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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에 대한 한국 집권 엘리트집단의 태도는 '마지못해 공부하는 고3 수험생'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국 엘리트집단의 일반적인 태도는 자발적인 신념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기보다는 마치 부모 때문에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수험생의 태도와 유사하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남북한은 본래 하나의 민족이었으니까' 혹은 '시대적 대세가 통일로 가는 것 같으니까'라는 생각에 마지못해 끌려가고 있을 뿐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공고히 한 연후에 통일을 이룩하자"고 말하는데, 그들의 진짜 관심사는 '통일'보다는 '평화'에 있는 것 같다.

한국정부는 통일에 진정한 관심이 없다?

물론 한반도 평화가 이루어져야만 통일도 가능하겠지만, 이는 자칫 한반도 평화에 그저 안주하려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한반도 통일로 가는 '전 단계'가 되어야 하는데, 한국 집권층에서는 한반도 평화에 그냥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의 집권 엘리트들이 공식 석상에서 혹은 선거 현장에서 자신을 '통일 시대의 일꾼'으로 자리매김하려 하지만, 그러한 외부적 선언이 그들 집단 내부의 기류를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는 자기들 '보스'의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쓰는 정책 브레인들의 '작품'에 불과한 측면이 많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정부가 통일에 대해 진정한 관심이 없다는 점은, 통일의 로드맵으로 '남북관계 발전→한반도 평화 정착→남북통일'을 설정하고 있는 점에서도 잘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로드맵이 왜 비현실적인가에 대해서는 2월 20일자 기사인 "남북통일보다 '북미통일'이 급선무다"에서 이미 논의한 바 있다.

다른 국내 정치 이슈에 대해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노선을 추구하는 한국의 집권 여당이 유독 통일문제나 민족문제에 대해서는 비현실적 노선을 지향하는 것은, 그들이 실제로는 통일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통일에 대해 별다른 관심도 없는 한국의 집권 여당은 '통일만큼은 한국 주도로 될 것'이라는 지극히 모순된 기대감을 갖고 있다. 통일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으면서도 통일의 헤게모니에 대해서만큼은 상당한 '집착'을 갖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민족통일'이라는 대명제 앞에서 누가 통일을 주도하느냐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한국국민들이 한국 주도의 통일에 대해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고 또 그러한 막연한 관념이 통일에 어느 정도의 지장을 주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과연 한국 주도의 통일이 가능한가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누가 통일을 주도할 것인가'를 논의하려면 그 논리적 전제로서 '과연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점이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과연 통일이 이루어질까?

그럼, 제1편 기사에서 예고한 대로, 향후 전개될 몇 가지 시나리오를 놓고 통일 가능 여부와 통일 주도권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한다. 제1편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현실적으로 한반도 통일은 북미관계 특히 북·미 핵문제가 해결된 뒤에 가능하다. 그러므로 향후 북미관계의 예상 시나리오별로 통일 가능 여부와 통일 주도권 문제를 검토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제1편 기사의 말미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북미관계가 해결되는 양상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1)군사적 방법으로 해결될 수도 있고 (2)평화적 방법으로 해결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의 경우는 미국의 승리로 끝날 수도 있고 북한의 승리로 끝날 수도 있다.

▲ 북미관계가 미국의 군사적 승리로 끝나는 경우

지금 당장에는 북미관계가 군사적 대결로 치달을 징조가 보이지 않지만, 만약 미국이 우월한 군사력을 앞세워 김정일 정권을 제압하는 경우 한반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 경우, 미국이 북한 땅을 빼앗아 한국에게 넘겨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이상적인 발상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힘들게 빼앗은 땅을 남의 나라에 그냥 '선사'하는 정치집단은 이제껏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까지 인간의 '자선행위'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런 '선한 나라'가 있다면, 신라가 668년 고구려 멸망 이후로 당나라와 힘겹게 싸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현대판 '나당연합군'으로 북한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켜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이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미국이 한국보다 약한 나라라면 모르지만, 세계 최강 미국을 '이용'해서 북한 땅을 빼앗아 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재미있는 것이다.

미국이 군사적 방법으로 북한을 제압한 뒤에는 (1)북한 전역을 단독으로 점유하거나 (2)중국 등 강대국들과 함께 북한을 공동 분할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리라고 보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이러한 두 카드가 미국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전후처리방안이다.

