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50년에 만들어진 <프라이드: 운명의 순간>의 불쾌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관객들도 적지 않으리라. 이에 비해 전후 60년 기념영화 <사나이들의 야마토>에 대해서는 공개되기 전부터, 진보적인 매체로 알려진 아사히 방송국이나 TBS 방송국 등이 홍보하고 있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헨미 준 씨의 원작도 하사관이나 사병들의 관점에서 면밀히 조사한 다큐멘터리로서 호감을 갖고 읽은 기억이 있다. 일말의 기대감을 간직한채 영화관을 찾았다.

줄거리

▲ <사나이들의 야마토>
ⓒ www.yamato-movie.jp
1944년 봄. 땅에는 눈부시게 화사한 벚꽃이 자지러지게 피어 있다. 전함 야마토의 승선자들은 최후의 출격을 각오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남겨둔 채 떠나간다. 입원중이던 하사관 우찌다는 병원을 탈출하여 스스로 사지를 택한다. 그의 이러한 자발적인 참전과 동료애 넘치는 헌신, 처절한 전투장면은 실로 감동적이다.

어린 병사들은 결전의 날을 앞두고 무사도의 죽는 방법을 전수받는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단지 목숨을 바치는 것이 무사도라고 가르친다. 만개한 사꾸라가 미련없이 일제히 낙화하듯 3천여명의 사나이들은 육지의 야마토(일본열도)에 두고온 가족과 연인을 지키기 위해 바다의 야마토와 함께 침몰한다.

60년이 지난 야마토의 제사날. 우찌다의 딸이 찾아와 생존자의 카미오에게 침몰의 현장까지 가줄 것을 부탁한다. 벚꽃이 만발한 육지를 뒤로 하며, 조수의 소년을 포함한 세 사람은 추억의 바다를 항해한다. 도착후 우찌다의 딸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뼛가루를 바다에 뿌려 야마토 전우들의 곁으로 보낸다. 이를 지켜보던 카미오는 "나의 소화시대는 이제야 끝났다"고 회한을 토해낸다.

감동의 명장면

잔잔해진 바다. 아스카마루 (내일이란 뜻의 선박) 의 키를 바꿔잡은 소년은 미래를 향한 항해를 시작한다. 동시에 나가부찌 쯔요시의 허스키한 음성이 < Close Your Eyes >를 열창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래도 이 나라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으니까
다시 태어나더라도 나의 이름을 불러주오…
나의 품으로 돌아와 주오
고귀한 당신의 용기를 안아주고 싶구려…
close your eyes 눈을 감으면
희망을 향해 솟아오르는 당신이 영원히 살아 쉼쉬네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한 전후 60년의 야심작답게 탄탄한 구성이다. 도처에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의 장면이 감춰져 있다. 야마토의 침몰현장에서 살아 돌아온 카미오는 절친했던 전우 니시의 시골집을 찾아가 어머니에게 전사의 소식을 전한다. 아들을 빼앗긴 어머니의 통곡과 살아남은 카미오의 죄의식. 이들은 통한의 울음을 터트리나,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가슴속에 진한 아픔을 묻어둔다. 운명론적이며 현실주의적인 일본문화의 사생관을 잘 압축하고 있다. 어두운 영화관의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원작과의 괴리

그런데 이러한 진한 감동의 이면에는 원작에 보이는 문제의식들이 탈색되어 있다. 헨미 준의 원작은 야마토 제작과정에 대한 심층적인 문제제기에서 출발한다. 야마토는 히로시마현 꾸레시의 대형 독에서 비밀리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미즈노 진지로 꾸레 시장 겸 귀족원 의원은 정재계의 거물로서, 그 자신 해양토목업을 전문으로 하면서도, 당시의 해군정책을 비판하였다.

