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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강재섭 대표와 김형오 원내대표가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이 개헌 함구령을 내렸다. 소속 의원들에게 개헌 관련 방송토론이나 인터뷰 등에 응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언론과 접촉해야 한다면 사전에 원내대표나 홍보기획본부장과 상의하도록 했다.

대선 판을 흔들기 위해 개헌을 제안했다고 단정하는 한나라당이다. 개헌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 자체가 노무현 대통령이 만든 판을 키워주는 결과를 빚을 것이라는 우려는 이런 단정에 기반하고 있다.

헌법기관을 '나사'로 전락시킨 한나라당

@BRI@이해 할 수 있다. 60~70%의 국민이 임기 내 개헌을 반대하고 있다. 여론이 이렇게 흘러가는 마당에 한나라당의 단정과 우려를 일방적으로 폄훼할 이유는 없다.

여기까지다.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은 여기까지다. 단정과 우려를 넘어 대응 단계로 넘어가면 이해 못할 모습을 연출한다. 소속 의원들에게 침묵의 장벽 뒤에서 부동자세로 서 있으라고 요구하는 처사가 그렇다.

의원 개개인이 하나의 헌법기관 아니냐고 따지지는 않겠다. 걸어 다녀야 할 헌법기관이 조직의 나사로 전락한 사례를 수없이 지켜봤다.

짚을 건 따로 있다. 한나라당 스스로 제기한 문제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일언지하에 내친 이유 가운데 하나로 "국민 여론을 사전에 수렴하지 않은 점"을 들었다.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조선일보> 기자에게 한 말도 있다. "원 포인트 개헌만 하면 매년 고쳐야 하지 않나. 21세기에 맞게 환경문제나 남녀문제, 부부관계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고쳐야 한다"고 했다.

맞다. 개헌 논의를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한다면 손 볼 건 제대로 손 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는 말은 사족이니까 치우자.

그래서 묻는다. 국민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면서 포괄 개헌을 이루려면 언제, 어떻게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건가?

차기정부 어느 시점에 개헌하자는 건가

정치권이나 국민이 제시하는 시점은 너무 막연하다. 그냥 '차기 정부에서'다. 차기 정부의 초기인지, 중기인지, 말기인지가 불분명하다.

악순환의 조짐이 보인다. 5년 전에도 그랬다. 여야 대선 후보 모두 차기 정부에서 개헌을 해야 한다고 했다. 4년 중임제 개헌에 대한 공감대도 암묵적으로 형성됐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차기 정부'가 개헌을 제안하니까 정략을 경계한다. 그래서 다시 차기 정부로 넘기라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면 해법은 하나 밖에 없다. '속전속결'이다. 차기 정부 초기에 해야 한다. 국민 지지도가 높고 여야가 극심하게 대립하지 않는 시점, 그래서 정략이 스며들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은 시점은 그때 밖에 없다. 뒤로 미루면 다시 개헌과 정치가 버무려지면서 정략 논란이 불거진다.

하지만 어렵다. 대통령이 반기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차기 대통령도 그럴 것이다. 제대로 한번 일할 시점에 개헌 논의가 불붙으면 통치기반이 약화된다. 원 포인트 개헌이 아니라 포괄 개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사회는 극심한 이념 분쟁에 휘말리고 이 와중에서 정부 정책은 '새우등'이 된다. 그 누가 대통령이 되든 반길 일이 아니다.

차라리 시동을 지금 거는 게 낫다. 아니 옳다.

올해 대선의 시대정신이 뭐냐는 질문에 똑 부러지는 대답을 내놓는 대선주자는 없다. 그러면서도 올해 대선이 미래 한국의 흥망을 가르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런 현상이 웅변하는 바가 있다. 시대는 미래의 리더십을 요구하는 데 리더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금 개헌시동 거는 게 낫다

▲ 한나라당은 10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노무현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에 대해 논의 중단을 촉구했다. 김형오 원내대표가 "'개헌관련 모든 인터뷰 토론프로 금지령'에 대해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원 손들라"고 하자, 고진화·남경필·원희룡 의원이 손을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포괄개헌을 대선과 맞물려 논의하는 게 오히려 낫다. 매는 한 번에 맞아야 덜 아픈 법이다. 개헌 방향이 포괄개헌이라면, 이 과정에서 극심한 이념대결이 빚어질 것이라면 대선과 맞물리게 하는 게 생산적이다.

어차피 사생결단의 혈투가 벌어질 대선이다. 포괄개헌을 전면에 내걸지 않아도 대선 판에서 안보·경제·사회 사안을 두고 이념대결이 벌어질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럴 바엔 이념 대결을 개헌 논의로 유도함으로써 대선을 가치 있는 사생결단의 장으로 만드는 게 맞다.

그래야 대선주자의 '밑천'과 '본색'을 검증할 수 있고, 개헌에 대한 국민 여론의 실체도 확인할 수 있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얘기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거부하는 야당의 대선 주자들도 대선 판이 열리면 개헌 공약을 내놓겠다고 밝히고 있다. 대선은 어차피 거치게 돼 있다.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라면 여기서 여론을 제대로 수렴해 개헌의 틀을 짜야 한다. 차기 정부의 역할은 대선과정에서 마련한 개헌 틀을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것으로 국한해야 한다.

시점 차가 있고 입장 차가 있다. 대선 본판은 가을에 열리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은 봄 안에 가부를 결정지어야 한다. 임기 내 원 포인트 개헌은 안 되고 차기 정부에서의 포괄개헌은 된다고 한다.

어깃장이 난다. 포괄개헌과 대선을 맞물리자는 제안도 의미를 상실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대선 이전에 경선이 있고, 경선 이전에 홍보전이 있다. 이걸 활용하면 된다.

한나라당의 '함구령'은 곧 국민 권리 침해

물어야 한다. 포괄개헌이 필요하냐고, 필요하다면 언제, 어떤 조항을, 어떻게 손 봐야 하느냐고 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원 포인트 개헌 제안은 자연스레 걸러진다. 포괄개헌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원 포인트 개헌은 흡수, 용해되고, 그 대안은 저절로 마련된다.

물어야 하는데 물을 사람이 없다. 한나라당이 언론 접촉금지를 명했기 때문이다.

곱게 볼 수가 없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략에 대한 대응이라고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국민의 당연한 권리, 묻고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는 권리마저 침해하고 있다.

정치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 제안으로 대선 판을 흔들려고 한다면 한나라당은 개헌 불응으로 대선 판을 좁히려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이 정략적이라면 한나라당의 대응은 정치적이다.

약(略)만 판치고 도(道)가 없다. 정(政)은 있을지언정 정(正)은 없다.

태그:#연임제, #개헌, #함구령, #한나라당, #개헌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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