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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된 지금의 청계천의 모습.
ⓒ 러닝라이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추억의 장소로, 연인들에게는 데이트 코스로, 아이들에게는 놀이터로…. 도심 불빛아래 왁자지껄한 물손님이 찾아왔다

지난 10월 1일 역사속의 청계천이 47년 동안의 긴긴 잠에서 깨어나 도심 속의 오아시스로 탈바꿈했다. 많은 승용차로 인해 주차장을 방불케 하던 그곳이 사람의 품, 자연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복원된 청계천 일부 구간에서는 흐르는 물과 함께 이른 아침부터 조깅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는가 하면, 산책로를 따라 약속장소로 향하는 사람들의 풍경이 낯설지 않다.

청계천은 단순히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밋밋하기 그지없고 멋 하나 없다는 수식어가 청계천에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는 사람들마다의 삶이 녹아있고 다리마다 얽힌 역사가 있고 꿈이 있고 희망이 있다.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청계천은 그래서 그 자체로 삶이 되고 문화가 되고 미래가 된다.

내를 파내 만든 청계천

▲ 1950년대 이전 청계천 모습. 서울시 제공
청계천은 현재 '매우 맑은 물줄기'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실제로는 일제강점기 때 전국의 다른 개천과 구별하기 위해서 일본 당국이 조선 500년 동안 불러오던 '개천'이라는 이름 대신 붙인 이름이다. '개천'이란 '내를 파내다'라는 뜻으로 청계천이 자연하천이 아니라 생활의 필요에 의해 어느 정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공하천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청계천의 발원지는 서울의 북서쪽에 위치한 인왕산과 북악산의 남쪽 기슭, 남산의 북쪽 기슭이며, 서울 중심에서 모여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총 10.92km의 도시 하천이다.

1441년 세종 때부터 청계천은 도심의 생활하천으로 규정됐다.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도성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고 오늘날과 같은 하수도 시설이 없었던 당시에는 쏟아져 나오는 온갖 오물을 배출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세종은 청계천을 생활하천으로 결정했고 이로써 조선왕조 500년 동안 도성에서 배출되는 많은 생활쓰레기를 씻어내는 하수도의 기능을 하게 되고 도성 전체는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청계천은 오염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일본은 청계천(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을 이름값 못하는 탁계천(더러운 물이 흐르는 시내)라고 비웃었다. 1920년 이후 일본은 청계천을 복개하려는 계획을 여러 차례 발표했으나 재정문제로 인하여 실현되지 못했고 실제 복개가 이루어진 곳은 1937년 태평로에서 무교동 구간뿐이었다.

청계천은 서울 중심에 위치해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상징적인 경계선으로 작용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암울했던 시대의 상징물인 동시에 서민들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이기도 했다.

▲ 1950년대 청계천에서 빨래하는 아낙과 물놀이하는 아이들. 서울시 제공
생활하수로 쓰이던 청계천의 쓰레기와 악취가 비로 인해 씻겨 내려가면 그곳은 아낙네들의 빨래터로 탈바꿈했다. 그들은 힘찬 빨래방망이질로 가슴속 깊이 쌓여있던 고단한 삶을 털어냈다. 그곳은 자유의 쉼터였으며 해학이 넘치는 이야기가 있는 창작의 교실이었다. 서울사람들에게 생활공간의 한 부분이었고 역사와 문화가 생성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6ㆍ25 이후 전쟁으로 황폐해진 경제를 복구하면서 베이비붐이 일어나 서울의 인구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고 천변을 따라 어지럽게 늘어선 판잣집들과 거기에서 쏟아지는 생활하수로 청계천의 오염은 말 못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결국 1955년 광통교 상류 약 136m를 복개한 것을 시작으로 1958년부터 본격적으로 복개되기 시작했다. 이후 복개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상가가 밀집하기 시작했고, 교통량이 늘어나면서 도심에서 외곽을 잇는 고가도로가 만들어졌다. 이는 서울시 건설사상 획기적인 일이었고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서울시의 가장 부끄러운 곳이었던 청계천이 서울의 발전을 표현하는 상징물로 대두되기에 이른다.

반세기만의 부활

▲ 청계천 예전의 다리. 서울시 제공.
청계천이 복개되고 약 40년이 지난 후 청계천은 산업의 중심지로서 많은 사람들이 오갔으며 고가도로에는 하루에도 수십만 대의 차량들이 지나다녔다. 그러나 더 이상 청계천을 서울의 자랑거리로 여기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서울에서 가장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의 대명사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청계천만큼 지난 50년 동안의 서울의 역사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곳은 없다. 한마디로 한국 경제의 발전사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전시장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1950년대 말 쓰레기와 오수로 뒤덮인 빈곤의 상징에서 60, 70년대는 성공적인 산업화ㆍ근대화로 상징되었다가 80, 90년대 와서는 공구, 인쇄, 의류 등 도심산업의 중심지임과 동시에 소음과 혼잡, 매연 등으로 도시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결국 지난 2003년 청계천이 다시 열리는 복원사업계획이 발표되고 그해 7월 1일 청계고가도로 철거를 시작으로 복원사업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복원공사가 시작된 지 2년여만에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22개의 다리와 함께 어지러웠던 서울의 도심에 시원한 물길이 열렸다. 어둠 속에 갇혀있던 청계천이 반세기 만에 부활한 것이다.

