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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값 거품빼기 국민행동을 벌이는 경실련 회원들이 지난 11월 21일 오전 서울 세종로 네거리 동화빌딩앞에 텐트를 설치한 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며 시민들에게 캠페인 동참을 호소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9월 이후 집값 폭등세가 재연되면서 부동산 가격 안정화는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내년 대선은 '부동산 대선'이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그런지 곳곳에서 집값을 잡을 수 있는 '비책'들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11·15대책을 통해서 분양가 25% 인하 방안을 발표했고, 한나라당은 홍준표 의원의 '반값 아파트' 공급안(토지임대부 건물분양 방식)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경실련은 분양원가 공개를 통한 분양가 인하를 외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같은 '비책'이 모두 직접 가격과 씨름하는 방안이라는 사실이다. 눈앞에서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직접 끌어내리겠다고 하니 국민들도 솔깃한 모양이다.

신규주택의 분양가를 낮추어서 집값 폭등을 잠재우려고 하는 방안들은 나름대로 '일정한 의미'를 갖고는 있지만, 부동산 투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여기서 '일정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은 신규주택의 분양가가 주변 기존 주택의 가격을 선도하는 기능을 어느 정도 발휘할 수 있고, 또 시장 참가자들의 미래 집값에 대한 기대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규 아파트 분양가의 상승은 9월 이후 진행되고 있는 수도권 전역 모든 주택의 가격 폭등을 초래한 근본 원인이 아니다. 이는 전체 주택 재고에서 신규주택 공급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3%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만 생각해도 금방 알 수 있다.

직접 가격과 씨름하는 건 정답 아니다

@BRI@신규주택 분양가를 낮추어서 집값 폭등을 잡겠다고 하는 것은 마치 코끼리의 코를 붙잡고 흔들면 코끼리가 공중에 들려 흔들릴 것이라 말하는 것과 같다. 코끼리의 코를 붙잡고 흔들면 코끼리를 움찔하게 만들 수 있을 지는 몰라도, 들어서 흔들 수는 없다.

집값 폭등의 근본 원인은 분양가 인상이 아니라 투기적 가수요다. 투기적 가수요가 없으면, 신규주택 분양가의 가격 선도 기능은 발휘되지 않는다. 아니, 아예 분양가의 대폭 인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투기적 가수요가 없는 상태에서 분양가를 인상하면 미분양 사태가 초래될 것이고, 투기적 가수요가 약한 상태에서 분양가를 인상하면 분양가는 급등하는 반면 기존 주택의 가격은 떨어지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현재 부산과 대구의 부동산 시장에서는 바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공급을 단기간에 변화시킬 수 없는 물건의 경우 가격이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경제학의 상식이다. 주택과 토지는 공급을 단기간에 변화시킬 수 없는 대표적인 물건들이다.

이런 물건들에 투기적 가수요가 발생하면 가격은 금방 폭등세를 나타내는데, 문제는 공급을 바로 증가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이 폭등세가 장기화한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초과수요가 가격을 상승시키고 가격상승이 초과수요를 더욱 확대시키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투기적 가수요를 제거하지 않으면 집값 폭등 문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직접 가격과 씨름하는 것은 인기는 끌지 모르지만, 정답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투기적 가수요의 발생을 막을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는 정책의 신뢰성을 높이고 주택 담보 대출을 규제하는 방안이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금리 인상을 통해 투기적 가수요를 억제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거시경제의 침체라든지 부동산 시장 경착륙이라는 커다란 부작용이 따르기 쉽다.

결국, 근본적인 제도 개혁을 통해 정상적인 자산 수익을 초과하는 부동산 불로소득의 획득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정답이다.

패키지형 세제개혁, 이렇게 하면 된다

제도개혁을 통해 부동산 불로소득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패키지형 세제개혁과 토지공공임대제이다.

패키지형 세제개혁은 토지보유세를 대폭 강화해서 부동산 불로소득이 아예 발생하지 못하게 차단하면서 경제에 부담을 주는 다른 세금들(건물보유세·부동산거래세·부가가치세·소득세·법인세 등)을 감면하는 정책이며, 토지공공임대제는 국공유지나 공공택지를 민간에 넘기지 말고 임대하여 민간이 토지에서 불로소득을 챙기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제도이다.

