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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전북 군산)의 공개적인 지도부 비판을 계기로 이른바 '통합신당'이 지향해야 할 노선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같은 당의 최재천 의원(서울 성동갑)이 강봉균 의장의 ‘통합신당의 정책비전모색’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다. <편집자주>
▲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은 1월 8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실사구시 의원모임 강봉균'의 이름으로 '통합신당의 정책비전 모색'이란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은 첫번째 주제로 '한반도 평화정책', 두번째 주제는 '경제정책’을 다루고 있다. 앞으로도 '복지 정책'에서 '의회민주주의 발전'까지 총 8개의 주제를 다룰 예정이라고 했다.

필자는 강 의장의 이런 제안과 글쓰기를 전적으로 환영한다. 또 경제관료로서, 국회의원으로서, 더 나아가 우리당 정책위의장으로서 강봉균 의장을 존경한다. 하지만 사유와 가치관과 정책 비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후자의 관점에서 강봉균 의장의 정책비전에 대한 비판적 반론을 제기코자 한다. 그리고 이 작업은 강봉균 의장의 정책비전 발표에 대응하는 형식으로 계속할 예정이다.

이러한 비판이 강봉균 의장 개인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또 이런 '생산적 비판'이 '친노-반노'라는 저급한 대립구조를 넘어서는 일로 평가되길 희망한다. 그리고 이런 '논쟁'이 전당대회를 둘러싼 단순한 '주도권 싸움'이나 전혀 무의미한 '전당대회 절차 논쟁'으로 해석되지 않기를 또한 희망한다.

아울러 이런 '토론의 장'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정책정당', '민생정당', '개혁정당', '눈높이정당'을 지향하는 정당의 참 모습일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 논쟁의 밑바닥에는 열린우리당의 과거에 대한 분명한 반성과 함께 민주개혁세력의 원대한 꿈과 비전도 함께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의 구상은 민주개혁진보세력의 역사적 흐름과 전혀 무관

우선 죄송한 말씀부터 드려야겠다. 강 의장의 '통합신당의 정책비전모색'은 끊임없는 창조적 파괴와 진화와 시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대안으로 자리한 민주개혁진보세력의 역사적 흐름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건 '역주행'이다. 민주개혁진보세력의 과거를 송두리째 부인하는 일종의 '반동'이다.

지난 9년간 민주개혁진보세력이 이끌어가는 정부와 정당의 중심 혹은 최전선에 서 있었던 분이 어떻게 이런 식의 정책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지 필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먼저 강 의장이 주장하는 '한반도 평화정책'을 보자. 다행히 일부 언론에 이야기했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반도평화정책을 "맹목적인 민족간 공조정책"으로 사실상 폄하하고 있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한반도 평화정책을 마치 "우리 민족끼리 잘해보자는 데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것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

'자주와 동맹'의 이분법적 대립이야말로 이른바 '보수꼴통'의 프레임이요, 한나라당의 덫에 걸리는 일이다. 평생을 흑백논리로 살아온 사람에게는 흑 아니면 백밖에 없다. 사지선다형도 아닌 O, X 방식의 문제해결 능력이야말로 국가보안법의 사유방식이다.

이런 사유체계에서는 자주 아니면 동맹밖에 없다. 자주는 곧 '민족공조'이고, 북한이 말하는 '우리끼리'가 되고 만다. 자주는 곧 '친북'이고, '친북'은 곧 '반미'다. 또 '동맹'은 '친미'다. 마치 십자가밟기처럼 자주와 동맹 사이에서, 친미와 친북 사이에서 국민들은 선택을 강요당한다. 강봉균 의장의 논리도 이 프레임에서 한치도 벗어나 있지 않다.

필자는 줄곧 주장해 왔다. 이런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고,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우리의 '공간을 창출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북핵문제와 한반도 통일을 이루는 핵심해법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시장경제 수용은 햇볕정책의 '비대칭적 상호주의' 결과

ⓒ 오마이뉴스 이종호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에 인도적 지원과 개성공단 등 경제협력사업을 추진했다. 북한은 체제에 대한 안전을 바탕으로 7·1 경제개선조치를 통해 일정부분 시장경제질서를 받아들였다. 지난 7월 24일 발표된 미국의 '씨티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경제개방 수준은 중국의 80년대 후반 상황에 비견될 정도이다. 이런 성과는 햇볕정책에서부터 계속되어 온 '비대칭적 상호주의'의 결과이다.

