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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들이 자리를 뜬 국회의사당. 봄 이사철에 전월세 대란이 예상되니까 국회가 부동산 입법을 서둘러 시장을 진정시켜야 한다며 1월 임시국회를 열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절반의 의원이 외유 길에 올랐거나 오를 예정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헷갈린다. 발언 하나하나에 진정성이 담겨있다고 굳게 믿을수록 더욱 헷갈린다. 발언의 앞과 뒤가 멱살잡이를 하고 발언의 맥락이 트위스트 춤을 춘다.

각설하고, 사례 두 가지를 소개한다.

내각제가 부럽다는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11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속내를 드러냈다. "대통령제 하는 나라보다 내각제 하는 나라가 부럽다"고 했다.

"대통령 연임제를 하는 미국에선 부시 대통령에 대한 국민 신임도가 추락하는 상황이 와도 임기를 마쳐야 하는 고통이 있는 반면 독일ㆍ영국 같이 내각제를 하는 나라는 국민 신임만 계속 되면 임기 제한 없이 국정을 계속할 수 있고 신임이 떨어지면 깨끗이 물러나는 모습이 당당하게 보인다"고 했다.

대통령의 속내를 전한 강봉균 정책위 의장이 거들었다. "이번에 개헌이 안 돼 다음 정권으로 넘어간다면 4년 연임제가 아니라 내각제를 논의하는 게 더 좋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했다.

이해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계산에 따르면 이번에 개헌을 하지 못하면 20년을 기다려야 한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자기 임기를 순순히 내놓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묻는다. 대통령은 왜 국민에게 고통을 감내할 것을 요구하는가? "국민 신임도가 추락하는 상황이 와도 임기를 마치는" 대통령을 지켜보는 고통을 왜 20년 동안 감내하라고 하는가?

이런 반박이 나올 수 있다. 꿩 대신 닭이라는 주장이다. 순화해서 표현하면 최선을 포기하고 차선을 택했다는 주장이다.

내각제 지지 여론보다는 4년 연임제 지지 여론이 높으니까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다고 판단해서 눈물 머금고 차선을 택했노라고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아니다. 4년 연임제에 대한 찬반 의견은 갈리고 있고, 임기 내 개헌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으로선 수렴이 아니라 돌파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차피 입술 질끈 깨물고 비장한 각오로 나서야 한다. 그렇다면 최선을 택하는 게 오히려 순리에 맞는 것 아닌가?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한나라당

한나라당의 태도는 단호하다.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개헌 타령이냐는 주장이다. 한나라당 대변인은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국정안정과 경제회생"이라고 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경제살리기에 온 힘을 쏟아야 할 중대한 시기에 개헌 논의로 다시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선거 밖에 안 보이는" 대통령, "정치도박에 올인하는" 대통령을 비판했다.

궁금하다. 한나라당은 '민생제일주의'를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

바로미터가 있다. 부동산이다. 정부여당이 어제 부동산 대책을 다시 내놨다. 분양원가 공개를 투기과열지구의 민간아파트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한나라당의 논평이 나왔다. "어정쩡한 정책"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분양가 상한제만 실시해도 드러나게 되는 7개 항목을 공개한다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 거의 없는 '무늬만 공개'하는 방안"이라며 "오히려 공급을 줄일 가능성만 높은 방안"이라고 했다.

대다수 언론이 지적하고 시장이 걱정하는 내용이니까 그렇다 치자. 주목거리는 그 다음이다. 정부를 향해 "공급축소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먼저 제시할 것"을 요구했고, "종합적이고 중장기적인 부동산 정책"을 주문했다.

한나라당의 주장대로라면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은 "정치 도박"과 "선거"에 올인하고 있다. 여당은 그런 대통령에 부화뇌동하고 있다. 기대할 게 별로 없다. 그럼 제1야당이라도 나서야 한다.

무턱대고 하는 말이 아니다. "종합적이고 중장기적인 부동산 정책"이 있다. 한나라당은 대지임대부 분양 방식을, 열린우리당은 환매조건부 분양방식을 도입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잃은 정부는 더 이상 일회적인 대책을 내놓아봐야 부작용만 심화시킬 뿐"이니까 한나라당이라도 나서서 중장기 대책을 서둘러 제정하는 게 온당하다.

마침 제안도 있었다. 열린우리당의 이계안 의원과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의원이 제안했다. 봄 이사철에 전월세 대란이 예상되니까 국회가 부동산 입법을 서둘러 시장을 진정시켜야 한다며 1월 임시국회를 열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절반의 의원이 외유 길에 올랐거나 오를 예정이다. <서울신문>이 지난 1일 전한 내용이다.

'민생 제일'보다 '외유 우선'을 택한 국회의원들 중에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세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이건 분명하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1월 임시국회 소집을 먼저 제안한 적이 없고, 소속 의원들의 외유 금지령을 내렸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없다.

고민이 깊어진다. 어디까지 발을 담글 것인가?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설전은 경계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대통령은 "여론 지지가 좀 높으니깐 마치 받은 밥상으로 생각하고 혹시 김샐까봐 몸조심하는" 한나라당을 "오만"하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구구절절 코흘리개 골목대장과 같은 억지"를 부리는 노무현 대통령을 보고 "답답"하다고 했다.

멱살잡이를 넘어 주먹다짐 일보 직전까지 간 양쪽이다. 편을 들든 뜯어말리든 뭔가 해야겠는데 선뜻 나서기가 어렵다. 양쪽 모두 빈수레 위에서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태그:#4년 연임제, #분양가 상한제, #민생, #부동산,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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