양 제도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정책 수단인 동시에 토지공개념의 정신을 시장친화적인 방법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패키지형 세제개혁은 토지보유세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대신 경제와 서민 생활에 부담을 주는 다른 세금들을 감면하는 정책이다. 부동산보유세가 아니라 토지보유세를 강화하는 것은 부동산 투기가 본질적으로 토지투기이고, 부동산 불로소득이 본질적으로 토지 불로소득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도 보유세 강화 정책을 추진했지만, 보유세 강화의 장기 목표가 낮았고 토지세 중심의 보유세 강화를 추진하지도 않았으며, 다른 세금을 감면하는 패키지형 방식을 적기에 적용하지도 않았다. 더욱이 그것조차 일관성있게 추진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후퇴하곤 했다.

다른 세금을 감면하는 패키지형 방식, 즉 조세대체의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참여정부는 보유세 강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으며 더구나 별도로 증세 정책을 발표함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보유세 강화를 단순한 세수 증가책으로 오해하게 만들었다.

조세대체의 원칙을 적용할 때, 어떤 세금을 감면할 것인지는 과세 기술상의 복잡한 문제를 수반하므로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토지보유세 수입이 얼마 늘지 않는 초기 단계에는 건축 활동을 저해하고 부동산 거래를 제한하는 다른 부동산 조세(건물보유세·취득세·등록세 등의 거래세)들을 감면하고, 나중에 토지보유세 수입이 상당한 수준에 달하게 되면 생산활동 또는 그 결과에 부과되는 조세인 부가가치세·소득세·법인세 등을 감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단, 조세저항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경우에는, 서민 부담과 직접 관련이 있는 세금(예를 들면 자동차세나 부가가치세)을 먼저 감면할 수도 있다.

토지보유세에는 지대세·이자공제형 지대세(혹은 지대이자차액세)·지가세 등 세 가지가 있다. 지대세는 토지의 임대가치, 즉 지대(地代)를 과세대상으로 하여 그 일정 부분을 징수하는 조세를 말한다. 지대는 토지의 사용료로서 토지 임대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된다.

▲ 정부가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내놓은 11·15 대책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사진은 과천 정부종합청사 인근 주공아파트 단지.
ⓒ 오마이뉴스 남소연
토지보유세는 높이고, 건물보유세는 낮추자

만일 어떤 사회가 토지를 완전한 공공의 재산으로 간주한다면, 정부가 이 지대의 전부를 조세로 징수하는 것이 옳다. 이럴 경우 매매가격, 즉 지가는 제로(0)가 된다. 왜냐하면 지가는 토지 소유로부터 생기는 수익에 의해 결정되는데, 정부가 지대를 다 징수하면 소유자에게는 수익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부동산 불로소득도 제로(0)가 된다.

토지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것도 좋지만, 최소한 토지 소유자가 자기 토지를 매입하기 위해 지불한 금액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주장이 성립할 수 있다. 혹은 제도 시행 시점의 땅값만큼은 토지 소유자에게 소유권을 인정해 주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정부는 지대 중에서 토지 소유자에게 매입지가나 제도 시행 시점의 지가에 대한 이자는 남겨두고 나머지 부분을 조세로 징수하면 된다. 이처럼 지대와 매입지가(혹은 제도 시행 시점의 지가)의 이자의 차액을 징수하는 조세를 특별히 이자공제형 지대세라고 부른다.

이자공제형 지대세를 부과할 경우, 땅값은 매입지가(혹은 제도 시행 시점의 지가)의 수준에서 고정된다. 우리는 어떤 자산이 매년 일정 금액의 수익을 발생시킬 것으로 예상될 때 그 자산의 원본가치를 계산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 고정수익을 이자율로 나누면 된다.

만일 토지 소유자가 얻는 수익이 매입지가(혹은 제도 시행 시점의 지가)의 이자라면, 그 토지의 원본가치는 다름 아닌 그 매입지가가 될 것이다. 이처럼 이자공제형 지대세는 지대와 이자의 차액을 조세로 징수하면서 땅값을 일정 시점의 수준으로 고정시키기 때문에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지대가 아니라 지가를 과세대상으로 하여 토지보유세를 부과할 수도 있는데, 경제학에서는 이를 지가세(地價稅)라고 부른다. 현재 전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지가세 형태의 토지보유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지가세도 지대세나 이자공제형 지대세와 마찬가지로 결국은 지대의 일부를 조세로 징수하는 것인데, 지대를 직접 과세대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목표로 하는 환수 비율을 정확하게 달성하기 곤란하다는 결점이 있다. 그리고 지가세로 지대의 일정 비율을 환수하려면 매년 과표를 인상하거나 세율을 높여야 하는 문제가 따른다. 지가세를 강화하면 지가가 하락하기 쉽고 지가가 하락하면 과표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10~20년 동안 추진해야 한다

토지보유세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대세든 지가세든, 지대 환수 비율을 높여야 한다. 토지보유세 강화의 최종 목표를 어느 정도로 잡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의 내용에 따라 최종 목표는 '토지 불로소득의 차단'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지대의 대부분 환수'가 될 수도 있다.

