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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와 악어새 그리고 개와 벼룩

정부와 언론과의 관계는 '천적관계'가 되어야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며 상호발전을 지향한다. 본래 언론의 사명은 정부의 감시, 견제, 그리고 비판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와 언론이 '악어와 악어새'처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공생관계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고, '개와 벼룩'처럼 한쪽이 다른 한쪽을 괴롭히는 기생관계를 형성하여 결국에는 공멸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행정부와 미국 언론은 천적관계나 공생관계를 넘어 종종 '개와 벼룩'처럼 기생관계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 행정부가 특정언론에 '먹이성' 정보를 제공하면 이 언론은 이를 확대하여 특종인 것처럼 '상품화'한다. 이 경우 정부와 언론의 관계는 공생관계가 아니라 사실상 기생관계가 된다. 기생관계는 거짓정보로 인하여 정부와 언론의 공멸을 가져오게 하고, 이것이 군사적인 경우는 국가 및 인류사회의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기도 한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대표적인 것이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이라고 할 수 있다.

사례 2제 : 정부와 언론의 부적절한 관계

미국의 대표적인 방송사인 ABC방송은 지난 8월 17일 익명의 미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하여 북한의 핵실험장으로 의심되는 곳에서 "북한이 지하핵무기 실험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긴급뉴스로 보도하여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북한은 지하시설이 있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역 외곽에서 핵무기실험 때 지하 실험장과 외부 관측장비를 잇는데 사용될 수 있는 케이블을 감은 대형 얼레들을 내려놓고 있다는 것이 핵실험 가능성을 전망하는 유일한 근거였다. ABC방송은 미 고위 관리들이 밝힌 이러한 "정보"에 대해 결론적인 것은 아니라고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자못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러나 곧 이어 쏟아져 나온 미국 행정부쪽의 반응은 결코 "신중"한 것이 아니었다. 부시 대통령은 그 다음날 기다렸다는 듯이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에 대한 ABC방송의 보도를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채 "북한이 실험을 한다면, 북한이 위협을 제기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을 시사하는 분명한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분위기는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기정사실화하고 불량국가인 북한은 핵실험을 할 것이고,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하여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협박하고 있는 듯했다. 영국의 로이터통신은 ABC방송의 이러한 보도에 대해 "그런 증거가 없다"고 반박 보도했다.

미국 행정부와 미국 언론의 이러한 부적절한 관계인 기생관계는 이 하나의 사례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의 사례를 더 들어보도록 하겠다.

▲ 1986년 11월 17일 조선일보 호외판 1면 기사. 아직도 국민은 이 ‘김일성 피살설’의 황당무계한 오보사건을 잊지 않고 있다.
ⓒ 장영권
"탈레반 다음은 누구? 북한을 잊지 마라."

2001년 11월 25일 뉴욕타임스의 이같은 제목의 기사는 우리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선정적인 보도로 섬뜩한 충격을 주었다. 뉴욕타임스는 이 기사에서 북한의 대량살상 무기생산의 위험성을 거론하고 북한이 이라크와 함께 미국의 다음번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998년 미 정보기관에서 흘린 정보를 받아 금창리 핵의혹 시설을 보도함으로써 북한의 핵 위협론을 조장, 한반도를 전쟁위기로까지 몰고 간 '전과'가 있다. 후에 확인한 결과 금창리는 핵 시설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북한의 핵 위협설이나 핵 실험설이 거의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론은 "특이사항 없음"이었다. 미국 언론을 통해 발표된 부시 행정부의 잇단 대북강경 발언들은 부시 행정부가 조직적으로 북한에 대해 모종의 압박카드나 강경책을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결국 고비 때마다 미국 행정부의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터져 나오는 미국 언론들의 북한 관련보도는 상황악화로 몰고 가는 촉매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더구나 미국, 일본 등의 외신들에 매우 취약한 한국언론들은 이를 확대 재생산하여 남북관계 악화 및 남남갈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핵실험설 보도로 대북지원단체들의 열성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수해지원은 시민들의 외면을 받았다. 우리는 러시아 크리브초프 외무부 부대변인이 "북핵실험 소식은 서구언론에서 정기적으로 나오는 것"이라면서 "이는 모두 간접적인 징후와 억측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언급한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동맹의 덫, 평화의 적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동맹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첫째는 "적"의 존재에 대한 규정이고, 둘째로 이렇게 규정한 적을 어떻게 "공동대처"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안보는 "위협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며, 존재론적 위협을 야기하는 것이 바로 '적'이다. 전통적 입장에서 안보는 국가안보, 특히 정권안보를 의미했고, 이것은 적국, 또는 적대세력의 존재를 전제로 설정됐다.

