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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과 종교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때 우파니샤드는 앞의 베다와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우파니샤드는 실재(實在)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인간 정신의 끊임없는 노력이자 사색의 산물로 인도 주요사상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파니샤드는 공부의 대상과 관점을 자연이라는 외부 세계에서 인간 내면의 정신과 영혼으로 바꾸었습니다. 즉, 나의 바깥에 있는 존재로 신을 간주하는 것은 무지하며 불멸의 내적 자아(自我)와 장엄한 우주는 하나이며 동일하다는 사상으로 전환한 것이죠.

우파니샤드는 제사의 형식과 절차를 중시하던 베다를 대신할 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하였습니다. 즉, 모든 사람들이 복잡한 절차에 따라 정확하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란 불가능하며, 그래서 거래에 의한 손익의 문제로 전락해버린 신과 인간의 관계를 대신할 새로운 가치를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또 형식과 절차에 따른 제사의식은 당연히 인간에게 해탈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베다를 대신하여 우파니샤드가 등장한 것입니다.

우파니샤드는 형식과 절차를 추구하던 제사의식에서 벗어나 영적 가치의 추구로 전환하여 우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과 직관에 의해서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베다에서 시작된 지식을 인정합니다만 참되고, 신성한 통찰에 의한 지식에 비하면 베다의 지식은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해방해주진 못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우파니샤드란 말은 다른 사람의 곁에 앉아서 가르침을 듣는다는 뜻입니다. 우파니샤드의 스승은 아주 은밀하게 자신의 곁에 있는 몇 명의 제자들에게만 지혜를 전수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스승의 지혜는 아주 귀하고 뛰어난 것이라 다른 사람들이 몰래 훔쳐 듣지 못하게 하여 오직 자신의 제자에게만 전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까닭에 우파니샤드는 비밀스런 가르침이나 지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일신론(一神論)

초기 우파니샤드를 보면 베다처럼 신(神)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의 속성은 어떤 것이며, 또 신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결과, 신들은 선(善)이나 지혜(知慧) 같은 좋은 내용들을 함께 가지고 있는 존재로써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능한 힘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전능한 힘을 가진 신을 비스바카르만(Visvakarman)이라는 부르는데, 그는 전능한 힘으로 모든 것을 포함한 우주를 창조한 창조주였습니다.

그 뒤를 이어 모든 피조물들의 주(主)라고 불리는 아버지 신인 프라자파티(Prajapati)가 나타났습니다. 신에 대한 개념은 이런 식으로 점차 발전하여 마지막에는 일신론으로 귀결됩니다. 물론 베다 시대에도 일신론적인 생각이야 충분히 있었지만 우리들 앞에 나타난 다양한 신들은 단지 하나의 초월적 존재자인 브라만(Brahman)의 다른 모습이며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 청곡사 범천상. 브라만 또한 제석천처럼 불교의 범천왕으로 수용되어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 김성후
브라만(brahman)

브라만(Brahman)은 우파니샤드의 모든 신을 통합하는 마지막 존재자로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들까지 움직이게 하는 초월적이고 절대적이며 유일한 통일성을 갖춘 존재로 묘사됩니다. 브라만은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생겨나서 살아가고 죽어서 되돌아가 가는 곳이자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에 적용되는 법칙이지만 그는 이 법칙에서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 하나하나 안에 브라만이 존재하며 브라만 안에 모든 사물들이 들어있습니다. 즉, 자기 스스로 자신과 세계를 창조하고, 또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된 모든 자연물 안에 브라만이 들어있으며 또한 창조된 모든 자연물을 넘어서는 브라만의 초월성이 있다고 합니다. 브라만은 자신의 일부분이 온 우주에 두루 존재하고 있으며, 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존재이지만 또한 세계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존재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과법칙이라는 제한적인 범주와 이분법적인 생각을 통해 사물을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브라만은 우리의 판단기준으로 볼 때, 서로 모순적이며 이율배반적인 가치가 함께 존재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제한적인 범주와 이분법적인 사고로는 브라만의 본 모습을 절대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브라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일상적인 우리의 판단기준을 바꾸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아트만(Atman)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파니샤드의 특징은 자연이라는 외부 세계로부터 인간 내면의 정신과 영혼에 대한 성찰로 주요 관심이 이동한 것입니다. 우주의 절대적 통일성에 대한 탐구도 있었지만 인간의 자아(自我)에 대한 질문도 하였던 것입니다.