토지 불로소득의 차단에는 이자공제형 지대세가 효과적이고, 지대 환수에는 지대세가 효과적이지만, 현행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지가세가 다른 두 세금보다 더 효과적이다.

어떤 방식으로 토지보유세를 강화하든, 단기간에 성급하게 최종 목표를 달성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부동산 시장과 경제 전체에 큰 충격을 가하고 사회에 쓸데없는 혼란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토지보유세 강화는 10~20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정책의 장기목표와 시간계획을 미리 밝히고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다음 정부가 마음대로 뒤집어버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현행 부동산 보유세(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는 토지와 건물 모두에 부과되고 있고 특히 주택의 경우 토지와 건물을 통합평가·통합과세하고 있다. 따라서 현행 제도를 활용할 경우에는 보유세를 강화하되 그것을 토지세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부동산 평가 및 과세방식을 토지보유세 부과에 적합한 형태로 개편하는 것이 급선무다.

부동산 평가체계 및 과세방식의 개편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토지와 건물을 구별하지 않고 보유세를 강화하다가, 개편이 행해진 후에는 건물보유세를 폐지하고 토지보유세를 강화한다. 이럴 경우 현행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라는 이름은 내용에 맞게 고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유세 세액은 기본적으로 '공시가격×과표적용률×세율'이라는 공식에 의해 계산되므로, 보유세 강화는 공시가격 현실화, 과표적용률 인상, 세율 인상을 통해 추진할 수 있다.

패키지형 세제개혁이 경제정의와 효율에 모두 부합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므로, 지면 관계상 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생략한다.

패키지형 세제개혁이 온전한 형태로 시행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동안에 발생할 부동산 불로소득에 대해서도 대책이 필요하다. 즉, 약간의 부작용이 있겠지만, 양도소득세와 개발이익환수제도 등 개발이익 환수장치를 정비·강화하여 토지 불로소득을 가능한 한 많이 환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세수를 증가시켜서 다른 세금을 감면하는 패키지형 방식을 적용하는 데도 일조할 것이다.

토지공공임대제의 원리와 효과

▲ 토지정의시민연대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6월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 열린우리당사 앞에서 집회를 갖고 열린우리당의 부동산정책 후퇴를 규탄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기 위해서는 토지 소유권을 사유로 둔 상태에서 토지보유세를 강화하는 방법과 함께 국공유지를 확충하여 그곳에 토지공공임대제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 토지공공임대제하에서는 토지가 아예 국가와 공공의 소유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제도를 잘 운용하기만 하면 토지 불로소득을 원천 봉쇄할 수 있다.

토지공공임대제란 토지 소유권은 공공이 갖는 대신, 토지의 사용은 민간의 자율에 맡기는 제도이다. 즉, 국가가 토지 임대인이 되고 민간이 토지 임차인이 되는 것이다. 토지 임차인은 임대 기간 중에는 자신의 토지 사용권을 자유롭게 처분(매각·임대·저당·증여·상속 등)할 수 있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토지를 사용하는 사람은 사용료를 국가에 납부해야 한다. 사용료의 결정은 자유경쟁의 원리에 따른다. 토지 사용료 수입은 모든 국민에게 혜택이 공평하게 돌아갈 수 있는 방식으로 지출해야 한다.

이처럼 토지공공임대제는 토지 사용자에게 사용하는 만큼 사용료를 징수하고 그 수입은 공공을 위해 지출하기 때문에, 토지 불로소득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게다가 토지 사용의 자유가 보장되고 사용권의 매매도 허용되기 때문에, 자유 경쟁의 효력도 완벽하게 발휘된다. 즉, 토지공공임대제는 시장친화적이다.

보통 토지공공임대제는 구사회주의국의 체제전환 문제를 다룰 때 자주 언급되지만, 우리나라에도 도입할 수 있다. 다만 현행 법체계하에서는 바로 전국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공공택지나 국공유지에서 국지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 토지공공임대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토지 비축 제도를 활성화하여 국공유지 비율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갈 필요가 있다.

