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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가 발표한 요일제 전자태그 예시.

구청에서 고약한 우편물이 하나 날아왔다. '승용차 요일제 전자태그 부착 관련 협조 안내'라고 제목 붙여진 문서인데, 앞으로 요일제 전자태그를 부착하지 않은 차량은 거주자 우선주차제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거주자 우선주차권을 배정받고 싶으면 먼저 승용차에 요일제 전자태그를 부착하라는 이야기이다.

승용차 요일제는 원래 법적 강제 사항이 아니라 시민들의 선택 사항이다. 그리고 스티커를 붙이건 전자태그를 붙이건 그 역시 시민들이 알아서 선택할 문제이다. 그동안 서울시는 전자태그 부착 차량에 대해서는 자동차세 감면, 교통유발부담금 감면, 공영주차장 주차료 할인 등 몇 가지 부가 혜택을 제공해 왔다. 물론 전자태그 부착을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시민의 선택권이 보장될 수 있었다. 약간의 금전적 혜택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자신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택할 것이냐를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고 결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자태그 부착 차량에게만 거주자 우선주차권을 주겠다는 이번 정책은 시민의 선택권을 박탈한 사실상의 강제 시행이다. 마땅한 별도의 주차 공간이 없는 가구 입장에서는 승용차를 짊어지고 살 수야 없는 노릇이니 울며 겨자 먹기로 전자태그를 부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제 시민들은 구청에 거주자 우선 주차료도 내고 동시에 프라이버시 정보도 제공하는 이중의 비용 지불을 감수해야 한다.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인지 참으로 기발한 방법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치사한 방법이기도 하다.

구청이 이렇게 치사스러운 무리수를 두는 것은 서울시로부터 받는 교부금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시가 25개 자치구에 내려 보내는 교부금 중 10억 원을 승용차 요일제 참여에 따라 차등 배분하기로 했는데, 1등 구(區)는 2억 원, 4개 구는 각 1억, 10개 구는 4000만원씩 교부금을 지급하기로 방침을 세워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승용차 요일제 실적이 나쁜 나머지 10개 구는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된다. 결국 구청이 전자태그를 강요하는 배후에는 서울시가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서울시는 지금까지 모든 승용차 요일제 차량을 대상으로 했던 남산터널 혼잡통행료 50% 감면 해택을 내년 1월부터는 전자태그 부착 차량에게만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가뜩이나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을 빚고 있던 요일제 전자태그를 확산시키려고 마침내 서울시가 본격적으로 두 팔 걷고 나서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러니 이래저래 기존 요일제 스티커 부착 차량은 규제만 감수하고 혜택은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게 되었다.

서울시는 교부금을 미끼로 구청을 압박하고, 구청은 거주자 우선주차권을 미끼로 시민들을 압박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승용차 요일제는 사실상 '자율'이 아닌 '타율'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이제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린 요일제 스티커를 계속 차량에 부착하고 다닐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결국 시민들에게 남은 선택은 프라이버시 침해를 감수하고 전자태그를 부착할 것인가, 아니면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여러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승용차 요일제로부터 이탈할 것인가 뿐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이러한 선택을 강요하기에 앞서 최소한 먼저 알려줘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전자태그를 통해 판독되는 정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며, 그 기록들은 어떻게 관리되고 처리되는가 하는 것들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전자태그를 부착한 운전자들에게 몇 푼의 금전적 혜택보다 더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사항들의 투명한 공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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