걷고 싶은 도시

▲ 청계천 복원 전 고가다리 모습. 서울시 제공
청계천복원사업은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로서 서울에 대한 시민들의 자부심을 제고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청계천지역에 존재하는 유적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것은 서울이 역사적ㆍ문화적 중심지로서의 상징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청계천복원사업으로 시민이 즐겨 찾을 수 있는 휴식공간(도심공원) 속에서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역사문화 복원에 대한 인식도 같이 하고 있다.

청계천복원은 도래하는 환경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미래지향적인 시도이며, 이는 자연과 사회가 균형과 조화 속에서 공존하는 도시환경을 의미한다. 청계천복원은 도심 내에서 자연과의 공존과 서울의 녹색화를 위한 미래지향적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에 발맞춰 청계천의 복원 후 썰렁하던 도심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도로를 빽빽하게 메우던 승용차와 쾌쾌한 매연 등으로 인해 숨 막히게 느껴졌던 이곳이 시민의 녹지공간으로 거듭나면서 '걷고 싶은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하수구 냄새가 가득했던 청계천에는 벌써부터 피라미와 붕어, 버들치 등 예전에 볼 수 없던 동식물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청계9가 두무개다리 부근에선 백로가 목격되기도 했다. 또한 중랑천을 통해 뚝섬 서울숲과 '녹색축'으로 연결되면서 도심에 걷는 문화, 달리고 싶은 거리를 확산시키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시청 부근부터 황학동으로 걸어 갈수록 옛 모습의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남을 볼 수 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한 황학동의 상가들과 예전의 청계천을 상기시키는 빨래터는 인상적이기까지 하다. 청계천 주변에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나와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물가에 앉아서 이야기 하는 연인들도 있고 나이 지긋하신 분들도 옛 추억을 떠올리며 어린아이들과 함께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청계천 돌담길을 건너 걸어서 출근하는 직장인들도 많이 눈에 띈다.

도심의 보행로도 넓어졌다. 청계천 복원에 맞춰 광화문 사거리나 시청 뒷길 등의 보행로 폭도 2~4m씩 확장돼 편안하게 걸을 수 있게 됐다. 보행육교가 시야를 가로막았던 새문안교회 앞길이나, 지하도로만 건널 수 있었던 덕수궁~서울광장 사이에 횡단보도가 등장해 썰렁하던 도심이 활기찬 시민들의 모습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처럼 시민들이 다시 태어난 청계천의 모습을 만끽하기 위해 너도나도 청계천변으로 걸어 나오면서 새로운 문화의 핵심으로 급부상 하고 있다. 각종 전시회 및 거리 예술 등 문화행사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으며 노천변을 따라 줄 선 외식업체들도 잇단 이벤트 행사를 열어 더욱 많은 시민들을 청계천으로 발길을 돌리게 하고 있다.

물론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보았기 때문에 아직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재한다. 때문에 지속적으로 청계천을 탐색하고 즐기고 성찰하면서 우리 미래의 삶과 문화를 가꾸어 나가자. 그러면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정서와 감성을 따뜻하게 해주는 다양한 예술문화들이 넘쳐흐를 것이고 풍요로운 마음들이 펼쳐질 것이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서울이면서도 전혀 서울 같지 않은 곳,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과거의 아련한 추억이 묻어있고 어린아이에게는 현재의 삶과 앞으로 이끌어나갈 미래가 존재하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맞물리는 곳 청계천. 우리나라 사람 아무나 붙잡고 청계천을 아느냐고 물어본다면 모른다고 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그곳. 이렇게 청계천은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아픔과 기쁨을 모두 간직한 채 자연스럽게 우리의 머리와 가슴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헌 옷을 벗어 던지고 곱게 치장을 해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청계천의 복원에 대해 많은 기대 속에서도 우려 섞인 말이 많았다. 그러나 결국 청계천은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으며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했던 청계천이 잠깐의 휴식을 가진 뒤 다시 기지개를 편 것이다. 새로운 추억과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서 자신만의 둥지를 틀고 서민들의 삶을 일구기 위해서….

덧붙이는 글 | 전영 기자는 마라톤전문지 <러닝라이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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