행정복합도시·기업도시에 토지공공임대제 적용했다면

토지공공임대제는 개발이익 환수, 도시계획 기능 제고, 부동산 투기 억제, 사회간접자본 건설 등에 매우 유리하며, 토지보유세 강화 정책만큼 강한 조세저항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장점을 갖는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토지공공임대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대표적인 나라들이며, 유럽의 네덜란드·스웨덴·핀란드, 그리고 이스라엘과 호주 등도 오랜 토지공공임대제 시행 역사를 갖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행정복합도시,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의 개발에 토지공공임대제의 원리를 적용했더라면, 도시 개발로 인한 투기는 미연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토지임대부 건물분양' 방식은 토지공공임대제의 원리를 주택 분양에 적용한 것이다. 요즈음 이 방식에 관한 논란이 한창인데, 지면 관계상 자세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단, 이 방식의 핵심은 토지 불로소득의 환수임에도 불구하고, 분양가격 인하가 지나치게 강조됨으로써 본질이 흐려졌고 자칫 잘못하면 포퓰리스트적 정책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해 둔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 제도의 효과

토지보유세 강화, 양도소득세 중과 및 개발이익환수제도 도입, 토지공공임대제 시행 등은 부동산 불로소득의 환수라는 한 가지 목표 아래 한 묶음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토지정의시민연대'는 여기에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 제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 제도란, 토지와 자연자원이 모든 사람의 공공재산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는 만큼 그것을 보유하고 사용하는 사람은 토지가치에 비례해 사용료를 공공에 납부하게 하고, 사용료 수입은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기본 원리로 하는 제도이다.

부동산 정책을 지금까지처럼 부동산 투기 억제나 부동산 세제개편의 차원에서만 다룰 경우 세제개편에 수반되는 복잡한 현실 문제를 이유로 내세우는 개혁 반대론이나 조세저항에 대응하기 곤란하고, 차기 정권에서 뒤집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사실 그동안 부동산 정책에 관한 논의가 백가쟁명식으로 전개된 것도 올바른 패러다임의 부재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정권 교체에 상관없이 정책이 계속 유지되도록 하려면,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의 철학과 원칙을 헌법 가운데 기록해 넣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내년 대선이 '부동산 대선'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부터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 제도가 활발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중요 의제로 부각될 경우 대선 구도는 친(親) 토지공개념 세력과 반(反) 토지공개념 세력으로 갈라질 것이며, 개혁적 정치세력은 그 동안의 열세를 한꺼번에 만회할 수도 있다.

토지공개념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예전부터 높았고, 더욱이 이번 집값 폭등 사태를 경험하면서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은 훨씬 더 분명해졌을 것이므로,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 헌법 명기 주장은 국민들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현재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부동산 대책들 가운데, 분양원가 공개, 토지임대부 분양, 환매조건부 분양, 공공임대 주택의 확충 등 토지공개념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들은 모두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의 틀 안으로 가져와서 내용 조정을 거친 후 합리적인 위상을 부여하고 재배치할 수 있다.

투기는 줄어들고 토지 이용은 효율적으로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 제도가 시행되면 여러 가지 바람직한 경제적 변화가 일어난다.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지적해 두기로 하자.

우선, 부동산 불로소득이 크게 줄어들고 투기가 근절될 것이며, 부동산 값은 지금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떨어져서 안정될 것이다. 부동산 값 변동이 안정화됨에 따라 부동산 시장 변동이 금융시장과 거시경제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는 효과도 사라질 것이다.

둘째, 토지보유세가 강화되거나 토지공공임대제하에서 공공 임대료가 제대로 부과되면 토지를 투기적으로 보유하면서 저사용 상태로 방치하는 경향은 사라질 것이고, 그에 따라 토지 이용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다.

토지의 투기적 보유는 쓸모있는 땅을 유휴화시키기 때문에 도시의 무질서한 확대와 그로 인한 환경파괴를 야기한다. 토지보유세 강화는 중심지의 토지 이용의 효율성을 높여서 무분별한 도시 개발과 환경파괴를 방지할 것이다. 토지공공임대제하에서는 토지 소유권을 공공이 가지므로 토지를 오남용하는 사람들을 제재하기가 쉽고 도시 계획 기능도 높일 수 있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 제도하에서는 토지공공임대제의 실시 범위가 확장될 것이므로 토지의 오남용은 줄어들고 도시의 개발은 지금보다 훨씬 더 질서 있는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셋째, 소득과 부동산의 분배가 지금보다 훨씬 평등해질 것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이 차단되기 때문에 그로 인해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현상은 사라질 것이고, 토지와 부동산을 투기 목적으로 과다 보유하고 있던 사람들이 보유 부동산을 내놓게 될 것이므로 부동산의 분배 또한 크게 개선될 것이다.