보수극단주의자들은 '원시경제의 물물교환'을 상정한다. 북한에 1만원어치의 인도적 지원이나 경제협력이 이루어진다면 북한도 1만원 어치의 상응하는 댓가를 내어놓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다른 두 체제 사이에 자본주의의 매매나 교환 개념이 자리할 여지가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상호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물물교환 개념의 상호주의, 단기적 상호주의야말로 대단히 조급한 사고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사회주의 경제에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은 작년 도소매시장 경제성장률이 10%를 넘나든다. 북한으로 하여금 시장의 힘을 맛보게 한다. 돈의 위력을 느끼게 한다. 자본의 힘을 깨닫게 한다. 노동의 대가성을 인정하게 한다. 근로관계의 종속성을 받아들이게 한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본질적 의미의 상호주의'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럼에도 강 의장은 '상호주의적 대북지원사업'을 이야기한다. 국민의 정부 당시 청와대 정책수석까지 지낸 강 의장의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니 더더욱 놀랍다.

상호주의와 관련해서는 또 다른 관점에서의 비판이 필요하다.

대북지원비용은 단순한 상호주의로 해석할 일이 아니다. 강봉균 의장은 경제전문가 출신이다. 기업에도 단기투자가 있고, 장기투자가 있다. 단기이익이 있고, 장기이익도 있다. 정부 경제정책에도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는 게 있고, 이득은 나지 않지만 사회적 투자가 있고 사회적 인프라 구축사업도 있을 수 있다. 사기업 영역은 이익창출에 있지만 공적 영역은 공익성 확보에 중점이 두어지기도 한다.

대북지원비용은 '평화비용'이다. 대북지원비용은 '통일을 위한 투자'다. 그리고 '통일비용'이다. 통일은 대한민국 헌법의 최고 목표이다. 통일을 위한 비용지출, 통일을 위한 중장기적 투자, 이것은 헌법상 의무에 충실하는 일이다. 무력을 증강해서 통일을 꾀하는 방법도 있고,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서 통일을 꾀하는 방법도 있다. 선택은 정책결정자의 몫이겠으나, 필자는 북한의 연착륙과 평화통일을 위해서 북한을 경제적, 사회적으로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투자를 선택하는 것이 민주개혁진보 진영의 일관된 흐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왜 재벌 소유구조에 대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 적용 않는가

둘째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다.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정부규제 해소'라는 총론에는 당연히 동의한다. 강 의장의 논리는 정부규제를 해소하면 기업의 투자가 살아나고, 성장이 계속되며, 일자리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하게 지적할 것이 한 가지 있다. 강 의장이 말하는 기업은 과연 어떤 규모의 기업을 말하는 것인가. 여기에서의 기업은 대기업이다. 아니 재벌기업이다. 재벌의 소유구조안전, 재벌의 3세 승계 보장을 통한 투자활성화야말로 극단적 보수주의자들, 소유권 절대주의자들, 시장만능주의자들의 스테레오 타입형 주장이 아니었던가.

영국 캐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저투자, 저성장, 고용불안'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기본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재벌기업의 경쟁력은 인정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일자리의 86.5%는 중소기업의 몫이다. 재벌기업 중 중소기업과의 연관관계를 통해 제품을 생산하지 않고 있는 기업이 있을까. 또한 금융자본에 의한 신자유주의가 고용 없는 성장을 가져오고 있다는 것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공지의 사실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재벌기업과 일반 대기업,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대기업과 영세자영업자, 대형마트와 동네 구멍가게,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체인형 뷰티살롱과 성동구 옥수동 산동네의 미장원 간의 심각한 양극화를 사회적 안전망과 정부의 적극적 개입 없이 그저 시장 만능과 규제완화와 성장주의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그저 '맹신'에 불과하다. 이것이야말로 현장경제가 아닌 '책상물림형 경제'라는 것을 정면으로 말해주는 증거이다.

재벌기업에 대한 대표적인 정부규제가 '출총제'와 '금산법'임을 상기하자. 도대체 출총제와 금산법 적용대상이 몇 개나 되는가. 그리고 어느 재벌에 해당되는지 뻔히 아는 사실 아닌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합의를 인정하는 나라가 도대체 세상 어디에 있는가.

