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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란에 손을 얹고 키이스 엘리슨(오른쪽) 하원의원이 지난 4일 국회의사당에서 부인 킴 여사가 들고 있는 코란에 손을 얹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왼쪽) 앞에서 취임선서 하고있다.
ⓒ AP=연합뉴스

키이스 엘리슨(43)이 지난 4일 드디어 코란에 손을 얻고 미국 연방 하원의원 취임 선서를 했다.

키이스 엘리슨은 지난해 11월 미네소타주에서 미국 역사상 최초의 무슬림 의원으로 당선됐다. 당선 후 줄곧 가톨릭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취임 선서를 성경 대신 코란을 들고 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하는 것이 관례였던 미국에서 무수한 반대를 무릅쓴 시도였다.

@BRI@엘리슨은 비난 여론을 완화시키려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마스 제퍼슨이 가지고 있던 영어판 코란을 사용해 결국 취임 선서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전 미국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는 없었다.

'코란 선서'를 관철시키기 위한 엘리슨의 행보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비방반대 연맹(Anti-defamation League)' 등 강력한 정치력을 갖고 있는 유대인 단체는 물론, 데니스 페이저 같은 저명 언론인, 버질 구드(버지니아주 5선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 같은 정치인 등이 나서 엘리슨의 행동을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와 신앙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며 거칠게 비난했다. 당선 직후 CNN과의 인터뷰에서는 사회자 글렌 백으로부터 "당신이 우리 국가의 적(이슬람)과 함께 행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보라"는 모욕적인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인구의 92%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응답하고 40%는 매주 일요일 예배에 참석하는 나라, 이슬람 국가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 미국에서 무엇이 엘리슨을 이렇게 용감하게 했을까? 그 해답은 미국 내 이슬람의 급격한 성장 속도에서 일부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보다는 엘리슨이 무슬림이기 이전에 흑인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미국 이슬람의 성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흑인 차별과 맞닿아 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미국 내 이슬람
미국 내 무슬림 학력별 현황
최종학력코넬대 조사조그비연구소 조사전체 미국인
석사 이상42.7%32.1%8.6%
학사35.0%30.0%35.1%
전문 학사9.5%19.4%32.3%
고졸10.1%14.1%18.9%
무학위2.4%4.7%4.7%
미국 내 무슬림 나이별 현황
나이코넬대 조사조그비
연구소
미국
전체인구
18-2939.8%26.1%14.1%
30-4949.5%52.4%31.1%
50-646.4%16.7%27.7%
65-1.0%4.8%27.2%
미국 내 무슬림 인종별 분포
인종비율(%)
흑인24
아랍계26
남아시아계26
기타24
ⓒ Muslim America Media

이슬람은 전세계적인 추세와 동조해 미국 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종교 중 하나이다. CIA 팩트북(fact book)에 따르면, 미국 내 무슬림 인구는 전체 인구 중1% 정도를 차지해 유대교와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 증가 속도는 대단하다. 미국 전체 연 인구 증가율이 0.9%에 불과한 데 반해, 무슬림 증가 속도는 6%에 달한다. 미국 전체 성인의 67%가 40대 이상인 반면, 무슬림은67%가 40대 이하의 젊은이들로 차후 성장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들의 학력도 높아 67%가 학사 이상의 학위를 갖고 있다. 미국 전체로는 44%만이 학사 이상의 학위를 갖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인들의 연 평균 소득이 4만2158불인데 반해, 무슬림의 66%는 연 5만불 이상을 벌고 있어 경제력도 무시 못할 수준이다.

이런 증가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80년대 이후 물밀 듯 이어지고 있는 중동권과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이슬람 국가로부터의 이민자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이 자신의 종교를 그대로 들고 와 미국 내에서 포교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 하지만 미국 내 무슬림 증가의 근본적인 이유는 기독교 문화 속에서 태어난 많은 미국인들의 개종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흑인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 무슬림 중 24%가 흑인으로 26% (남아시아계), 26% (아랍계)와 거의 대등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이민자들에 의한 현상 유지에 급급한 미국 내 다른 소수 종교와 차이가 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흑인 민권운동으로서의 이슬람

흑인들에 미치는 이런 이슬람의 호소력은 흑인의 긍지(Black Pride), 흑인의 권력(Black Power), 자기 발전(Self-improvement) 등을 강조하는 미국 이슬람의 독특성에 있다. 미국 내 이슬람은 20여개 종파로 나뉜다. 이 중 아랍계의 정통 이슬람과 달리 흑인들은 말콤 X, 무하마드 알리 등이 참여해 유명해진 흑인 조직 '이슬람 연합(Nation of Islam)' 계열에 대부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종파는 왈라스 파드 무하마드(Wallace Fard Muhammad)에 의해 1930년 미국 디트로이트 인근에서 창시됐다. 이슬람 연합의 교리는 스스로를 열등한 인종으로 생각하던 미국 흑인들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정통 이슬람과 다른, 이들의 가장 독특한 교리는 흑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인종이며 다른 인종은 흑인들로부터 파생했다는 것.

