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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자전거로 서울을 떠나는 이영학 씨.
ⓒ 오마이뉴스 김대홍
[D-2] 이영학 씨, 6일만에 강릉 도착하다

"저 지금 강릉 도착했어요. 오늘까지 꼭 220km를 탔네요."

@BRI@'유전성 거대 백악종(치아와 뼈를 연결하는 백악질이 거대하게 자라는 종양)' 환자인 이영학(25)씨의 전화였다. 자신과 똑같은 병을 앓는 딸 아연이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성탄절인 25일 아침 자전거 일주를 시작한 그는 6일만에(30일) 강릉에 도착했다. 하루 평균 37km씩 달린 셈이다.

"저 모레 정동진에서 전단지 돌릴 거예요. 그날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하더라구요."

영학씨가 전화를 걸었을 때 난 낮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의 일이 먼 나라 얘기처럼 들렸다.

[D-1] 정동진행 열차를 타다

31일, 청량리역은 북적였다. 20대로 보이는 청춘들이 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들뜬 기운이 실내를 메우고 있었다. 기차를 타자 그 기분은 더욱 분명해졌다. 40-50대로 보이는 어른 다섯이 이미 술에 취해 한껏 목소리를 높였고, 갖가지 색깔의 방한용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복도를 왔다 갔다 했다.

다섯 시간 동안 거친 숨을 토해낸 기차가 종착지에 이르기 몇 십 분 전, 환한 불빛들이 창밖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동해바다. 그때서야 설렘과 기대감이 가득한 사람들 속에 내가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일출과 희귀질환... 정동진과 유전성 거대 백악종'이 참 어울리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D-0] 1만장 전단지 그대로... 그래도 또 달린다

▲ 1월 1일 정동진에서 해를 기다리는 사람들.
ⓒ 오마이뉴스 김대홍
1월 1일 새벽 5시 20분. 정동진 해변가는 이미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라면 먹는 사람들, 폭죽 터트리는 사람들, 촛불을 켜놓고 어둠을 밝히는 사람들, 이불을 덮어쓰고 추위를 이기는 사람들로 해변가는 소란스러웠다.

6시 경엔 남자 화장실에서조차 이미 길게 줄이 늘어지기 시작했고, 오가는 사람들로 해변가 입구는 심한 정체 현상에 놓였다. "(해변가에 내려간 사람들) 올라오지 마세요"라는 경찰들의 신경질적인 외침이 들렸다.

이영학씨가 해변가에 나타나기로 한 시각은 오전 6시 30분. 하지만 그 엄청난 인파들 속에서 영학씨를 만난 것은 결국 3시간 뒤였다. 소음 때문에 통화가 힘든 탓도 있었지만, 그가 있는 곳의 단서를 찾기가 힘들었다. 해변가 끝에서 끝까지 걷는 동안 '아연이를 도와달라'는 전단지를 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9시 30분 경 해변가 끝에서 만났을 때 그는 축 처진 상태로 앉아 있었다.

"안받아요. 기분 무척 다운됐어요."

모래밭엔 자전거가 누워 있고, 짐수레 안엔 전단지가 가득 차 있었다. 1만장 가까운 전단지는 그대로였다. "돌리다가 포기했어요. 다 외면하더라구요." 영학씨는 잔뜩 실망한 상태였다. 자전거 초보인 그는 전단지를 가득 실은 자전거를 타고 대관령을 넘었다. 인대가 늘어나는 상태에서도 고개를 넘을 수 있었던 것은 정동진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날 정동진 방문객이 20만 명이 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상태였다.

▲ 이날 거의 전단지를 돌리지 못한 이영학씨. 그는 실망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사실, 예상했었다. 아침부터 사람들은 모두 바다만 보고 있었다. 일출 시간인 7시 38분을 넘어 마침내 해보기를 포기한 9시까지. 바닷가 근처에서 타악 공연이 펼쳐지고, 강릉시장, 강릉시의원 등이 나와 인사를 했지만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섭섭함을 토로했지만 맞장구를 쳐주진 않았다. 희귀질환에다 경제적 어려움이 있지만, 아연이만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한 번도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한 희귀질환자들이 훨씬 많지 않겠는가.

"아연이는 누구보다 언론에 많이 소개됐어요. 재단을 통해서 무료 수술까지 받았고, 후원금도 몇 차례 받았잖아요. 아직 재발됐다는 소식도 없고." 영학씨는 "그래도..."라면서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그는 불안해 하고 있었다. 자신과 아연이의 병이 언제 재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국내 환자가 두 사람(이영학 씨와 딸 아연이)밖에 없다는 소외감, 언론의 관심이 영원하진 않을 것이라는 예감, 자전거 일주와 같은 이벤트가 언제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 무엇보다 딸 아연이가 점점 나이를 먹고 있다는 점이 아빠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었다.

▲ 이영학씨는 계속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알아요. 관심 많이 받고 있는 것. 하지만 이제 아연이는 학교도 가고 사회생활도 해야 해요. 무너진 턱에 뼈를 이식해야 하죠. 잇몸도 없고 이빨도 없어요. 아연이가 어금니로 '새우깡'이라도 먹게 해주겠다는 게 지나친 욕심인가요."

그는 자신이 '떼'를 쓴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한편으론 "자식이 아픈데 술만 마시는 부모는 아무도 도와주면 안 돼"라면서 그게 부모의 의무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1만 장이 넘는 전단지는 고스란히 남았다. 그리고 함께 하기로 한 자전거 동호회도 일정이 하루 늦춰지면서 함께 하지 못했다. 대관령을 힘겹게 넘은 만큼 실망감도 컸을 터다. 영학씨는 며칠 휴식을 취한 뒤, 울산에서부터 다시 자전거 일주를 시작한다. 7-8일경 부산에 도착할 예정이란다.

"촛불시위 있잖아요? 그런 형태로 희귀질환자들의 실태를 한 번 알려보려구요. 지금까진 너무 소극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는 실망에서 헤어나 벌써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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