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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현정 아나운서가 결혼을 한단다. 재벌 현대가의 아들 정대선씨가 그의 신랑이다. '된장녀' 논란이 한창일 때 알려진 노현정의 결혼 소식은 네티즌들의 좋은 먹이감이 되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노현정을 향해 "된장녀의 국가대표"라고 씹어대고, "정대선이 좋은 게 아니라 돈이 좋은 거겠지"라며 비아냥거린다. 또 노현정의 옛 사진을 까발리며 "정대선은 이래도 노현정이 좋으냐?"며 눈을 흘긴다. 심지어 "딱 10개월 후면 이혼 소식이 들려올 것"이라는 악담까지 퍼붓고 있다.

"공부하세요" 한 마디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노현정. 그녀는 지금 재벌과 결혼한다는 이유만으로 먹지 말아야 욕과 듣지 말아야 할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아프고 달콤하다

이런 걸 한번 상상해보자. 노현정이 연봉 2000만원을 받는 회사원과 결혼한다는 뉴스를 말이다.

게다가 뉴스에 등장하는 '연봉 2000만원짜리 회사원'은 얼짱도 아닌 주제에 몸짱도 못된다. 한술 더 떠 집안도 별 볼 일 없다. 여기에 두 사람이 10년 째 사랑을 키워왔다는 양념이 뿌려진다면? 아마도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이런 글들이 차고 넘칠 것이다.

"노현정은 우리의 천사. 누나 사랑해요~~"
"역시 얼굴이 예쁜 여자는 마음씨도 예쁘다니까!"
"나는 노현정의 예쁜 두 눈을 보는 순간, 이런 아름다운 결혼을 예상했다니까!"
"두 분의 사랑, 참 아름답습니다."


노현정이 '연봉 2000만원 짜리 회사원'과 결혼한다고 천사가 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노현정이 재벌과 결혼한다고 '덜떨어진 X'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아프고, 달콤하다.

10년 열애도 사랑이고, '원 나잇 스탠드'도 사랑일 수 있다. 재벌의 사랑도 아름다울 수 있고, 서울역 늙은 노숙자의 사랑도 봄날 꽃향기처럼 화사할 수 있다. 사랑에는 국경만 없는 게 아니다. 사랑은 계급과 계층의 그물망을 자유롭게 통과하는 감정이기 때문에 예쁜 것이다.

타인과 함께 다시 삶의 출발선에 서야 하는 결혼의 설렘과 두려움은 차별없이 사람들의 가슴을 압박한다.

노현정이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와 결혼을 하든,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의 결혼식에 박수를 보내는 건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남자보다 돈이 좋아서 하는 결혼"이라는 돼먹지 못한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왜 '**남'은 없나

어떤 여자든 재벌 남자와 결혼을 하면 "돈만 밝히는 X"이라고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그러나 남자가 돈 많은 여자와 결혼하면 "훌륭하네"라는 말과 더불어 영웅 대접을 받는다.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마찬가지로 이 땅의 여성들은 주기적으로 '개똥녀' '된장녀'가 되어 마녀사냥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땅의 남성들은 웬만한 잘못을 하지 않고서는 '**남' '**놈'이라 불리지도 않는다.

삼겹살에 마늘 얹고 소주까지 곁들여 마신 남성이 지하철 안에서 냄새 팍팍 풍기며 떠들어도 별 문제가 안 된다. 그런데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겠다고 눈부신 순발력을 발휘하는 아줌마들은 우리 사회에서 혐오의 대상이다.

이렇게 된장녀와 개똥녀를 비롯한 '**녀'는 남성들이 만들어낸 차별과 배제의 비열한 언어다. 남성들은 그런 언어를 만들고 유포하면서 여성 비하를 더욱 공고히 한다.

예로부터 못난 인간일수록 상대방을 깎아내려 자신을 세우는 전술을 구사했다. 그런 전술에 여성은 너무도 손쉬운 대상이고, 이번에 '여성' 노현정이 제대로 걸린 것이다.

그리고, 노현정에게 바란다

나는 노현정이 당당하게 그리고 멋있게 결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행복하길 바란다. 정말로 10개월 뒤에 이혼하더라도, 그 10개월이 달콤한 향기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TV에서 계속 '아나운서 노현정'의 모습을 봤으면 하는 것이다.

바람도 아니고 결혼과 함께 사라지는 선배 아나운서들과 달리, '결혼과 함께 돌아온' 노현정을 보고 싶다.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 임신한 노현정이 지리산처럼 부어오른 배를 당당하게 내밀고 깔대기를 휘두르며 변함없이 "공부하세요!"라고 외친다면 얼마나 멋있을까.

난 그런 노현정의 모습이 너무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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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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