이런 믿음은 왈라스 파드 무하마드가 인간으로 현현한 알라(Allah)이며, 그가 가르친 내용이라는 이유에서 나온다. 그의 뒤를 이은 엘리자 무하마드(Elijah Muhammad)의 제자 루이스 파라칸(Louis Farrakhan)은 TV에 출연해 "백인들로부터는 황인종, 흑인종 등이 나오지 못한다는 것은 유전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며 "전세계의 모든 과학자들은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흑인들의 긍지를 찾게 하는 데 충분했다.

"백인 악마"

이슬람 연합의 노예해방에 대한 교리는 '흑인의 권력(Black Pride)'을 동경하도록 했다. 이들은 고대에 야쿱(Yakub)이라는 사악한 과학자가 흑인들의 출산을 조절(birth control)해 백인들이 태어나도록 했다고 믿는다. 야쿱은 백인들에게 거짓과 계략을 가르쳐 인간들 사이를 이간질하도록 만들었고, 결국 백인들은 흑인을 노예로 삼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백인 악마 (white devils)"라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진다.

이들은 창세기(이슬람은 기독교의 신∙구약 성경을 모두 예언으로 믿는다)의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15:13-14)"는 예언을 신봉한다.

유대인들의 '메시야(Messiah)'요, 정통 무슬림들의 '마흐디(Mahdi)'인 왈라스 파드 무하마드가 와서 1930년대 당시까지도 남아 있던 흑인에 대한 차별을 완전히 철폐시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는 흑인들의 폭력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콤 X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말콤 X는 암살당하기 1년 전인 1964년 한 연설에서 그의 생각을 요약해 보여 주었다.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저와 여러분을 분노하게만 하던 시간은 지났습니다. 여러분에게 비폭력적인 자들에게만 비폭력적으로 대하십시오. 여러분이 저에게 비폭력적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을 보여줄 수 있을 때만 저는 비폭력적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들 인종차별주의 백인(crackers)들을 비폭력적으로 가르치기 전에는 저를 비폭력적이 되라고 가르치지 마십시오."


기독교가 실패한 흑인복지 향상에 성공

▲ 1964년 3월 20일자 <라이프>지에 실린 말콤X의 사진.
이슬람 연합의 자기발전(Self-improvement)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들은 말콤 X보다 온건한 흑인들을 끌어들이는 데 기여했다. 이 종파는 식품, 제빵, 식당 사업 등을 벌여 미 전역 수 천 명의 흑인들에게 직업을 주었다. 조지아주에서는 농토를 사들였고 흑인들의 관심이 큰 모발 관리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마약 거래 금지, 매춘부 계도, 흑인 청소년들의 갱단 유입 차단 등의 활동을 벌였다. 이것은 흑인 범죄자들의 재범을 막는 데 효과적이기도 했다.

미국 정부의 인정을 받아 80년대 미국 주택도시개발부는 이슬람 연합이 운영하는 회사와 계약을 맺고 도시 흑인 거주지의 환경 향상을 위한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슬람 연합의 이런 활동들에 대해 저명한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제임스 발드윈은 "이슬람 연합은 알코올 중독자, 수형자 등에게 실패를 극복하는 빛을 주었다"며 "그는 우리 기독교가 철저하게 실패한 이런 모든 활동들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노예의 종교 vs. 은혜의 종교

키이스 엘리슨의 '코란 선서'와 미국 내 이슬람의 성장을 보는 기독교계는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특히 흑인 신도가 많은 침례교, 감리교 등의 종파는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들은 '이슬람 바로 알기'와 같은 세미나를 열어 기독교인의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막아보려 한다.

이들은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흑인 전도사를 활용해 흑인 무슬림들의 마음을 다시 돌리려고 하기도 한다. 이들 전도사는 "이슬람은 개인의 선행을 강조하는 종교이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혜로 충분한 종교"라며 기독교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보는 흑인 무슬림들의 평가는 냉혹하다. "기독교는 노예의 종교일 뿐이다."

미국의 이슬람은 아랍 세계와 달리 기독교 문화권에서 스스로 발생했다. 매년 6%가 넘는 성장과 흑인들의 관심은 미국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인종 차별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흑인 민권운동적 특성이 없었다면 이런 성장은 있을 수 없었음에 분명하다. 1863년 링컨의 노예제 폐지 선언 이후 100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흑인들은 여전히 차별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9.11 이후에는 흑인 뿐 아니라 다른 소수 민족들이 체감하는 차별의 수위가 한층 높아졌다. 풍자 영화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에는 "미국은 소수계(minority)를 위한 나라"라는 한 백인 대학생의 대사가 나온다. 백인들의 이런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미국의 이슬람 성장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태그:#코란, #무슬림, #이슬람, #흑인의 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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