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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새해가 밝았다. 600년 만에 돌아온 황금돼지해니 뭐니 난리도 아니다. 띠가 바뀌는 입춘에 맞춰 출산을 늦추기 위해 일부 산모들은 고심이다. 정통 역학과 관계없이 황금돼지해가 세속에서 만들어진 상술이든 사기(?)든, 사람들 모두 새해 계획이 새롭다. 금년만큼은 작심삼일로 끝내지 않기 위해(황금돼지해라는데) 각오가 남다르다. 황금돼지와 상관없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는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다.

30년 동안 나를 괴롭힌 쇼펜하우어

▲ 책 표지.
ⓒ <모아북스>
1977년 여름방학. 고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독서계획을 세웠다. 30일 동안, 당시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개방서점이었던 서울 종로2가 '종로서적'에 출근(?)해 공짜로 책을 먹어치우자는 것이었다. 도시락 두 개를 싸서 버스로, 오전 10시 문 여는 시각에 맞춰 도착해 밤 10시 문 닫는 시각까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아버지 덕에 책 살 돈 걱정 없이 살았지만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았다.

내 인생 가장 잘 한 일 가운데 하나였다. 대엿새 지나자 직원들이 나를 알아보고 사무실에 들어와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책도 서가 앞에 서서 읽는 게 아니라 사무실에 들어가 좋은 자리 차지하고 앉아 엉덩이가 무르도록 읽었다. 그렇게 행복한 방학이 끝나갈 무렵 나는 쇼펜하우어가 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만났다.

내 생전 처음, 책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물론 번역부터가 문제였다. 온갖 어려운 한자어와 외국어를 사용, 간신히 서술어만 우리말 흉내를 낸 쪽을 넘길 때마다 나는 넌더리가 났다. 성인이 되어서야 어찌어찌 그 책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해했다는 것은 수긍하고 감동 받아 내 지식으로 삼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지금도 나는 쇼펜하우어에 절대 동조하지 않는다.

쉬운 접근서 <쇼펜하우어 진실>

@BRI@지은이 최성배씨가 일반 기업에 근무하면서 끊임없는 사색과 독서로 쇼펜하우어를 파헤치고자 노력한 책 <쇼펜하우어 진실>은 참 쉽다. 쇼펜하우어가 왜 여성을 혐오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가 왜 정신병적인 다중성격을 보이며 헤겔과 당대 철학자들을 포함한 지식인들을 무모할 정도로 공격하고 삶을 허비했는지, 허무주의와 염세주의로 자신의 사상을 포장했으면서도 72세까지 얼마나 세속적인 삶과 명예욕을 추구했는지, 따뜻하게 바라본다.

왜 우리가 21세기에 쇼펜하우어를 주목해야 하는지, 2세기 전 철학자의 잠언이 어떻게 우리에게 유용한지 아주 쉬운 어법을 사용해 조목조목 잘 설명하고 있다. 가볍고 손에 들기 딱 좋은 양장까지, 이 책은 철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특히 쇼펜하우어를 난제로 여기는 사람에게 산책로를 제공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참 쉽게도 책을 썼구나, 일부 학자들보다 백 번 낫다, 쇼펜하우어를 이렇듯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쓰다니…'하며 감탄했다.

서문을 읽어보면 지은이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가 알 수 있다. 그런 면만 보고도, 쇼펜하우어에게 쉬운 접근을 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은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 담긴 쇼펜하우어의 열정적인 삶부터 그의 철학이 싹트게 된 계기들, 그리고 주옥같은 잠언들은, 실의에 빠진 누군가, 삶을 더 사랑하고자 하는 우리 이웃들, 아니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첫걸음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은이의 인간적 풍모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손에서 놓은 뒤에도 쇼펜하우어에 대해 눈곱만치도 애정(?)이 일지 않는다. 오히려 지은이의 따스한 감성에만 박수를 칠뿐이다. 물론 내 일천한 지식 따위를 무기로 감히 쇼펜하우어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내게 그런 자격은 없다. 다만, 이 시대에 과연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구원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짚어볼 뿐이다.

