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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텍시티 전경. 싱가포르의 '도시 속의 도시'이다.
썬텍시티 전경. 싱가포르의 '도시 속의 도시'이다. ⓒ 노시경
썬텍시티는 1990년대에 홍콩 투자가들의 자본을 유치하여 짓게 되었는데, 45층의 대형 오피스 빌딩 4개동과 국제회의장이 있는 지상 건물이 지하보도로 길고 길게 연결되어 있다. 쇼핑이 주종목인 오차드 로드와 달리 이 곳은 다양한 여행 아이템이 구비된 하나의 도시로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곳이다. 썬텍시티에는 외국 여행자를 위한 다양한 휴식시설과 오락 기능이 갖춰져 있다.

나는 썬텍시티의 끝에서부터 이동을 시작하여 지하보도인 시티링크를 거쳐 시티홀 방면으로 가기로 했다. 그래서 발걸음을 시작한 곳이 '썬텍시티 타워 4'이다. 일요일 점심 무렵, 썬텍시티라는 작은 도시의 입구에 들어서자 수많은 인파가 붐비고 있었다.

이 곳에 자리한 프랑스의 초대형 창고형 할인매장 까르푸는 절약여행을 하는 한국의 여행자들이 저렴한 생필품과 음식, 과일을 사 두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사람들이 줄기 시작하는 저녁 시간에는 이 곳에서 파는 망고 등 열대과일이 떨이로 팔려나간다.

썬텍시티의 할인매장. 일요일 오후에는 사람이 많다.
썬텍시티의 할인매장. 일요일 오후에는 사람이 많다. ⓒ 노시경
'썬텍시티 타워 4'의 1층 대형 로비 매장에서는 어린이들의 완구와 옷을 잔뜩 쌓아 두고 세일 행사 중이다. 나는 일요일 오후가 시작되는 시간에 싱가포르 최대의 쇼핑몰인 이 썬텍시티에서 가장 많은 싱가포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3층의 멀티플렉스 시네마에는 젊은 연인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긴 줄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가족을 데리고 3층에 자리한 코피티암(Kopitiam)이라는 푸드 코트를 찾아 들어갔다. 싱가포르의 대형 쇼핑몰이나 대로변에 자리하는 이 푸드코트는 여러 작은 식당들이 모여 한 식당처럼 운영되는 음식 백화점과 같은 곳이다. 이 곳에서는 싱가포르 직장인 외에도 외국인들이 많이 찾기에 아시아 각국의 음식을 다양하게 맛 볼 수 있다.

이 식당도 일요일 점심시간이라 자리 잡기가 힘들 정도이다. 나는 중국 요리와 야채볶음밥을 함께 파는 식당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 곳은 뷔페 같이 여러 음식들을 골라서 밥에 얹어 먹을 수 있는데, 주방장에게 재료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직접 주문하였다. 이 식당은 손수 주문하고 식판을 스스로 가지고 좌석도 스스로 확보해야 하지만, 음식 가격은 놀라울 정도로 매우 저렴하다. 내가 말한 음식 가격이 잘못된 것 같다며 아내가 믿지 못할 정도로 음식 가격은 저렴하다.

썬텍시티 코피티암. 여러나라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음식백화점이다.
썬텍시티 코피티암. 여러나라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음식백화점이다. ⓒ 노시경
문제는 나의 딸이 향내가 아주 강한 이 음식의 향채를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외국 음식도 잘 먹는 딸이지만 이 중국 음식은 먹기 힘든 모양이다. 나는 우동을 먹고 싶다는 딸의 손을 잡고 국물이 있는 면을 파는 가게로 갔다. 눈앞에서 직접 재료를 섞고 끓여주는 면을 받아가지고 다시 우리 좌석으로 왔다.

@BRI@ 그런데 이 면에는 한약 맛이 나는 커다란 멸치가 가득 들어 있었다. 어른인 내가 먹기에도 거북스러운 맛이 난다. 그래서 딸아이의 입 속에는 이 국수도 몇 가닥 들어가지 못했고, 겨우 과일 주스로 뱃속을 채워야 했다. 그래서 나는 싱가포르 음식기행에 대한 계획을 바꿨다. 이런 시행착오가 발생하지 않도록 싱가포르에서 자랑하는 유명 음식들을 파는 식당들만을 골라서 다니기로 한 것이다.

본격적으로 썬텍시티를 돌아보기 위해 썬텍시티의 지하로 내려왔다. 아, 그런데 이 지하시티 몰의 분수대 주위에 여행자의 눈길을 끄는 식당들이 밀집해 있는 것이었다. 정통 중국요리, 바비큐 치킨, 스시, 파스타 등 세계 각국의 이름난 음식들이 엄선되어 여행자들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것도 서울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음미할 수 있었다. 썬텍시티 내에서 휴식을 취하기에도 가장 좋은 곳이 이 곳인데,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하의 식당가와 지하보도가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것은 바로 서울의 강남에 자리한 코엑스(COEX)의 지하 식당가, 그리고 지하보도와 매우 닮아 있었다. 1999년에 싱가포르 건축 디자인 대상을 수상한 아름다운 썬텍시티는 다름 아닌 우리나라의 대형 건설사에서 만든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건설사가 지은 이 건축물은 서울에 코엑스가 들어설 당시에 다시 참고가 되었다.

