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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전환'의 홈페이지

지난 2일 나는 다니던 직장에서 권고사직됐다. 다른 직장에 스카웃되거나 스스로 직장을 옮겨본 적은 있지만, 잘려본 것은 처음이다. 내가 잘린 이유는 '노조 결성 추진'. 내가 다니는 시민단체인 '에너지전환(대표 이필렬)'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2월 27일. 나는 '활동가의 정체성'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기 위해 대표·간사·이사들이 보는 내부 메일링리스트를 통하여 '민주노동당 상근자 노조 결성에 대한 10문10답'이라는 문건을 돌렸다.

그러자 이필렬 대표는 2007년 1월 2일 전격적으로 이사회를 소집하고 '시민사회단체 내 노조결성 추진' 등의 이유를 들어 나를 권고사직시켰다. 그러나 나는 이에 불복하고 계속 출근하고 있다.

활동가는 노동자가 아니다? 왜?

@BRI@내가 '에너지전환'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2월. 10년 가까이 일반 회사에서 일하다가 2년 전에 그만 두었고, 환경운동 중에서도 에너지 전환이 생태 문제의 핵심이라는 생각으로 이 단체를 찾았다.

그리고 활동가로 생활한지 3달이 채 되지 않았던 지난 4월, 나는 생각하지 못했던 경험을 했다. 간사들이 노동절 참가를 위해 이필렬 대표에게 휴가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한 것. "활동가는 노동자가 아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간사들이 계속 휴가를 요청하자 결국 이 대표는 노동절 하루 전인 4월 30일 '과도한 업무'를 이유로 5월 1일 특별휴가를 허락했지만, 고민은 계속됐다. '참 이상하다. 시민단체면 노동운동과 노동절에 대해서 동의하는 것 아니었나? 왜 이렇게 반응할까?'

단체의 조직운영을 접하면서 고민은 깊어졌다. 이필렬 대표는 "단체는 회원조직이고, 회원들로부터 위임받은 이사회가 간사들을 고용했으니 이사회 결정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환경운동연합과 같은 상근자 주도방식의 시민단체 조직을 반대했다.

나도 회사에서 일하기 전에 단체활동을 한 적이 있다. 위장취업을 해서 노동을 하거나 노동단체를 만든 적도 있고 빈민단체 활동도 했다. 급여는 당연히 없었지만 자발적이었고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할 수 있었다.

물론, 회원과의 의사소통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 대표의 주장에 긍정적인 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활동가 역시 회원이고, 가장 근접거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아닌가. 활동가들의 의견이 단체에 제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게다가 과거와 달리 활동가들이 적은 액수지만 급여를 받는다는 점에서 '급여로 생존하는 노동자'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민 나누고 싶었지만, 이사회는 나를 잘랐다

나는 이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싶었고, 마침 '민주노총 상근자 노조 설립에 관한 10문10답' 문건을 보게 됐는데 특수한 위치의 노동자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어서, 이를 메일로 회람했다. 그리고 며칠 뒤 '노조 추진'이라는 이유로 권고사직돘다.

이사회에서도 나는 "이 작은 단체에 노조가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치 않는다"며 "유럽의 사례를 보더라도 시민사회단체활동가들은 단체별 단위노조가 아닌 부문 또는 산별의 성격을 갖는 공공부문노조 또는 시민사회단체활동가 노조에 가입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또한 "활동가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보자는 게 문제인가, 활동가는 회원이자 급여로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이고 자발적 운동가라는 복합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사진은 "헌신이 중요한 활동가고 (이사진과는) 동지적 관계인데 어떻게 노조를 만들 수 있냐"며 "당신 말대로 노동자라면, 당신을 고용한 이사진 의견을 따르라"고 말했다. "활동가가 회원이자 노동자인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했지만 이에는 답하지 않았다.

내가 시민단체에서 '출근투쟁'을 하는 이유

권고사직을 당한 뒤, 나는 출근을 계속하고 있다. 이대로 잘리는 것은 나에게 씻을 수 없는 불명예일 뿐더러 내 꿈인 귀농 및 농촌 에너지전환운동에도 나쁜 경력으로 남는다.

게다가, 이번 일은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다수의 시민단체가 존재한다. 시민단체연석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단체만 500여 단체를 넘는다. 연석회의에 등록되지 않은 전국의 좌우·중소 시민단체와 관변단체는 수천을 넘을 것이다. 단체 활동가도 수만명을 넘을 것이다.

이제, 당연히 민주적 지향을 갖고 있다고 여겨졌던 시민단체이 내부적으로도 민주적인지, '활동가'들의 권리 및 처우, 정체성은 어떤 것인지, 공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할 때가 왔다.

이번 일을 계기로 시민단체 민주적 운영에 대해 논의를 끌어내고, 가능하다면 산별 노조에 참여해서 내용적으로 민주적인 단체들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레디앙>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노조, #에너지전환, #시민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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