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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시작을 앞두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2년 공부의 대막을 장식할 수능을 이제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있구나. 그 동안 정말로 수고했다. 건강하게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선생님은 마음 뿌듯하다. 아무튼 이제까지 잘 해 온 것처럼 내일 시험도 너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장이 되었으면 한다.

너를 처음 만난 것이 작년 그러니까 2005년 3월이었으니, 근 2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했구나. 내가 처음 담임을 맡고 너를 보았을 때 약간은 괴짜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런 너의 그런 모습이 왠지 정감 있고 구수하게 느껴지더라.

올해는 선생님이 담임을 맡지 않는 바람에 일주일에 몇 시간의 수업으로 너를 만나 아쉽다는 생각도 했는데, 이제 그것도 추억으로 남겨야 할 것 같구나. 하지만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反)'이라는 말이 있듯이 언젠가는 또 다시 만날 사람들은 만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도 해 본다.

시골 학교에 다니면서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을 것인데, 좌절하지 않고 초지일관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너의 모습에 선생님도 때론 자극을 받았다.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 때문에 도시로 나가지 않고 시골 학교에 와서 열악한 교육환경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너의 모습 정말 의젓하더라.

대학수학능력시험, 그 시간이 벌써 오고야 말았다

선생님이 네가 2학년 때 곧잘 이야기하곤 했었지. "너희들 얼마 있지 않으면 졸업이다.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좀 해라"고 훈계 아닌 훈계를 하곤 했었지. 그럴 때마다 '벌써 그런 말씀을 하시냐'고 의아하게 쳐다보거나 볼멘소리를 하곤 했었지.

그러던 그 시간이 벌써 오고야 말았다. 선생님은 뭔가 아쉬운 느낌 많이 들던 시간이었다. 올해도 담임이 되어 졸업을 꼭 시키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해 여러모로 아쉬운 시간들이었다. 물론 나만의 짝사랑이었는지는 모르겠구나!

우리가 살다보면 여러 번 기회가 온다고 하지. 선생님도 그런 몇의 기회를 부지불식간에 놓쳐 버리지 않았나 후회를 하곤 한다. 특히 고등학교 3년의 시간은 정말로 후회의 시간으로 남아 있다. 괜한 억하심정으로 세상을 미워하고 나만의 세계로만 빠져 들었던 것이 못내 안타까운 시간의 흔적으로 떠 올려 지곤 한다.

비록 선생님이 너의 3년의 고등학교 생활을 곁에서 살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2년이라는 긴 시간을 직·간접적으로 너를 지켜보았다. 가끔씩 선생님이 고등학교 때 경험했던 자신만의 세계 구축에 심하게 빠져 있던 너의 모습을 보며 괜한 걱정과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네가 가는 길에 선생님이 이러쿵저러쿵 간섭이나 충고를 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너만의 세계가 탄탄하고 건실하다는 이야기겠지. 물론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내일 시험을 통해 너는 삶의 길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남기는 셈이고, 그 이정표를 벗 삼아 또 다른 긴 삶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물론 네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느꼈던 그 이정표이기에 결과에 상관없이 너의 삶으로 오롯이 녹여 내었으면 한다.

입시 때면 해마다 날이 추워지구나. 물론 입시라면 큰 산맥이 앞에 놓여 있기 때문에 느끼는 정신적인 중압감도 있겠지만, 그래도 날이 날인지라 갑작스럽게 날이 추워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혹시라도 감기에 걸리면 큰일이니까 끝까지 건강에 유의했으면 한다.

선생님이 교직 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 유독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써 본다. 지난 2년은 내 교직생활 중에서도 정말 힘들고 어려웠던 점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보람도 있었고 행복했다. 네가 그 행복의 중심에 있었고, 또한 수많은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잘 할 것이라 믿는다. 네가 그 동안 쌓아 왔던 내공을 마음껏 내일 시험장에서 발휘했으면 좋겠다. 1년 동안 직접적으로 네 곁에서 응원은 못했지만, 항상 멀리서나마 열심히 하라고 나름대로 응원을 했는데, 아는지 모르겠다.

지난 17년간 쌓아온 너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라

▲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 교문에 수험생의 이름표가 붙어있는 부적이 붙어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제 결전의 시간이 드디어 네 앞에 펼쳐졌다. 고난과 시련이 너 앞에 펼쳐질수록 더 강해지는 너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지난 17년간의 쌓아온 너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라고 기원할게.

아무튼 지난 2년간 선생님의 수업 잘 들어줘서 고맙다. 때론 졸음에 못 이겨 하던 너에게 기분 상하는 말도 했고, 시험 못 쳤다고 꾸짖기도 했고…. 그저 선생님은 너에게 못한 부분만 이 시점에서 자꾸 생각난다. 너에게 때론 선생님이 못할 말과 행동을 하지는 않았나 되돌아보게 된다. 이 시점에서 용서 아닌 용서는 비는 것도 우습지만 선생님이 알게 모르게 혹시나 상처를 주었다면 용서해 주기 바란다.

이런 저런 말로 이야기가 길어졌다. 아무쪼록 내일 시험 잘 봤으면 한다. 그리고 네가 꿈꾸던 삶의 모습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면 한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

건강하게 내일 시험 잘 보아라. 최선을 다했다면 분명 좋은 결과 있을 것이다. 선생님도 굳게 믿는다. 이런 선생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너에게 전달되었으면 좋으련만. 아무튼 밝은 얼굴로 시험 뒷날 멋지게 공 한판 차보자. 수능 하루 앞 둔 시점에서 선생님이 마음을 담아 띄운다.

덧붙이는 글 | 16일 시험을 보는 모든 수험생과 그리고 불철주야 돌보아 주신 학부모님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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