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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를 허락해 준 축산 농민 윤종옥씨 부부(사진 촬영 소품으로 나비 넥타이와 머리에 묶는 리본을 준비하려 했으나 끝내 못구해 2000원짜리 목도리로 대체했다).
ⓒ 이화영
@BRI@신문사에 근무하는 사진기자들은 연말과 연초가 되면 지면 1면을 장식할 사진에 대한 고민으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사진 한 장을 위해 12월 모두를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일몰과 일출 사진을 단골로 등장시키고 비행기·기차·배·자동차 등의 궤적을 담아내는 경우도 있다. 또 그해의 동물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흔한 방법이다.

예전에 어떤 사진기자는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3년 닭띠해를 맞아 김 전 대통령이 야당 시절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과 흡사하게 새벽달을 배경으로 장닭이 '꼬끼오'하는 멋진 장면을 촬영해 신문에 실었다.

하지만 이 사진은 지탄의 대상이 됐다. 사진기자가 촬영을 위해 근사한 장닭을 골라 박제를 했고 역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선풍기까지 동원해 사진 촬영을 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사진기자의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진기자들의 고민이 그대로 녹아있는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장소 섭외] 돼지축사는 '외부인 절대 출입금지'

▲ 어미 돼지의 젖을 빨고 있는 귀엽고 사랑스런 새끼 돼지들.
ⓒ 이화영
새해를 맞아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해봤다. 무엇을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촬영할 것인가에 대해….

처음에는 일출을 생각했는데 흔하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버리고 올해의 동물인 '돼지'를 생각했다. 다산과 부, 복을 상징하는 동물인 돼지를 표현하는 것은 새해의 이미지와도 맞아 떨어졌다. 돼지로 가닥이 잡히자 시골이발소에 걸려 있는 그림이 떠올랐다. 어미 돼지가 흐뭇한 표정으로 여러 마리의 새끼 돼지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이보다는 깊고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자는 생각에 2007년을 맞아 2007마리의 아기 돼지를 촬영해 보여주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장소 섭외부터 난항을 겪었다.

읍사무소에서 농업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친구에게 장소 섭외를 부탁하자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한다. 질병 때문에 '외부인 절대 출입금지'라는 방침을 세웠던 것이다.

평소 안면이 있던 지인에게 부탁했지만, 같은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사진 촬영의 취지와 목적을 설명하고 간곡히 부탁하자, 제한된 공간에서 작업할 것과 방역에 유의할 것을 전제로 사진 촬영을 허락받았다.

[첫 촬영] 돼지와 친해지게 되게 힘드네

간단한 점심을 챙겨 집에서 21㎞ 떨어진 농가에 도착해 준비해 간 방역복으로 갈아 입었다. 축사를 안내한 농장 관계자는 "냄새가 심하다"며 "옷뿐만이 아니라 살속까지 냄새가 밸 것"이라고 귀띔했다.

축사에 들어서자 분뇨 냄새와 돼지들이 발산하는 열기가 끈적였다. 똑딱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낯선 사람임을 눈치챘는지 어미 돼지들은 꽥꽥 소리는 지르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고 새끼 돼지들도 덩달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 돼지 축사에서 셀카 한 컷.
ⓒ 이화영
비지땀을 흘리며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보지만 약삭 빠른 새끼 돼지의 발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카메라를 내려놓고 새끼 돼지들과 눈도 맞추고 말을 걸어 봤다.

"넌 이름이 뭐니? 돼순이라고? 너무 촌스럽다. 아저씨가 이름 지어줄게. 음, '야지'. 어때 성은 '도'씨?"

오전 시간을 그럭저럭 보내고 몸에 대한 의무감으로 김밥을 집어들었지만 먹기가 싫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축사로 옮겨야 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축사 안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머리까지 아파오기 시작했다. 잠시 쉬는 동안 담배를 빼물었는데 '왜 이런 짓을 하나'는 생각이 스친다. '이 계획은 너밖에 몰라, 그래 한 장으로 승부하는 거야'라는 유혹이 머릿속을 지배해 간다.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촬영 마무리] 얘들아, 눈썰매장 못 가서 미안해

▲ 새끼 돼지들의 이빨과 발톱에 긁혀 어미 돼지 젖가슴이 상처가 심하다. 하지만 어미는 새끼에게 또 다시 젖을 물린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 이화영
촬영을 시작한 첫날인 12월 16일 300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런 작업 속도라면 12월 31일까지 마무리짓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근무 시간이 아닌 휴일을 이용해 사진을 촬영해야 했고 작업 시간도 축사 관리 시간을 피해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한정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두운 실내를 극복하기엔 역부족인 똑딱이 카메라가 전부였고 원활한 사진 편집을 위해 세로로만 사진작업을 해야 했다.