과거 싱가포르 여행에서는 화려한 쇼핑몰에 눈을 빼앗겼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도시가 되어가는 서울의 쇼핑가에 익숙해져서인지 싱가포르 쇼핑가가 그리 놀랍지는 않다. 사실, 내가 이 썬텍시티를 찾은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썬텍시티 부의 분수. 세계 최대 규모의 분수이다.
썬텍시티 부의 분수. 세계 최대 규모의 분수이다. ⓒ 노시경
이 썬텍시티 안에는 소원을 빌면 원하는 것도 이룰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게 해 준다는 분수가 있었고, 나는 썬텍시티 안에서 그 분수를 찾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을 정도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는 이 분수는 부의 분수(Fountain of wealth)였다. 열대의 나라 싱가포르에는 곳곳에 시원스럽고 인상적인 분수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이 부의 분수는 제왕의 자리를 차지하는 분수다.

이 분수는 1997년에 무려 6백만 US$를 들여 동으로 주조한 것이다. 풍수사상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이 분수는 물줄기가 특이하게도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분수대 외곽의 거대한 갈색 동으로 만들어진 4개 기둥의 고리 부분에서 분수대 안쪽으로 물이 떨어지는데, 이 분수의 물줄기가 부를 빨아들이며 복을 부른다는 것이다. 재화의 축적에 관심이 많은 중국인들이 만든 도시 싱가포르에서는 분수도 돈을 벌어주는 분수로 각광받고 있었다. 그래서 이 분수 주변에는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썬텍시티 분수 돌기. 이 곳에서 소원을 빌면 돈도 벌 수 있다고 한다.
썬텍시티 분수 돌기. 이 곳에서 소원을 빌면 돈도 벌 수 있다고 한다. ⓒ 노시경
이 분수에서 돈을 벌게 해 달라고 비는 데에도 일정한 방법이 있다. 이 분수 중앙 분출대에서 나오는 물 주변을 돌아야 하는데, 분수 앞에 부착된 설명문에는 시계 방향으로 돌아야 한다고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시계 방향으로 돌아야 하기 때문에 물을 만지는 손은 자연히 오른손이 된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손으로 분수의 물을 만지면서 분수 주변을 3바퀴 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방법으로 분수 주변을 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면서 자신의 소원을 빌면 된다.

이 분수는 비록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수이지만, 이 분수에 심어 놓은 부자 되기 속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고 있다. 조금 믿기 힘든 속설이지만 사람들은 이 속설의 유혹을 멀리 하기가 힘든 것이다. 분수 3바퀴만 돌면 부자가 된다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나는 나의 행동이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아내는 이 분수의 내력을 듣고 곧장 분수 옆으로 가서 열심히 소원을 빌며 돌고 있고, 아홉 살 난 딸아이도 자신의 소원을 빌며 정성스럽게 분수 주위를 돈다. 나는 분수대에서 파운틴 테라스까지 연결된 발판을 걸어 내려오면서 아내와 딸이 빌었던 소원을 물어보지 않았다. 자신의 소원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면서 간절히 염원하는 것이 좋다는 나의 생각 때문이었다.

이 분수대에서 소원을 비는 것은 분수 중앙에 위치한 중앙 분출대에서 가능하다. 12시, 18시, 20시에 하루 세 번, 두 시간씩 벌어지는 분수 쇼 시간에는 분수대에서 물줄기가 쏟아지기 때문에 소원을 비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분수 쇼를 시작하는 시간의 직전에 도착해서 소원을 빌고 힘 찬 분수 쇼를 보는 것이 좋다. 20시에는 환상적인 레이저의 조명을 받는 분수 쇼가 시작된다.

썬텍시티의 연못. 도심의 청량제 역할을 하는 연못이다.
썬텍시티의 연못. 도심의 청량제 역할을 하는 연못이다. ⓒ 노시경
이 거대한 분수대를 중심으로 4개의 썬텍시티 건물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각 건물의 지하 1층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나는 가족과 함께 지하상가를 둘러보았다. 다양한 매장의 지하상가가 워낙 발달되어 있어서, 햇볕이 따가운 외부로 전혀 나갈 필요가 없이 편리하게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다. 쇼핑몰 중앙의 잉어가 노는 연못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썬텍시티의 쇼핑가는 3층으로 되어있지만, 대부분의 쇼핑 매장은 지하 1층과 1층에 집중되어 있다. 명품 매장보다는 싱가포르 자체 브랜드의 가게나 처음 보는 외국 브랜드의 가게가 많아 간단한 쇼핑을 하기에 좋다. 우리나라에 있는 제품도 많으니, 우리나라에 없는 스타일의 옷이나 신발을 사는 것이 재미다.

상점 곳곳에는 우리나라의 의류와 전자제품 상표가 눈에 띤다. 썬텍시티 건물도 우리나라에서 세우고 제품도 한국산이 많으니, 이 썬텍시티에서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힘도 느낄 수 있다. 나는 한국산 옷값을 잘 모르지만, 아내는 이 곳에서 한국 의류를 사는 것이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더 싸다고 한다.

썬텍시티의 지하 통로를 능숙하게 이동해야 제대로 썬텍시티를 둘러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썬텍시티 규모가 워낙 커서 썬텍시티를 한번 둘러본 후 다리를 쉬어줘야 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타임스(times)라는 서점에 들어가 책을 골라 읽으며 휴식을 취했다. 그래도 다리의 피로가 풀리지 않아, 서점 앞 휴식 벤치에 앉아 한참동안 휴식을 취해야 했다.

아내의 협조로 썬텍시티에서의 시간은 쇼핑이 아니라 여행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다음 여행지를 아내에게 설명해 주고, 그 곳으로 다시 이동하자고 했다. 10분 넘게 휴식을 취하자 다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이 비축되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도저히 걷기 싫어서 숙소로 돌아가 쉬고 싶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다음 여행지에 대한 기대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여행은 항상 휴식 뒤에 하는 것인가 보다.

덧붙이는 글 | - 이 여행기는 2006년 8월의 여행 기록입니다.
- 이 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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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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