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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최선을 다하는 삶.
ⓒ 김기세
오늘 첫눈이 왔습니다. 낼 모레이면 내 나이 40인데 사실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때 메신저로 대화중에 있던 상대방이 "첫눈이 오니까 잠시 있다가 대화를 나누지요?" 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얼떨결에 창밖을 내다 봤습니다. 함박눈이 오더군요.

바야흐로 날씨가 본격적으로 겨울로 접어 들어가면서 쌀쌀해지는데 며칠 전에는 비가 내리더니 이제는 눈으로 바뀌어서 본격적으로 겨울로 접어들었음을 실감나게 느꼈습니다.

오늘 점심때 강남에 있는 테헤란로의 인근에 있는 거래처에 점심을 먹으로 갔다가 손님을 기다리는 동안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는 분이 찬송가가 울리는 오디오가 붙어있는 박스를 밀고 기어다니며 구걸(!)하시는 분을 뵐 수 있었습니다. 사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우리의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현상들입니다.

그분이 열심히 움직이는 동안에도 눈발은 가끔씩 내려서 차별없이 뿌려지고 있었습니다. 불현듯 저도 모르게 호주머니에 있는 잔돈을 모두 움켜쥐어서 돈통 위에 올려드렸습니다. 지나가는 분들이 가끔씩 잔돈과 1000원 짜리 지폐를 올려주기도 하였습니다.

▲ 얼큰한 생태찌게
ⓒ 김기세
그러던 중 세바퀴로 된 오토바이를 끌고 가시던 백발의 노인이 오토바이를 세우고 멈춰 서서 지갑을 꺼내더니 색깔이 파란 만원짜리를 올려놓고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구걸을 하시던 분이 돈을 보더니 색깔이 파란 만원짜리임을 보고 자신이 가고있는 반대쪽으로 홀연히 사라진 방향을 향하여 몇 번이고 좌로 우로 돌려다 보았습니다.

거기까지 보고 있다가 기다리던 손님이 와서 점심을 먹으러 근처에 있는 고급일식집으로 가서 조금은 비싸지만 정말로 맛있는 생태찌게를 먹었습니다. "어~ 시원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국물은 얼큰하고 시원하였습니다. 이 맛있는 생태찌게를 나만 먹는 것 같아서 약간은 미안한 마음도 들었구요.

그러나 마음은 한켠으로 조금 전에 보았던 엎드려서 구걸하는 그 분의 모습이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측은함과 동정심이라기 보다는 '내가 만일 아까 그분의 입장처럼 하반신을 전혀 못쓰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 살아는 있을까?' 라는 등등의 각종 생각을 해봤습니다.

가만히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저는 아마도 집안에 틀어 박혀 있거나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면서 세상을 한탄하거나 원망하면서 눈물로… 술로… 담배로… 인생을 낭비하다가 때가 되면 세상을 뜨게 되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큰 차이없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까 전에 구걸을 하시던 분은 본인의 처한 상황에 절대로 비관을 하지 않았으며, 냉정하게 본인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 상태에서 살아 나갈 수 있는 생존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현재 하고 있는 걸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사지도 멀쩡한데 자신이 처한 작은 불운과 작은 불행을 핑계로 인생을 비관하다가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고 결국 정신이 황폐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함의 극치에 처해진 상태로 지하철역에서 자는 노숙자가 되거나 집에서 절대 밖으로 나오지 않고 평생 창문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다가 세상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저분처럼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는 입장이라면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제가 식사를 마치고 다시 그분이 계신 곳으로 다시 가 봤습니다. 제가 점심을 먹는 1시간여 동안 그분이 이동한 이동거리는 고작 100미터도 안된 곳에서 열심히 찬송가가 흘러나오는 돈통을 열심히 밀고 가시는 중이었습니다. 여전히 돈통에는 1000원 짜리 지폐하나와 100원짜리 동전 두어개가 있었습니다.

▲ 마케팅전략의 상징(?)
ⓒ 김기세
지나가는 사람들이 1000원 짜리를 주거나 잔돈 특히 500원 짜리를 주면 1000원 짜리 한개와 100원 짜리 몇개는 꼭 남겨 놓고 나머지 돈은 금고(!)로 넣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지켜본 결과 1000원 짜리 한개를 남겨 놓는 이유는 '잔돈만 있을 때는 잔돈만 올려놓고, 1000원 짜리 지폐가 있을 때 가끔은 1000원 짜리도 올려준다'는 고객(!)의 심리를 활용한 고단수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마케팅전략으로 저는 이해를 하였습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정말로 어려움과 힘든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열심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하여 한탄하거나 원망하지 않으며 열심히 사시는 이분께 진심으로 따뜻한 응원의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은 불행을 확대해석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한다면 세상에 못할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진리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날씨가 추워지는 한 겨울입니다. 혹여라도 길을 가시다가 이렇게 열심히 구걸(!)이라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시면 측은하게 생각지 마시고, '정말로 저분은 저분이 처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시면서 성심성의껏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추신 : 제가 이분의 모습을 찍으면서 이분의 사생활침해 또는 기분이 상해지실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표시안나게 뒤에서 찍거나 지나가면서 살짝 찍었음을 말씀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미디어 다음에도 송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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