새해에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계획 몇 가지를 다시 세웠다. 그러나 지난 연말에 틈틈이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새해 계획을 완전히 수정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책 때문이 아니라 다시 되새기게 된 쇼펜하우어 때문이다.

세상에 행복보다 고통이 더 많다는 사실은 굳이 쇼펜하우어가 아니라도 다 안다. 삶 자체가 고난이요, 행복은 추상적 관념일 뿐, 사는 게 '견디는 일'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쇼펜하우어를 포함해 수천 년 동안 헤아리기 힘든 철학자들이 삶의 의미에 대해 고뇌했지만 과연 해결책을 내놓았나?

나는 철학자들을 떠올릴 때마다 언행불일치를 업으로 삼는 정치꾼들이 겹쳐진다. 판박이처럼 자기들 철학만이, 정치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소리친다. 쇼펜하우어는 한 술 더 떠, 다른 철학자(특히 헤겔)는 다 가짜요, 자신의 사상만이 구원책이라고 평생 떠들어댔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함께 근무하는 철학전공 강사들은 나를 비틀어졌다고 비난한다. 그런데 그 친구들, 힘들거나 하면 꼭 나를 찾아온다. 왜일까?

'연습해서 웃고 살기'가 내 새해 목표인 이유

2006년에 나는 많은 실패를 했다. 물론, 본업인 가르치는 일에서는 젊은 강사들이 기함할 만큼 성과를 냈다. 그러나 계획했던 살 빼는 일과 금연에 실패했고, 술 줄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상처주지 않겠다는 맹세를 뒤엎고 말았다. 알량하며 눈곱만한 지식이 있으면 뭐하고, 점잖은 척 온갖 위선 다 떨면 뭐하냐 말이다.

내 제자들, 특히 내 아들 잉걸이는 내가 너무 웃지 않는다고 타박한다. 표정이 항상 심각하단다. 술 한 잔 들어갔을 때나 개개풀어져 좀 웃을 뿐, 처음 본 사람은 경악할 정도로 표정이 굳어 있다는 것이다. 굳이 변명하자면, 이게 다 철학이니 사상이니 하는 책들을 반거들충이처럼 무턱대고 읽어냈기 때문이다. 인간이 덜 익었다는 말이지.

그래서 새해에는 무조건 웃기로 계획을 세웠다. 아직 어린 아들과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안 되면 연습하기로 했다. 철학이니 관념이니 하는 것보다 '웃음치료사'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인생에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결국 아내 앞에서 토로했다.

틈나면 손바닥을 비벼 볼에 대고, 검지로 입술 양쪽 끝을 밀어 올려 억지로라도 웃고…. 그렇게 2007년을 살기로 다짐했다.

지난 한 해 나는 제자들에게 '긍정적 마인드'를 가르쳤다.

"스스로 안 된다고 생각하면 될 일도 안 된다. 무조건 된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세뇌시켜라. 그리고 항상 웃어라. 안 될 일도 된다. 반드시 긍정의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무슨 사이비 종교 교주처럼 떠들어 댔다. 물론 하나도 틀린 말 아니다. 아이들은 내가 교실을 온통 휘젓고 침까지 튀겨가며 갖은 탈바가지 표정 다 지은 채 열강을 할 때마다 빨려들어 왔고 실제, 대학에 합격한 뒤 내 열강 덕분이었다고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수업시간만 그랬을 뿐, 내 얼굴은 언제나 굳어있었다.

교실을 벗어나면 학원업무 전반을 살펴야 하고, 속 썩이는 젊은 강사들 챙겨야 하고, 다른 학원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묘책 내느라 밤새야 하고…. 사실 웃을 일이 많지는 않았다. 돈을 떠나서, 이렇게 살다가는 그예 쓰러지고 말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다시 꺼내 읽고 있던 철학이니 관념이니 사상이니 하는 책들을 다 접어버렸다. 그리고 아들 앞에서 반복해 외쳤다.

"웃자! 웃자! 웃자! 새해에는 무조건 웃자! 연습해서라도 겉과 속이 다 젖을 때까지 웃자!"

쇼펜하우어 진실 - 세상을 행복하게 바라보는 가치

최성배 지음, 모아북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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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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