넷째, 불로소득 획득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근로 의욕과 기업가들의 투자 의욕, 그리고 사회 전체적으로 저축 의욕이 높아질 것이며, 따라서 경제는 크게 활성화될 것이다.

높은 지가는 고비용-저효율 경제구조를 만들어내는 주범이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 제도에 의해 지가가 하향 안정화되면 고비용-저효율 경제구조를 만들어내던 요인들이 크게 약화되고 경제 펀더멘탈이 튼튼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토지보유세 강화는 경제에 부담을 주는 나쁜 세금들을 감면하는 조치와 함께 시행되므로 세금 감면에 의한 경제 활성화 효과도 나타날 것이다.

패키지형 세제개혁의 경제적 효과

▲ 종합부동산세 자진 신고납부가 시작된 지난 1일 라이트코리아 주최로 열린 '조세저항 국민운동' 결성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15일까지 종합부동산세 납부 거부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티드먼과 플래스먼(Tideman & Plassman)은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의 한 축인 패키지형 세제개혁을 선진국(G7 국가)에서 단행할 경우 어떤 경제적 효과가 있을지 추정하였다.

이들에 의하면, 총 조세수입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토지 및 자연자원에 대한 과세를 늘리고 다른 세금을 감면하는 패키지형 세제개혁을 단행할 경우, 국내순생산(NDP)이 작게는 29%, 많게는 92% 증가할 것이며, 초과부담은 작게는 14%, 많게는 51%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기서 초과부담이란 납세자가 내는 세액 이상으로 조세가 경제에 부담을 초래할 경우 그 초과부분을 가리킨다. 이는 조세가 경제 활동의 수준과 양상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데, 크기가 작을수록 바람직하다.

또한 각 국가의 저축률도 크게 증가할 것이며, 자본스톡은 세제개편 후 5년간 작게는 18%, 많게는 106%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요컨대 이 연구의 결론은 선진국에서 패키지형 세제개혁을 단행할 경우 경제가 획기적으로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이익집단을 막을 대선주자를 바란다

토지보유세를 강화하고 다른 세금을 감면하는 패키지형 세제개혁은 19세기 후반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에 의해 본격적으로 주창된 이래 세계 여러 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었다.

대만, 1950년대 말의 덴마크,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주 도시들과 알래스카 주, 19세기 말~20세기 초의 호주와 뉴질랜드 등에서 실시되었다. 그 사례들을 검토해 보면 패키지형 세제개혁이 의미 있게 추진된 곳에서는 상당한 경제적 성과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하지만 이 개혁이 전 세계적인 대세를 이루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더욱이 이 개혁이 한때 성공적으로 추진되었으나 그 원래의 정신이 유지되지 못하고 후퇴해 버린 곳도 적지 않다.

어째서 많은 나라들이 그처럼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개혁 정책을 간과한 채 부동산 투기가 초래하는 문제들을 고스란히 감수하고 있는 것일까? 많은 정책 입안자들과 경제학자들이 이 정책의 장점을 몰랐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른 조세와는 달리 토지보유세의 경우 그것에 반대하는 강력한 이익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이 정확한 대답이 될 것이다. 이 집단은 토지보유세가 남에게 떠넘길 수 없는 유일한 조세이며, 따라서 토지세를 낮게 유지하면서 다른 조세를 부과하도록 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이익이라는 것을 잘 안다.

실제로 17세기 영국의 지주들은 봉건제하에서 자신들이 부담하던 토지세 대신 모든 소비자가 부담하는 물품세를 확립시킨 바가 있다. 그리고 헨리 조지의 사상에 따라 무거운 토지보유세를 부과하여 상당한 성과를 올린 곳에서는 얼마 후 지주들의 반대 움직임이 일어나 정책이 결정적으로 후퇴했던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금 강남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종합부동산세 납부 거부 운동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꼭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주들의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중이 패키지형 세제개혁의 의미와 효과를 제대로 이해하고 지주들의 움직임에 대응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급선무다.

내년 대선에서 이런 일을 앞장서서 떠맡고 나설 대선 주자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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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지식인선언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헨리조지센터 대표,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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