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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이주노동자쉼터 개소 2주년 행사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
ⓒ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저는 경기도 용인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교육 등을 하는 '용인이주노동자쉼터'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겨울방학이 되면 "봉사활동하고 싶은데요"라고 말을 시작하는 전화가 사무실로 종종 걸려옵니다.

물론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전화는 방학 기간이 아니어도 오긴 하지만, 방학이 되면 그런 전화들이 좀 더 늘고 질문 내용도 구체적입니다. 그런데 그런 전화의 공통점은 전화를 한 사람이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학생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라는 점입니다.

물론 학업에 바쁜 자녀를 위해 봉사활동을 할 기관을 찾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몇 차례의 호된 시행착오를 겪었던 터라, 그렇게 문의하는 부모에게는 "마땅히 할 일이 없는데요"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대부분 부모님들은 자녀가 평소부터 사회적 소수자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진작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이주노동자쉼터를 알게 되서 봉사활동을 하도록 권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학생들도 무엇이든지 한 번 해보겠다며 의지를 밝히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이를 '호된 시행착오'라고 함은 그 활동이 단 한번으로 그친다는 겁니다.

학생 대신 부모가 봉사활동 문의?

@BRI@지금까지 우리 쉼터에 자기가 직접 작성한 봉사활동 확인서를 들고 와서 '도장만' 찍어 달라고 했던 학생들 대부분은 인근 신흔 명문고로 알려진 외국어고등학교 학생들이 가장 많았습니다(영어를 잘해서인지 아예 영문 편지를 써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대학생들도 있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찾아간 적은 있지만, 그냥 구경만 하다 왔으니 인턴 확인증이라도 끊어주면 안 될까요?"라며 사무국장에게 문의한 학생은 애교로 봐줄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찾아왔던 학생들은 대부분 영어에 능통했습니다. 또 부모님들은 모 통신사 임원, 변호사 등 중산층 이상 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마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곳이니 최소한 영어 정도는 해야 할 거라는 생각을 했거나 외국 대학에 진학할 때 소수자단체에서 봉사 활동을 했던 경력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6일)은 남편이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고, 고3 자녀를 데리고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 한다며, 구체적으로는 노동 상담을 하고 싶다는 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 분은 작년에도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전화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약속한 일요일에 쉼터에 오지 않았습니다.

이 분은 서울에 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가까운 곳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시라고 권했는데 굳이 우리 쉼터로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셔도 특별히 할 일이 없을 텐데, 정말 봉사활동할 의향이 있으시면 쉼터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지켜보시고, 할 수 있는 부분을 말씀하시면 일정 교육을 거친 후 자원 활동을 할 수 있게 권하겠다"며 다소 깐깐하게 안내를 했습니다.

일 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비슷한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도장만 찍는 봉사활동, 사양합니다!

▲ 용인이주노동자쉼터 모임 장면
ⓒ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일반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겠다며 문의하는 분들은 해당 단체에서 당연히 쌍수 들고 환영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적은 수의 상근 활동가들이 밤늦게까지 바득바득 일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일손을 덜어 줄 봉사자들을 박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업어줘도 모자랄 판이지요.

우리 쉼터도 상근자가 4명뿐이고 올 1월부터 시작하는 영상사진교실이나 한글, 컴퓨터 교실, 국제연대를 위한 영문 번역, 소식지 발간을 위해서는 자원 활동가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이해 없이 일회성으로 방문하는 사람들 때문에 교육 현장이 어수선해지고 담당 교사들의 책임 의식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단체로서는 형식적인 봉사활동 참여자들을 사전에 거를 수밖에 없습니다.

초ㆍ중학생들은 방학 숙제 때문에, 고등학생들의 경우 대학 진학을 위해 일정 봉사활동 시간을 채워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고등학교의 경우 보통 1년에 20시간 정도를 권장하고 있음). 일부 대학의 경우 봉사활동 특별전형도 있고, 학점이나 졸업을 위해서는 싫든 좋은 정해진 시간만큼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 대학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점을 위해 혹은 진학을 위해 얼굴 비추기를 하고 확인서를 발급 받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요? 학생들의 양심과 자존감을 위해서나 일하는 사람들의 행정력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처음부터 유명무실한 봉사활동은 권하지도, 용납하지도 않는 게 옳다고 봅니다.

부모의 손을 빌려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려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행동에 동참할 아량이 없는 저로서는 차라리 "봉사활동 안 오면 안 되겠니"라고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교육 현장 일선에 계신 분들도 이런 현실을 이해하고, 학생들에게 좀 더 현실성 있는 봉사활동을 권하고 관리해 나갔으면 하는 기대를 해 봅니다.


#이주노동자#봉사활동#이주노동자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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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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