첫날 촬영한 사진은 쓸 만한 게 없어 몇 장을 제외하곤 휴지통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둘째날 17일은 첫날보다 작업 속도가 빨랐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러던 중 뛰어난 성능을 가진 장비를 이용할 기회가 생겼다. 친한 선배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결혼한다며 결혼식 사진을 부탁한 거다.

결혼하는 선배와 친분도 있고 고성능 카메라 장비를 가진 후배에게 얘기를 전하자 "그 날 서울에 급한 볼일이 있는데 형이 찍어줘요, 카메라는 빌려 줄게"하는 거다. "나이 40 넘어서 결혼하는 선배 네가 찍어주면 안 되겠냐"라고 말은 했지만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22일 오후 7시쯤 카메라를 받아들고 고민에 빠졌다. 사진 편집 일정을 감안해 연휴인 23~25일까지 3일 동안 사진 작업을 마무리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결혼하는 선배에게 양해를 구하고 지역의 사진 동아리 회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선배에게 결혼 사진을 부탁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하지만 또 다른 복병이 나를 압박했다. 그것은 가족이었다. 아내는 침묵을 지켰지만 "아빠, 눈썰매장 가요, 우리는 만날 집에만 있어요"라는 아이들의 저항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들으려하지 않았다.

[편집] 2007장 중에 두번 출연한 돼지는 누굴까요?

마지막으로 3일 동안 촬영한 2500여 장의 사진과 이전에 촬영했던 사진을 더한 3000여 장 중 2007장의 사진을 골라내는 작업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12월 근무 외 시간을 사진 작업에 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 편집 전문가인 후배 유승유씨의 도움으로 3일에 걸쳐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문구를 넣어 편집을 마쳤다. 기쁨에 앞서 한 달 동안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졌다.

기사를 편집하는 과정에 '2007마리 돼지'는 '2007가지 표정'으로 선회했다. 비슷한 새끼 돼지들의 구분도 어려웠고, 보다 건강한 표정만을 보여주자는 의도에서 바뀌게 됐다. 이 때문에 표정은 다르지만 한 마리 돼지가 중복돼 사용되기도 했다.

[그 뒤] 무슨 냄새? 슬금슬금 나를 피하는 사람들

▲ "저의 해맑은 미소 보시면서 2007년 즐겁고 행복한 출발 하세요. 미국산 소고기 드시지 마시고 국내산 축산물 많이 사랑해 주세요. 꼭이요."
ⓒ 이화영
지난 15일 동안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이 날 멀리했다. 사람을 끄는 매력은 없지만 그렇다고 기피 대상으로 여겨질 정도로 인간성이 더럽지는 않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다 보니 은근히 소외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카메라를 빌려줬던 후배는 "형! 결혼식을 동물 축사에서 했어요?"라며 "카메라와 가방에서 심하게 냄새 나네요"라고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편집을 위해 후배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함께 근무하던 또다른 후배는 "선배님! 분뇨 처리하는 일로 전직하셨어요? 냄새가 장난이 아니네요"라며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집에 들어가 몸을 두르고 있던 모든 섬유류를 벗어 베란다에 내놓고 곧바로 욕실로 들어가 정성을 다해 씻었다. 6살배기 막내 병준이에게 "아빠에게서 좋은 냄새 나지?"라고 하자 "아빠, 똥냄새가 좋은 냄새예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세 아이는 입에 뽀뽀는 물론 볼에 뽀뽀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향기가 어느 정도 가신 지금은 관계가 많이 호전된 상태다.

사진 촬영을 위해 돼지 축사를 5번 방문했다. 일하는 환경은 열악하지만 국민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 제공을 위해 겨울에도 구슬땀을 흘리며 정성을 다하는 축산 농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축산 농민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이화영 기자는 공무원 노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새해, #돼지, #사진, #2007,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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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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