당장에 독일을 예로 들 것이다. 독일에서의 금융자본의 의미가 한국에서의 금융자본의 의미와 다르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경원대 홍종학 교수에 따르면 “기형적 지배구조를 가진 우리 기업들에게 출총제 적용이야말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맞추자는 요구”라는 것이다. 다른 분야에서는 그토록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야기하면서도 왜 재벌의 소유구조에 대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일까.

▲ 지난해 8월 9일 오전 여의도 전경련 빌딩에서 열린 '열린우리당-전경련 정책간담회`에 참석한 인사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으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회장과 손을 잡고 있는 강봉균 정책위의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미 FTA, 자주·동맹의 이분법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세계 각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일반론에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극적'이라기보다는 '전략적'인 추진이다. 전략의 핵심은 정확한 국가정책의 방향 제시에서 출발한다. 국가발전에 대한 전략적 목표가 있어야 하고, 거기에 따라 전술적 수단으로 FTA가 제시되어야 하며, 역시 전술의 하나로 국가와 지역이 선택되어야 한다.

FTA 체결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FTA는 내적 협상과 외적 협상이 조화를 이루며 진행되어야 하고, FTA와 신자유주의가 결합될 때 극단적인 양극화로 치닫을 수 있다는 위험회피수단까지도 충분히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미 FTA 가 제대로 된 준비, 제대로 된 협상, 제대로 된 대책 마련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되는가.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자국의 법과 제도를 손대는 일은 ‘털끝만큼’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 점은 절대적으로 협상대상이 아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사법주권, 정책주권, 경제주권, 조세주권마저도 협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포기할 태세가 되어있다. 미국은 주 정부의 권한은 FTA 에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우리 정부는 지방자치정부의 권한은 ‘절대가침’의 영역으로 취급한다.

미국은 1차산업과 3차산업의 강대국이다. 그래서 우리는 1차산업과 3차산업은 열어준다. 한국은 2차산업의 강국이다. 한국이 FTA에서 실익을 얻기 위해서는 관세 철페는 별의미가 없다. 관세철폐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미국이 5% 더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반덤핑법 등'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완화시킬 수 있는 '무역구제' 부분에 대한 분명한 성과를 얻어야만 한미 FTA는 비로소 정당성을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절대 불가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 FTA를 자주와 동맹의 이분법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경제문제를 철저히 실익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도리어 한미군사안보동맹의 관점에서 재단해 버리는 우를 범하는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왜 이미 존재하는 정당과 똑같은 정당을 또 만들려고 하나

마지막으로 나는 강 의장의 '통합신당의 정책비전 모색'에서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다. 강 의장의 글은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열린우리당의 위기는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한 데 있다. 지지자들의 생각을 정책과 법안, 그리고 실천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데 있다. 이것은 국민주권주의에 대한 중대한 배반이다. 주권자인 국민은 선거를 통해 정부를 선택한다. 중간매개체로 정당이 기능한다.

열린우리당의 위기는 결국 정당정치의 위기이고, 의회주의의 위기이며, 본질적으로 국민주권주의의 위기이다. 한나 아렌트 식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의견이 정당에서 수렴되지 못한 경험을 한 시민들은 '전체주의'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는 것이다. '박정희 따라하기', '인간의 존엄성이 철저하게 짓밟혔던 개발독재시대에 대한 퇴행적 유혹'이야말로 이런 불길한 흐름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은 없다. 정치인만 존재한다. 정치도 없다. 정치의 사법화만 존재한다. 따라서 정당정치의 회복이야말로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근본적 해법이다.

그런데 강 의장의 '통합신당' 정책은 민주개혁진보세력의 주권을 아예 무시하고 있다. 이들의 생각을 대신할 생각도 없다. 투표를 통해 표현된 주권자들의 의사를 아예 정반대로 해석한다. 이것이야말로 지지자에 대한 배신이요, 주권자에 대한 전면적 모반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강 의장의 주장은 당원으로서 열린우리당의 '신강령'에도 매우 벗어나 있다. 필자는 강 의장의 '정책비전'을 읽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정강을 가진 정당은 이미 존재하는 것 같은데, 왜 똑같은 정당을 또 만들어야 하나'하는 원초적 의심 말이다.

태그:#통합신당, #강봉균, #열린우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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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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