그러나 현대 안보학에서는 위협의 존재를 '정치적 언어행위(speech act, discourse)'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위협은 국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에게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협은 다른 나라에 의한 정치·군사적 위협뿐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환경 등 모든 영역에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정치지도자가 특정한 무엇을 지칭하여 우리의 위협이라고 "언어행위"로 선언하게 되면 이때부터 그것은 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정치지도자에 의한 적의 존재에 대한 언어행위는 곧바로 언론, 미디어를 통해서 확대, 강화되어 보다 구체적인 적과 위협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에 따라 안보와 안보화의 개념과 의미는 정치인의 언어행위에 의해서 크게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안보는 상대적이며,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상호 주관적인 것이 된다. 더구나 국가마다, 개인마다 위협을 정의하는 상이한 준거를 가지고 있고, 이러한 준거도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다.

안보에 있어서 중요한 단위 요소는 안보 대상과 안보화 행위자이다. 전통적으로 안보대상은 국가이지만 최근에는 인간안보가 강조되고 있다. 안보화 행위자는 안보 언어행위를 수행하는 개인 또는 집단이다. 대개 정치지도자, 관료, 정당 등이지만 이들의 안보관련 발언을 보도하는 언론, 미디어의 역할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자국의 국가안보를 내세워 끊임없이 이라크, 이란, 북한 등 적의 존재를 언어행위로써 강조해 왔다. 이것은 역대 대통령들도 큰 차이가 없다. 부시 대통령은 특히 북한에 대하여 끊임없이 "미국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언론, 미디어를 통해 강화해 왔다. 이에 따라 미국 국민들은 자신의 위협인식과 관계없이 북한을 적으로 여기는 성향이 증대되었다. 그러나 유럽 등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지구촌의 최대 위협국가가 어느 나라냐고 묻는다면 상당수가 "미국과 부시"라고 지목한다. 실제로 최근에 한 여론조사에서 그 같은 결과가 나왔다.

적은 외부의 특정한 무엇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지난 9월 11일은 아시다시피 9·11테러 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미국이 5년 동안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아프가니스탄·이라크 등을 침략하였다. 미국의 일부 언론은 이들 중동국가 다음으로 북한을 공격할 것이라는 보도를 했다. 우리 한국인들은 매우 불안해했으며 한반도의 최대 위협세력이 미국과 부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왜 이 같은 현상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군이 3000여명 희생됐으며, 전 세계에서 최대 18만명이 사망했다는 통계도 나오고 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이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한 직후 선언한 선제공격과 일방주의로 대표되는 '부시 독트린'이 지구촌의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남아공의 소설가 쿳시의 2003년 노벨상 수상작인 <야만인을 기다리며(Waiting for the Barbarians)>에서도 야만인들, 즉 제국주의자들이 언어행위로 설정한 적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야만인은 부녀자들을 강간하고, 아이들을 죽이며 집에 불을 지르는 만행을 일삼는다. 야만인이 살고 있는 "적"은 제국주의가 존재하기 위한 유일한 희생양이다.

바로 미국과 영국이 화학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찾겠다고 이라크를 상대로 벌인 전쟁은 바로 제국주의가 만든 야만인, 즉 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라크에는 "야만인"이 없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서양의 언론들, 그리고 모든 언론들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구"였다. 사실상의 적은 이라크나 북한 등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자신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언론은 특정이익 추구보다는 인류의 보편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언론의 생명력은 특정 국가의 이익이나 특정 정권의 이익보다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자유, 평화 등을 추구하는 데 있다. 물론 현대 언론이 자본의 예속성으로 상업주의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이것은 오히려 언론의 생명을 단축시킬 뿐이다. 언론은 진실과 사실, 가치를 구분하여 사실의 토대 위해서 진실을 담아 미래평화의 가치로 나아가야 한다. 언론이 바로 서야 세상의 희망이 열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2006년 9월 1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한미관계 전문가를 초청해 '한미 언론정보교류 시스템의 현황과 개선방향'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한 토론문을 다소 수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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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지금 자연환경의 악화, 과학기술의 진화, 인간의식의 퇴화, 국가안보의 약화 등 4대 미래변화 패러다임의 도전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의 생존과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또한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해결과 상생공영을 위한 ‘세계국가연합’ 창설을 주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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