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김민수
장맛비가 한 주일 내내 기승을 부리니 숲 속에 사는 작은 곤충들과 들짐승, 그리고 많은 풀들도 삶이 힘겹다고 아우성이다. 물론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자라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꽃들이 힘겨워하는 모습이다.

물을 많이 먹으면 줄기가 웃자라고, 줄기가 웃자라면 연약하여 작은 바람에도 눕거나 꺾이고 꽃도 제대로 피우지 못한다. 마음껏 먹는다고 제대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빗물에 꽃잎의 색깔이 변하는 것도 마음 아픈 일이고, 다른 풀들이 웃자라니 혼자서만 뒤처질 수 없는 일도 마음 아픈 일이다.

마치 사교육에 시달리는 우리네 학부모들의 심정을 보는 듯하다. 우리 아이만 뒤처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그래서 허리띠를 졸라매지만 아이들도 부모도 행복하지는 않다. 그리고 성적이 모든 것의 평가 기준이 된 지금, 아이들도 부모도 성적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수우미양가'의 의미를 아무리 아름답게 설명 한다해도 허허롭게 들리는 것은, 수가 아닌 그 다른 것은 절대로 우수할 수도, 아름다울 수도, 양호할 수도, 가능성이 있을 수도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 김민수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시간, 봄과 여름이 맞물려 있는 시간이 있는데 겨울을 제외하면 가장 꽃이 적은 시기인 것 같다. 그러나 여름과 가을이 맞물리고 허물벗은 매미들이 울기 시작하는 시기에는 또다시 하나 둘 꽃의 행렬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꽃들의 행렬은 늦가을까지 분주하게 이어진다.

그맘때 피어나는 꽃 중에 동자꽃, 동자꽃 중에서도 제비동자꽃은 그 색감이 너무도 진해 매우 아름답다. 너무 진해서 빗물에 물감이 씻겨 나가듯 꽃 이파리의 색이 씻겨나갈 정도니 말이다.

최근 바쁜 일상과 잦은 비(그것도 올해는 주말에 많은 비가 내렸다) 때문에 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다가갈 수 없을 때에는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 그런데 바로 동자꽃의 꽃말이 '기다림'이다.

ⓒ 김민수
동자꽃의 슬픈 전설은 2001년 작고하신 정채봉 선생님의 작품의 소재가 되었고, 그 작품은 <오세암>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져 심금을 울렸다.

제비동자꽃은 그 동자꽃과 같지만 꽃잎의 모양이 다르다. 동자꽃은 하트모양의 꽃잎이지만, 제비동자꽃은 마치 제비의 꼬리처럼 날렵하게 몇 갈래로 갈라져 있다. 강남 갔던 제비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기다리는 꽃이 제비동자꽃이 아닌가 싶다.

많은 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리다 만나면 더욱 반갑다. 우연찮게 행운을 만난 듯 마주치는 꽃도 반갑지만 보고 싶은 그리움을 담아 기다리다 만나는 꽃은 더욱 반갑다.

ⓒ 김민수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꽃들이 있다.
그리움 담아 기다리다 만난 꽃
앉은부채, 만주바람, 청노루귀, 처녀치마, 은방울꽃...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만나지 못한 꽃들이 있다.
그리워 찾아 헤매도 바람처럼 가버린 꽃
모데미풀, 매화노루발, 금강애기나리, 보춘화...
기다리지 않아도 행운처럼 다가온 꽃이 있다.
삼지구엽초, 조개나물, 큰꽃으아리, 세잎종덩굴...
그리고
기다리는 꽃들 만날 꽃들 만나지 못할 꽃들이 있다.
때론 내가 기다리고
때론 그가 기다리고
때론 서로 그리워도 만나지 못하기도 하고
<자작시 - 화행(花行)>


ⓒ 김민수
그리움 혹은 기다림은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아주 오랜 인내와 아픔과 땀흘림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이 없듯이 그리움 혹은 기다림 끝에 만나는 일도 그렇다. 아주 오랜 인내와 아픔과 땀흘림 없이 얻은 것들이 허망하듯 거저 주어진 듯한 것들은 큰 감동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기다리고 아무리 오래 인내하고, 큰 아픔과 대가를 지불한다고 해도 만나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어떤 이는 만나기 어려운 것들을 너무도 쉽게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리움은 상대적이다. 사람들은 늘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제비동자가 아닌 동자꽃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의 연재기사 <내게로 다가온 꽃들 69>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을 닮은 동자꽃"에 있으며 동자꽃 전설도 그 곳에 있습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