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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글로벌 인재 육성"을 주장하는 경기도교육청의 누리집(홈페이지) 화면.
ⓒ 임정훈
최근 각 대학이 논술 강화를 골자로 하는 입시안을 다투어 내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교육청(교육감 김진춘, 이하 도교육청)이 지난 14일 도내 모든 중고생(고교 3학년 제외)을 대상으로 시행한 '제1회 경기도 논술 능력 평가(이하 논술 평가)'를 두고 일선 학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도교육청이 '2006학년도 경기도 독서·논술 교육 활성화 기본 계획'의 일환으로 올해 처음 시행한 이번 논술 평가에 대해 교사와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3월말 도교육청은 논술 평가를 알리는 공문을 도내 각 중·고등학교에 보낸 바 있다.

이에 따르면 "대학 입학시험 논술고사 기준과 대학 기출 문제를 고려하여 타당도 높은 적합한 문제를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구분하여 출제하며, 문제는 도교육청에서 개발하여 정해진 날 일시에 실시"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지난 14일 논술 평가를 치른 학생들과 교사들의 반응은 도교육청의 기대와는 달랐다. 무엇보다 과정없이 결과만 요구하는 도교육청의 탁상 행정에 대한 불만과 비난이 봇물처럼 터졌다.

"교육청 탁상 행정에 교사·학생 언제까지 들러리 서야 하느냐!"

도교육청의 논술 평가 시행에 대해 수원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다음과 같은 말로 분통을 터뜨렸다.

"논술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우려는 도교육청의 노력은 인정한다. 그러나 논술 교육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이나 교육은 미약한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시로 '논술 교육 추진 현황을 보고하라'는 공문을 보내고, 일회성 논술 시험으로 생색을 내려는 도교육청의 행태에 교사와 학생들은 언제까지 들러리를 서야 하느냐."

실제 지난 4월부터 도교육청이 실시하고 있는 또다른 논술 지도 프로그램인 '저소득층 자녀와 지도 교사를 연계한 논술 첨삭 지도'(관련기사 참조) 역시, 도교육청은 지난 취재 당시 "추경 예산을 편성해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현재까지 아무런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실업계 고교 교사인 ㅇ씨는 이번 논술 평가가 실업계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ㅇ씨는 다음과 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학교 특성상 사실 실업계 학교에서 정상적인(?) 논술 교육 과정이 이루어지는 학교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이번 도교육청의 논술 평가는 기본적으로 모든 학교에서 논술 교육이 정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더욱이 논술은 모든 학생이 배우는 정규 교과목도 아니지 않은가? 학교 현실을 배려하지 않는 이런 정책이 바로 탁상 행정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제1회 경기도 논술 능력 평가' 공문에 첨부된 시행 내용 안내.
ⓒ 임정훈
학생들의 불만과 원성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학교에서 보라고 하는 시험이어서 보긴 했지만 학생들은 '왜 이런 시험을 치러야 하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내신에 포함되지 않는 시험이라서 성의를 다 하지 않았다"는 학생들도 여러 명 있었다.

고등학생들은 "정규 수업시간까지 없애가며 이렇게 한 번 시험보고 상주는 것으로 끝나는 논술 시험이 얼마나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을 요구했다. 또 중학생들은 "논술 시험이 낯설었음은 물론 문제의 논지를 파악하기 어려웠고 제시된 문제의 뜻을 몰라 선생님께 여쭈어보는 아이들이 많았다"며 논술 평가의 난이도 조절이 적절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의 논리적 표현력과 창의적 사고력 배양을 통한 종합적인 문제 해결 능력 신장 및 논술 영역의 교수-학습 및 평가방법 개선"을 내세운 도교육청의 논술 평가 시행 취지가 무색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 담당 장학사는 "처음 시행하는 것이라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으며, 앞으로 부족한 부분은 의견을 수렴하여 보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교생 대상으로 한 시험에 '지도 교사 표창'이라니...

▲ 지난 9월 14일 치러진 제1회 경기도 논술능력평가 고등학교 -수리.과학 유형 문제지.
ⓒ 임정훈
한편, 또다른 논란거리로 등장한 것이 '지도 교사 표창'에 관한 것이다. 도교육청의 논술 평가 공문에 따르면 "(학교대회에서 입상한 후) 도대회에서 금상 이상 입상한 학생을 지도한 교사"에게 우수 지도 교사 표창(훈격 : 교육감)을 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교사들은 "따로 지도를 받은 소수의 학생들이 아니라 전교생을 대상으로 일괄 실시한 논술 평가에서 지도 교사를 가려 상을 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도 해당 학생의 담임교사가 지도 교사가 될 것인지, 국어과 교사나 다른 교과의 교사가 지도교사가 될 것인가를 두고 설왕설래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결국 도교육청이 교사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려다보니 무리한 수상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도교육청 담당 장학사는 "지도 교사가 없으면 없다고 하면 될 일"이라며 교사들의 논란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일정 기준 이상이 되면 지도 교사를 추천하도록 공문을 내려 보내놓고, 논란이 생기자 '없으면 없다고 하라'는 도교육청의 주장은 설득력과 공신력이 부족해 보인다.

채점 과정의 공정성과 객관성 역시 논란과 의혹의 불씨로 남아있다. 논술 평가의 출제위원과 심사위원이 동일한 구성원들인데다가, 도교육청은 이들의 신분을 '현직 교원'이라는 것 말고는 일체 공개하기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도교육청 담당 장학사는 이와 관련하여 "26일 현재 (출제위원과 심사위원의 공개는) 공식적으로 논의한 바 없다"고 밝혔다.

"'통합 교과형'으로 논제 파악 능력과 창의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데 비중을 두었다는 홍보에 열올리기보다는 학교 현장의 소리를 귀기울여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 달라"는 현장 교사와 학생들의 목소리를 도교육청이 어떻게 반영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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