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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운길산(蕓吉山)을 찾았습니다. 봄날에 가야 제 멋을 알 수 있다는 데, 하늘이 잔뜩 찌푸린 장마철에 갔습니다. 초의, 다산, 추사가 머물렀다는 수종사(水鍾寺)를 품은 곳. 차 맛이 일품이라지요. 산사 풍광도 '천하제일(?)'이라고 합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이야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입니다.

유월의 밤꽃 흩어진 운길산

▲ 두물머리가 보이는 수종사
ⓒ 김정삼
지난 25일 오후 3시 장맛비를 머금은 하늘을 보다가, 뒤늦게 용기를 내 짐을 꾸렸습니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경기 북부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양수대교에 못 미쳐 내렸습니다.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삼거리. 멀리 산중턱 움푹 들어간 곳이 수종사로 보입니다. 그 방향으로 무작정 발길이 갑니다. 얼마쯤 가니 철길 건널목이 막아섭니다. 부드러운 침목(枕木)을 밟았습니다. 건널목을 건너 한참 걸어서야 운길산 입구에 당도합니다.

오후 5시. 하지(夏至)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유월의 밤꽃이 산길에 흩뿌려진 걸 보니, 어느 새 계절이 지나는 게 보입니다. 첫 산행이라 다른 길은 모릅니다. 구불구불 이어진 가파른 산길 도로를 따라 30여 분, 산 중턱에 다다릅니다.

오른편으로 수종사를 가리키고, 왼편으로 정상을 가리키는 팻말이 보입니다. 산꼭대기를 먼저 보기로 했습니다. 나무 계단과 쇠줄로 안내하는 등산로는 사람 냄새를 많이 풍겨, 그리 반갑지는 않았습니다. 30여 분 오르니 운길산 정상입니다. 산 위 하늘은 온통 구름 떼. 구름이 멈춰선 곳이라는 지명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굽이굽이 이어진 산세를 보다가 하산하기로 했습니다. 하산길은 수종사로 가는 길입니다.

너른 마당에 펼쳐진 '두물머리'

산사로 가는 길은 바람의 연속입니다. 줄지어 늘어선 돌탑들이 기도 도량이라고 알립니다. 그 돌탑을 좇아 산사 들머리에 다다릅니다. 먼저 보이는 것이 약수터. 산사를 찾는 이들에게 조심하라는 듯 말하는 묵언(黙言) 팻말. 이 단어로 범인(凡人)이 호기심에 찾은 곳은 구도자들의 공간임을 직감합니다.

▲ 산사에 울리는 종소리
ⓒ 김정삼
경내로 발을 옮기자마자 어디서 종소리가 울립니다. 저녁 예불을 알리는 소리일까요. 종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습니다. 턱수염이 텁수룩하게 난 스님 한 분이 절도 있게 종을 칩니다. 몇 번 울렸는지 세지 않았지만, 그 진동은 경내를 구석구석 흔들어 깨웁니다. 그 종각 옆에 너른 마당이 있습니다. 마치 여행자를 기다렸다는 듯 두물머리 풍경이 펼쳐집니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몰려 있어도,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진 강물은 유유히 흘러갑니다. 이 풍광 앞에서 잠시라도 구도자의 마음을 간직하라고 말하는 거겠지요. 부부사이로 보이는 여행자가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그렇겠지요. 풍광에 한참동안 빠져 있다가 경내에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 차를 무료로 보시하는 삼정헌
ⓒ 김정삼
그 너른 마당 옆에 '삼정헌'이 있습니다. 산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차를 내어주는 곳이지요. 저녁 7시가 다 된 시각이라 문은 닫혀져 있습니다. 경내 입구에서 마신 물맛을 떠올리며 짐짓 아쉬운 마음을 달래봅니다.

"수종사는 천년의 향기를 품고 아름다운 종소리를 온 누리에 울리며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수종사는 신라 때 지은 고사인데 절에는 샘이 있어 돌 틈으로 흘러나와 땅에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낸다."

다산 선생이 예찬하는 수종사는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 추사 김정희가 차를 즐겨 마셨던 곳입니다. 그래서 수종사 물맛과 차 맛은 천하일품이라고 말합니다.

지친 마음 내려놓는 산사일 뿐

▲ 기도도량 수종사
ⓒ 김정삼
경내는 그리 넓지 않지만 아담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대웅전, 경학원, 종각, 산신각, 종무소 등등. 한 여행자가 대웅전 앞에서 기도를 드립니다. 어떤 명성을 간직한 수종사라고 하더라도 기도 도량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 세조가 심었다는 5백년 은행나무
ⓒ 김정삼
산사는 지친 마음을 내려놓는 곳일 뿐입니다. 굳이 불교를 내세우지 않아도, 민중들이 기복을 비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장마철이 지나면 땡볕이 찾아듭니다. 한잔 차 맛, 한잔 물이 그리운 때 입니다. "한잔의 차 한 조각 마음에서 나왔으니, 한 조각 마음 한잔에 담겼네. 이 차 한잔 맛보시게, 한번 맛보면 한량없는 즐거움이 생긴다네." 함허 스님의 차가(茶歌)가 어울리는 수종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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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취미활동으로 등산, 명상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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