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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300키로 질주'라는 슬로건을 내건 KTX. 그 화려한 이면에는 '부채철(負債鐵)'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철도파업의 후유증으로 현장이 어수선하다. 국민들의 시선 또한 곱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지난 4월 1일 노사가 모처럼 손을 맞잡고 안전-고품격의 서비스로 국민신뢰를 회복하고 상생의 기차바퀴를 함께 굴려가자는 의미 있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현장직원들의 마음은 무겁다. 봄이 와도 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우리 철도 직원들의 어두운 현실이다. 이런저런 불만들을 누른 채 '공익성과 이윤추구'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다시 기차는 달린다.

나는 만 20년 동안 현업에서 오직 철길만 달려온 현장기관사이다. 그러기에 부채문제를 언급하기에는 전문적인 식견 또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 왜곡된 철도부채문제에 대한 답답한 마음 누를 길 없어 20년 동안 현장에서 바라본 철도부채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국민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철도 자구노력도 없이 1년 만에 빚 갚아 달라고 손 벌려...'
'철도 부채를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전가 하려는...'


얼마 전 어느 보수언론 사설의 한 대목이다. 기막힌 표현이다. 파업 내내 언론의 한결 같은 토끼몰이식 냉소적인 논조를 읽으면서 나는 가슴을 떨었다. 철도부채의 진정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알면서도 천편일률적으로 써내려가는 논객들의 이중성에 가슴을 떨었고, 무지몽매한 철도원이라고 함부로 돌을 던지는 언론의 횡포에 또 한 번 상처를 입었다.

1년에 30여명이 넘는 직원이 직무사고로 순직하는 전쟁 아닌 전쟁터가 바로 철도현장이다. 작년 공무원 신분에서 공사로 넘어가면서 우리 철도 직원들은 많은 것을 양보했다. 그러나 미래는 여전히 어두웠다. 모든 것이 우리 잘못이고 '철밥통'이라는 한 마디로 우리는 간단히 벙어리가 되어야 했다. 억울했고 답답했다. 매를 맞아도 이유 있는 매를 맞고 싶었다.

재작년 4월 1일 국민의 여망을 안고 KTX는 힘차게 출발했다. '꿈의 300㎞ 질주'라는 슬로건 아래 국가의 위상도 한 단계 높아졌다. 그러나 그 화려한 이면에는 '부채철(負債鐵)'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출발하고 있었다.

부실시공, 잦은 설계변경, 원가계산의 오류 등으로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으며 정권교체기마다 그 심각성이 누누이 지적 되었지만 누구하나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 10조원이라는 엄청난 부채를 우리 3만 2천 직원의 '일류공사 건설'이라는 희망과 맞바꾸었다.

부채의 절반은 시설공단으로 넘어갔지만, 철도는 연 5천억 원이 넘는 돈을 고스란히 선로사용료란 명목으로 시설공단에 지불했다. 시설공단은 수익을 내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 선로사용료로 부채를 갚아나간다. 결국 시설공단 부채 역시 철도가 갚아주는 꼴이 됐다.

▲ 지난 3월 1일 새벽 총파업에 돌입한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이문동 차량기지에 모여 파업농성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러한 모순 속에서도 정부는 언제나 공익성과 이윤추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라고 한다. 경영정상화를 위해 지금 철도에서는 지사개편, 인력재배치 등, 전 방위 자구노력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직원들 대부분은 경영정상화의 기본 취지는 이해하면서도 그러한 자구노력에는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다.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돈도 벌고 공익성도 확보하라'는 이율배반적인 고리에 묶여 더 이상 희망 없는 철길을 달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철도에는 백 원을 벌기 위해 천 원을 투자해야 하는 곳이 많다. 적자선로를 걷으려고 하면, 공익성 때문에 안 되고, 적자역을 폐쇄시키려고 하면 서민의 이동권리를 막는다면서 지역의원이 와서 말린다.

한마디로 '너희들이 알아서 기관차도 사고 비싼 기름도 사고 선로도 깔아서 공익성 유지하고 이윤창출도 해서 직원월급도 주며 국가의 대동맥역할을 충실히 해 달라'는 것이다. 고속철도 부채까지 덤으로 끼워 넣어 직원들을 더욱 주눅 들게 한다.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나는 언론에게 묻고 싶다. 대한항공이 회사 돈으로 영종도 신공항 건설까지 해서 비행기를 띄우는지, 도로공사가 고속도로 통행료 걷어서 직원들 월급도 주고 고속도로까지 건설하는지를, 그들은 국가에서 건설해준 시설을 유지 운영만 하면 된다. 이유는 국가기간산업이기 때문이다.

철도 역시 국가기간 산업이다. 눈을 돌려 다른 나라를 한 번만 돌아보라. 왜 국가가 지고가야 할 원천적인 짐을 유독 우리 철도직원에게만은 가혹하게 짊어지게 하는지, 이 부채의 짐이 결국 훗날 국민이 지고가야 할 원죄적인 짐이 아닌지, 사실이 분명한데 정치권과 언론은 무엇 때문에 짐짓 모른 체 시치미를 떼며 뚝 터질 날만 기다리는지를, 진실로 되묻고 싶다. 전향된 해결의지를 가지지 않으면 철도부채문제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이 될 것이다.

'병은 알릴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철도부채문제가 속으로 곪아터져도 역대 CEO들은 국회에서 문제는 덮어둔 채 장밋빛 미래를 펼치는 것을 보아왔다. 솔직히 못마땅했다. 알면서 덮어 두는 것은 책임 있는 CEO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직원들은 현 철도공사 CEO께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적어도 있는 그대로를 솔직히 이야기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은 믿기 때문이다. 병을 알려야 치료를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집에 빚이 많으면 어느 자식인들 밥 한 끼 마음 편히 먹겠는가. 더욱이 그 빚이 호박덩이처럼 떠안은 것이고, 평생을 죽자 살자 일해도 못 갚을 빚이라면 어찌 밝은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겠는가. 원천적으로 희망이 봉쇄된 일터에서 어떻게 나은 근로조건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최상의 국민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애초에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류공사, 흑자기업의 꿈을 반드시 이루어 우리도 그 열매를 국민과 함께 기쁘게 나누고 싶다. 철도의 공공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파생된 나머지 한 마리 토끼는 국가가 잡아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 철도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서울 용산역에서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덧붙이는 글 | 김만년(김철향) 기자는 한국철도공사 일산승무사무소 기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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