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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산층 서민을 위한 재무설계 강연회 모습.(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김시연

재무설계란 말이 이젠 별로 낯선 용어가 아닌가 보다. 유명 백화점의 창사기념 이벤트로 무료재무설계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구로지역의 한 여성회에서 여는 문화강좌도 재무설계 신청자가 제일 많았다. 비즈공예, 영상편집, 글쓰기 등이 그동안 주로 하던 강좌이고, 재무설계 강좌는 이번에 처음 시도한 것이다.

강의가 끝나고 수강생들 소개를 하게 하면서 재무설계를 신청한 이유를 들어보았다. "가계부 열심히 쓰는데 늘 적자가계부예요. 어디서 어떻게 새는지 알아봐야겠어요." 이런 이유가 제일 많았다. 보험이 많아 정리하고 싶다는 의견이 그 다음이고, 청약저축이나 펀드에 대해 알고 싶다는 의견도 있었다.

"대출 받아 큰 평수 전세로 옮기는 게 나은가요, 저축해서 모은 돈으로 옮기는 게 나은가요?" 수강생이 다 나간 다음, 아기를 데려온 분이 한 질문이다. '아, 이거야말로 정말 공자님 말씀 식 대답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잠시 생각하고 있는데, 한 마디 덧붙인다. "남편은 이자 아까우니까 돈 모아서 이사가자고 해요."

대출 받아 큰 평수 전세로 옮겨야 하나요?

▲ 서울 강북에 위치한 한 아파트.
ⓒ 오마이뉴스 권우성

사실 고객들은 자기 문제에 대해 일정한 답을 가지고 있다. 물어보는 건 그 답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지금 사시는 데가 불편한가요?" 이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남편보다 집안살림을 하는 부인에게 더 절실한 문제다.

금융공학으로야 당연히 저축해서 모은 돈으로 평수를 넓히는 게 답이다. 동네꼬마도 아는 거다. 그러나 살림의 불편함 변수는 꼬마는 잘 모르고, 남편은 무시하는, 부인만 속으로 앓는 문제다. "사실만 하면 저축해서 옮기시고, 힘드시면 대출 받아서라도 옮기셔야죠."

그런데 월 50만원씩 2년을 모아 이사가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전세가 훨씬 더 올라있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많이 그래 왔다. 그래서 집 없는 서민의 아픔은 오늘도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무리하게 대출 받아서라도 큰 평수로 가야 하는 게 옳은가? 그렇더라도 역시 원칙은 지금 집이 사는 데 크게 불편한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2년 뒤 이사 가야 할 집은 원래 목표 했던 평수가 아닐 수도 있다. 모은 돈에 맞춰 35평이 아니라 32평일 수 있다.

여기까지도 쉽게 이해된다. 그러나 결정을 더 어렵게 하는 요소는 이웃과의 비교다. '순이네는 35평에 화장실이 두 개라는데….' 실제 수강생 중 한 명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잘 아는 두 집이 최근에 집값이 크게 올라 횡재를 했거든요. 그걸 보니까 우리집이 초라해 지더라고요." 어차피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이런 심리요인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집값이 올라 횡재한 내용이 뭔지를 살펴봐야 한다. 아파트 청약한 게 당첨되고 주변 아파트 값들이 올라서 그런 거라면 다행이다. 그게 아니고 집값이 오른다는 정보를 알고 무리하게 돈을 끌어모아 산 집값이 올라 그런 거라면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그런 투기적 요인은 사회발전에 역행하는 거라는 도덕적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재무설계 관점에서 짚어보자는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도 실패한 부동산 투자기

금융상품과 비교할 때 부동산의 가장 큰 약점은 유동성이다. 나이가 들수록 부동산 자산 비중을 줄이자는 것도 유동성 때문이다. 투자가 뜻대로 잘 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다. 과거 동향이나 전문이론을 동원해 예측해 본다고는 하지만, 절대 정답은 있을 수 없다. 좀 과장해 말하자면, 그건 신의 영역이다. 그러니 당연히 위험이 따를 수밖에.

그러나 위험하다고 해서 못할 것은 아니다. 정말 위험한 것은 위험하다는 자체가 아니라, 위험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거나 위험의 정도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한 번 더 과장해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죽을 위험을 안고 산다. 반드시 죽는다. 그런데 죽을 수밖에 없는 큰 위험을 안고 살면서도 생기발랄하게 사는 건 참 신기하지 않은가?

문제는 그 위험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보는 것이다. 그래야 대책이 나온다. 그 대책은 완벽할수록 좋다. 자동차 설계할 때 어린애가 잘못 만지더라도 다치지 않게 설계하라는 '풀 프루프(Fool Proof)' 원칙을 따를 필요가 있다.

부동산의 유동성 위험에 빠진 전문가 얘기를 들어보자. IMF 때 생긴 막대한 부실채권이 외국인 손에 넘겨졌다. 외국인은 그 채권을 다시 판매했는데, 그 과정에서 업무를 일부 대행해준 회사들이 있었다. A 회사는 외국인회사에게 부동산에 대한 조사, 관리, 판매를 대행해 주던 회사다.