우파니샤드가 발견한 자아는 아트만(Atman)이라는 마음의 근본이 되는 존재였습니다. 아트만의 본래 뜻은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는 호흡이었는데, 차츰 그 뜻이 변하여 자아 또는 영혼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아트만에 대한 개념은 계속 발전하여 4가지 상태에 대한 이론이 등장하게 됩니다.

첫 번째 아트만은 우리가 깨어있는 상태의 자아로 우리의 몸을 지칭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꿈을 꾸는 상태로서의 아트만인데 몸이나 눈, 코, 입 등의 각종 감각기관은 쉬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활동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아트만은 두 번째보다 더 깊은 상태로 꿈도 없는 깊은 잠에 빠져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감각기관이나 마음의 활동도 없고 그 대상도 사라진 행복하고 평화스러운 상태라고 합니다. 이 상태는 한 마리의 새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마침내 자기의 보금자리로 돌아와서 쉬고 있는 상태라고 비유합니다.

마지막 아트만의 상태는 희열(ananda)입니다. 깊은 수면의 단계처럼 주관과 객관의 사라짐은 물론 자아가 아무런 방해도 없이 스스로 순수하고 밝게 존재하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는 일상의 경험으로는 알 수 없고 요가와 같은 정신적 훈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신비로운 체험의 세계입니다.

범아일여(梵我一如)

아트만은 어떤 차별성이나 개별성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며 또한 브라만으로서 모든 존재의 본질을 이루는 것입니다. 소금이 물에 녹으면 어느 부분의 물을 마셔도 소금 맛이 남아 있듯이 아트만은 모든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세계는 브라만이라는 궁극적 실재가 만들어 낸 것이며, 브라만은 세계의 모든 존재에 들어가 있다고 했습니다. 브라만은 우주의 아트만이요, 아트만은 사람 속에 존재하는 브라만인 것입니다.

바로 이 브라만과 아트만이 동일하다는 생각인 범아일여(梵我一如)야 말로 우파니샤드 최고의 지혜입니다. "네가 그것이다(tad tvam asi)", 또는 "내가 브라만이다(aham brahma asmi)"라는 우파니샤드의 구절이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자기가 곧 브라만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면 모든 욕망과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자기 자신 이외에 다른 것을 원하거나 두려워할 아무런 대상이 없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런 사람은 모든 업보에서 자유로워지며 죽은 뒤에는 다시 태어나지 않고 브라만으로서 영원한 삶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범아일여(梵我一如)라는 진리를 깨닫는 사람은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인과율에 의해 태어나고 죽는 삶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우파니샤드의 해탈의 개념과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의 개념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깨달음의 대상과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깨달음 이후 윤회를 벗어난다는 그 기본적인 구조는 닮았다는 것을 감히 부인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불교는 우파니샤드와 달리 영원히 존재하는 실재로서 자아를 인정하지 않는 제법무아(諸法無我) 사상을 주장합니다. 불교가 과거의 베다 또는 우파니샤드의 사상과 개념을 이어받아 윤회, 자아, 해탈 등을 이야기하지만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독창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불교는 과거부터 내려오는 사상과 문화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면서 만들어진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완전히 독창적인 형태의 종교가 아닙니다. 그래서 불교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인도의 모습을 어느 정도 이해할 때 절을 답사하기가 더 쉬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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