야마토 건조와 같은 거함거포주의는 시대에 맞지 않는 전략적 오류로 항공기 중심 전략으로 수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군당국은 그를 곱게 보지 않았고 결국 부정축재사건을 조작하여 사임하게 만들고 만다. 이렇게 원작은 군당국의 전략적 무능과, 일상화된 정보정치, 공포정치에 대한 통열한 비판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우찌다의 열정적인 행위에 대한 미화도 원본과는 다르다. 그는 야마모토 이소로꾸 연합함대 사령관의 당번병격으로 단검을 하사받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우찌다는 그 단검을 전함 안에 두고 병원에 실려와, 단검을 찾기 위해 군법을 어겨가며, 출격을 앞둔 야마토에 잠입했던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 단검을 동료가 병원으로 미리 전해 준 것으로 그려져, 우찌다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자진해서 야마토로 돌아와 전우들과 함께 장열히 싸우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자발적인 죽음이라는 상징성을 조작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야마토 함장의 비인간적인 죽음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야마토가 침몰한 뒤, 살아남은 200여명의 병사들이 바다 위에 표류하고 있을 때, 아리가 유우사꾸 함장이 수면위로 떠 오른 것을 병사들이 보았다. 그의 얼굴을 알아본 한 병사가 예를 표하자 함장은 다시 바다속으로 들어가 떠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 함장의 얼굴을 모른 척했더라면 함장도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후회하는 생존병사의 인터뷰를 원작자는 소개하고 있다. 아리가 함장은 전투개시 전에 함대원들에게 무모한 죽음을 택하지 말고 살아남으라고 지시를 내린 바 있다. 이런 생명에 대한 존엄과 애착은 영화제작진에게는 아름다운 죽음을 연출하기 위해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었다. 우리들의 바램은 그것 뿐이었다" 메스컴을 통하여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영화의 선전문구이다. 전우들의 용기를 예찬하며 "다시 태어나더라도 나를 또 불러다오"라고 열창하는 나가부치의 인생과도 겹친다. <톰보 (고추잠자리)> 등의 명곡으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그는, 마약에 손을 대 한동안 가요계에서 멀어져 있었다. 이 주제곡으로 그는 전후 60년을 맞아 완벽히 부활한 것이다. 제국주의의 망령들과 함께. 요컨대 영화 <사나이들의 야마토>는 원작의 모든 문제의식을 송두리째 삼켜버린 추악한 몬스터 박스이다.

<아름다운 나라로> 향한 항해

전후 50년 기념영화 <프라이드>가 동경재판사관을 부정하여 아시아 해방전쟁사관을 강조하였다면, 반대로 전후 60년 기념영화 <사나이들의 야마토>는 동경재판사관 자체의 비뚤어진 역사인식의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부의 지도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물어 천황과 일반국민을 무죄로 선고한 역사인식이 낳은 영화이다. 아시아침략의 책임은 거론하지 않더라도, 일본 자체의 역사적인 문제가 남아있지 않은가?

야마토는 배머리에 유일하게 국화문장을 장식한 전함으로 천황제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이었다. 패전이 확실시된 상황아래서 말 그대로 개죽음을 당한 야마토의 병사들. 무차별 도시공습과 히로시마 나가사끼의 원폭에 희생된 무수의 시민들. 왜 그들은 죽어야 했는가? 국체의 보전, 즉 천황제를 보전하기 위해서 지도부가 결단을 미룬 탓에 수백만의 시민 병사들이 소모품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전수상 코노에 후미마로의 상소문 (1944년2월) 에 명확히 보이듯, 천황제의 보전을 지상과제로 삼는 지도자들이 두려워 한 것은 패전이 아니라 민중들의 반란과 혁명이었다.

모든 역사성과 정치성, 전쟁책임을 풍화한채, 향토애만을 그려내고 있는 영화. 아스카마루의 키를 잡고 <아름다운 나라로> 항해하는 소년의 얼굴이, 자연스레 아베 총리와 교차된다. 소년의 앞날을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관련 사이트 

헨미 준, <사나이들의 야마토> (상/하), 카도카와 서점, 동경, 1984. 
영화 <사나이들의 야마토> 공식 홈페이지  http://www.yamato-movie.jp/ Close Your Eyes 가사  http://www.evesta.jp/lyric/lyrics/lyric19461.html

2006-10-17 16:07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관련 사이트 

헨미 준, <사나이들의 야마토> (상/하), 카도카와 서점, 동경, 1984. 
영화 <사나이들의 야마토> 공식 홈페이지  http://www.yamato-movie.jp/ Close Your Eyes 가사  http://www.evesta.jp/lyric/lyrics/lyric194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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