라는 응원메시지를 받았고, 안 기자 또한 처음에는 이번 사태를 걱정하던 가족들이 지금은 열렬한 지지자가 됐단다.

신 기자는 "<시사저널>이 대단한 잡지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격려 문자도 많이 받았고 잡지를 기다린다는 독자들도 많이 만났다"며 "다시 기자일로 돌아가면 새로운 각오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정청래 열린우리당 의원(왼쪽 두번째)과 무소속 임종인 의원(왼쪽 세번째)이 노조대표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열린우리당, 조사위 구성... "기자가 쓰지 않은 기사로 엮인 건 '시체저널'"

한편 열린우리당은 <시사저널> 사태와 관련해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정청래)를 구성하기로 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이날 오전 비상대책위원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언론사가 편집권을 침해받으면서 직장폐쇄까지 이른 초유의 사태를 방관하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조사위원회 구성의 배경을 밝혔다.

정청래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 현장에서 만나야 할 언론인들을 길바닥에서 만나게 됐다"며 "올해 20주년인 6월 민주화항쟁으로 언론의 자유를 얻었지만, <시사저널> 직장폐쇄라는 부끄러운 사태를 목도하면서 아직도 언론 자유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자들이 쓰지 않은 기사로 엮인 <시사저널>은 잡지의 정신의 혼을 빼앗긴 '시체저널'"이라며 "23명의 기자들이 길거리 천막이 아니라 편집국에서 기사를 쓰고 본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재정경제위원회, 정무위원회 등 6~7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면밀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2일부터 무소속인 임종인 의원도 기자회견에 참석해 "열린우리당이 진상조사위를 구성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며 "열린우리당이 오랜만에 정신 차린 것 같다"고 평가했다.

▲ <시사저널> 노조원들은 직장폐쇄에 항의하며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천막 앞에 붙어 있는 건 <시사저널> 역대 표지 모음 현수막.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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