이렇게 된다면, 통일은 요원해지는 것이며, 한민족의 강역은 압록강에서 임진강으로 퇴보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누가 통일을 주도하느냐의 문제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북미관계가 북한의 군사적 승리로 끝나는 경우

'북한이 어떻게 미국을 군사적으로 누를 수 있겠는가?'라며 논의 자체를 거부하려 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만약 북한이 미국을 군사적으로 막아낼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미국이 지금처럼 북·미 핵문제에서 어려움을 겪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 내부에서도 북한의 군사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물론 국방부 예산을 더 많이 받아내기 위해 북한의 군사력을 과장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러한 과장도 최소한의 근거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가 월간 <말> 2005년 4월호 "북한 미사일의 사정거리는 1만5000km"라는 기사에서 설명한 바를 잠깐 소개하기로 한다. 2002년 1월 미 중앙정보국(CIA)은 의회 보고에서 "북한이 1998년에 시험 발사한 대포동 1호와 유사한 3단계 추진 시스템을 사용한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그 사정거리는 1만5000km까지 확대될 것"이라면서 "이렇게 되면, 수백 킬로그램의 핵탄두를 탑재한 북한 미사일이 미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한 적이 있다.

또 2003년 2월 12일자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CIA은 "북한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사정거리가 1만5000km이며, 이는 미국 전역을 사정권 안에 두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북한 외무성의 '핵 보유 선언'이 있은 지 6일 후인 2005년 2월 16일 포터 고스 CIA 국장은 "핵무기 크기의 탄두를 탑재한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이 미 본토에 도달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내용의 진술을 한 바 있다.

이러한 미사일 능력에 핵무기까지 결합되면, 북한의 군사력이 미국에게 중대한 위협을 줄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005년 2월에 필자와 인터뷰한 조총련계 북측 인사는 "북한의 핵무기 능력이 이미 사실상 세계 4강 안에 들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물론 그 인사가 북한의 능력을 과장할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한측이 그만큼 자국의 군사적 능력을 신뢰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북한의 미사일 능력이 아무리 우수하다 해도, 전반적인 국력의 열세 때문에 장기전에서는 미국을 상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 카드를 선택하는 경우 북한은 미사일 및 핵무기를 앞세워 선제공격에 집중할 것이며, 그러한 초반 선제공격에 북한의 승리 여부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경우 북한이 승리했다 하여 그것이 곧 미국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패배는 북한의 멸망으로 직결될 수도 있지만, 미국의 패배는 그렇게 단정하기가 힘들다. 미국이 동북아를 떠나는 것만으로도 미국의 패배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러한 초반 선제공격에 성공하여 북한이 미국을 물리쳤을 경우 한반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북한이 세계 최강 미국을 몰아내고 승리를 거둔다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힘의 중심이 북한에게 쏠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북한이 자연스럽게 한반도 통일을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북한을 능가하는데, 어떻게 북한이 통일을 주도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 운명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경제력이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만약 경제력만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다면, 가난한 유목민족 몽골이 부유한 농경민족 한족을 정복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국제질서의 변동기에는 경제력보다는 군사력·단결력 등이 더 중요한 요인으로 기능해 왔다.

경제력이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한국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능가하고 있지만, 이것도 사실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200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북한이 경제적으로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의 과학기술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점과, 북한이 경제적으로 한국보다 앞선 적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북한이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살리라고 전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만약 북한이 미국을 군사적으로 물리치게 되면, 동북아의 정치적 힘이 북한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정치적 힘이 집중되면 그에 수반하여 경제적 힘도 집중될 수밖에 없다. 권력이 있는 곳에 돈도 모이는 법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이 경제력에서 더 이상 '비교우위'를 누리기 힘들게 될 것이다. 아무튼 경제력만으로 북한 주도의 통일을 배제하는 것은 비현실적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한 점을 정리하면, 북미관계가 군사적 대결로 끝나는 경우에는 통일의 가능성이 반반이다. 미국의 승리로 끝나는 경우에는, 현대판 '나당전쟁'에서 승리하지 않는 한 통일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반면, 북한의 승리로 끝나는 경우에는 통일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것은 북한 주도의 통일이다.

이러한 점들을 본다면, 북·미 핵문제를 군사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 일부 세력의 주장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북미관계가 군사적으로 해결되면, 그 수혜자는 미국이 되거나 북한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북미관계가 평화적으로 해결되는 경우 통일은 과연 가능할까? 그리고 통일이 된다면, 과연 누가 통일을 주도하게 될까? 그 점에 관하여는 제3편에서 계속 논의하기로 한다.

(제3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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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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