그 과정에서 회사는 투자자들에게 대단히 높은 수익률을 안겨주었다. 이런 경험치가 쌓이자 투자자들은 회사가 권유하는 대로 투자금액을 보내주었다. 회사도 계속 좋은 성과를 내자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1천억원에 가까운 부동산을 매입했다. 역시 그동안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지분을 인수했다. 이번에는 회사 직원들도 참여했다. 1구좌에 1억원이 넘는 투자다.

그런데 4년이 지난까지 전혀 수익을 못 내고 있다. 대출 받아 투자했던 직원들은 이자 부담이 크다. 당연히 가정 재무계획이 꼬이고 있다. 크게 투자한 사람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이 감당할 만큼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많이 투자한 사람이나 상대적으로 적게 투자한 사람이나 둘 다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위험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그 전에 보여준 놀라운 수익률 때문이었다. 풀 프루프가 다시 생각나는 대목이다.

장기저축은 보험상품이 유리

▲ 각종 보험상품들.
ⓒ 오마이뉴스

자산의 70%를 부동산으로 갖고 있는 50대 고객이 재무상담을 받게 되었다. 경매로 지방에 있는 땅을 여러 곳 매입했다. 당장 수익은 나지 않지만 평가상으로는 값이 크게 올랐다. 가까운 친구들이 지금도 함께 대출받아 땅에 투자하자고 한다.

최근 은행 VIP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주식형펀드에 1억원을 투자했다가 3천만원을 손해봤다. 이것 때문에 '역시 부동산이 최고야'란 확신이 더 굳어졌다. 상담을 받으면서도 건너편 건물을 가리키며, '저 건물에 투자하면 재밌겠는데…' 하며 아쉬워한다.

어떻게 하면 갖고 있는 부동산을 금융자산으로 전환하게 할까 고민하다 이런 설명을 해드렸다. 대출로 2억원짜리 부동산을 매입해서 20년이 지났을 때와 매월 100만원씩 20년 동안 장기보험에 불입한 경우를 비교해 보자. 2억원에 대한 연리 6% 월이자가 100만원이다.

한 보험사의 유니버셜 상품으로 설계해 보니,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받을 금액은 3억8350만원이다. 10년 이상 장기저축이므로 세금은 전혀 내지 않는다. 이와는 별도로, 사망할 경우 사망보험금은 3억9350만원을 받게 된다.

이 경우 20년 동안 부동산 시세차익이(3억8350+3억9350=)7억7700만원이어서는 안 된다. 그 시세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재산세는 물론이거니와 그 부동산을 상속하게 되면 상속세도 고려해야 한다.

노후자금, 세금, 상속 등을 대비하기 위해 현재 갖고 있는 부동산을 점차 금융자산으로 옮기는 계획을 짜보았다. 살고 있는 아파트와 전원주택을 지을 만한 부지만 남기고 나머지 부동산은 5년 내 모두 처분하기로 했다.

월납 1천만원짜리 유니버셜보험 상품을 구입해 5년 이내에 부동산을 처분한 금액 25억원을 추가납입으로 넣는다고 가정해 보았다. 20년이 지난 70대 초반에 55억원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늘어난 이자수익만으로도 상속세를 감당할 수 있게 돼 재산은 온전히 보전된다.

만약 고객이 현재의 부동산을 그대로 두고 상속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상속자산의 과표가 30억원이 넘는 고객의 상속세 부담은 최대 50%다(30억원이 넘는 부분). 또 부인 몫으로 넘겨진 재산도 부인이 사망하고 상속을 개시하면 또 상속세를 부담해야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장기보험상품으로 자산을 전환하는 실익은 대단한 금액이다.

금융자산 가운데 10억원은 믿을 만한 운용사를 찾아 사모펀드나 거치식 펀드에 넣기로 했다. 해마다 1년 생활비 정도 만큼씩만 환매해 생활비통장인 CMA 계좌로 옮기기로 했다. 또 자녀 수술비와 부동산 관리에 필요한 자금을 감안해 3억원은 CMA 계좌에 넣어두기로 했다.

바둑에 대마불사라는 말이 있다. 어지간해서는 큰 말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마가 죽으면 그 결과는 처참하다. 부동산이 대마불사를 생각나게 한다. 바둑이야 대마가 죽어 처참해봤자 1패를 감수하고 다시 두면 된다. 그러나 부동산 대마가 죽으면 그 폐해는 국민 대다수의 불행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이익이 되는 게 눈 앞에 뻔히 있는데, 나라와 민족을 생각해 욕심을 참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원칙을 지키며 사는 게 편하고 이익인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아직 논란은 많지만, 다행히 부동산에 대한 세제가 크게 개선되었다. 갈수록 부동산을 통한 과도한 재산증식과 탈세는 어려워져 갈 것이다.

오르는 집값 부담을 덜고자, 원칙에 어긋난 과도한 대출로 집을 사야겠다는 맘을 먹지 않게 되기를 바랄 밖에. 부동산 불패신화는 이제 말 그대로 '신화'로 얘기되어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메이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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