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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버님 멀리 가시고 마음 속에 묻은 지 벌써 석 달이 넘어갑니다. 아버님 보낼 당시에는 그 슬픔이 참 오래 갈 것 같았는데 석 달이 지난 지금은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급급한 것 같습니다.

추석 전날이라 하여 저녁 6시쯤 남편 회사 사람들과 모여서 저녁을 먹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을 포함한 세 가족과 여러 직원들까지 모두 열 명이 넘었습니다. 중국 혜주 시내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즐거운 식사를 했습니다.

고향에 못 가는 대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중국 술 바이주와 맥주를 마셨습니다. 오늘따라 맥주 맛은 또 왜 그리 좋은지, 몇 잔을 비워도 취하지도 않고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저녁 9시가 넘어 집에 왔는데, 남편은 얼마나 마셨는지 평소답지 않게 비틀거리고 정신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더니 아이들과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픽 주저앉더니 바로 곤드레만드레 잠이 들었습니다.

이불 펴고 제대로 눕혔더니 그제서야 코고는 소리까지 편안하게 들리더군요. 두 딸들은 잘 기미도 안 보이고 해서 잠자는 남편 옆에 앉아 아이들과 동화책도 보면서 놀았습니다. 한두 시간 놀아주니 아이들도 스르르 잠이 들어 불을 끄고 자려다가 남편의 취한 모습이 자꾸만 마음에 걸려 한 번 더 쳐다보았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려니 얼마 전 남편의 꿈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아버님 세상 떠나신 지 두 달 조금 넘은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아침에 깨울 때면 항상 "5분만"이라고 말하는 남편은 그날도 일어나기를 힘들어했습니다. 출근 시간에 늦을까봐 자는 남편을 급하게 깨웠습니다.

"여보! 벌써 6시 반이 넘었어요! 얼른 일어나요."
"어? 으응 딱 5분만."
"그러다 늦으면 내 탓 하려고요?"
"아이구, 알았어. 일어난다."


가까스로 일어난 남편은 머리를 한두 번 흔들더니 아침 준비 하느라 바쁜 저를 불렀습니다.

"있잖아, 내가 꿈을 꿨거든?"
"무슨 꿈이요? 지금 아침 준비 안 하면 당신 아침 못 먹어요."
"지금 아침이 문제가 아니라니깐?"
"왜 뭔 꿈인데요?"
"꿈에 아버지가 다 보이네?"


제 꿈에 뵌 것도 아닌데 왜 그리 반가웠는지 아침 준비는 깜빡 잊은 채 계속 남편을 다그쳐 물었습니다.

"어머, 정말 아버님을 뵀어요? 모습은 어땠는데요, 빨리 말해 봐요."
"글쎄 꿈속에서 아버지가 어찌나 건강하신지 나랑 같이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운동을 다 했지 뭐야. 운동 끝나고 집 앞에 다 왔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배가 고프다고 하시더라."

"그래서요. 뭐 사드렸어요?"
"그게 말이야. 단팥빵이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집 앞 빵집을 갔는데 하필 그날따라 단팥빵은 없고 다른 빵만 수북한 거 있지. 그래서 다른 빵집을 가려다가 당신이 깨워서 꿈까지 깨버렸잖아."
"에고 어쩐대. 아버님이 막내며느리 미워하시면 어쩐대요."


아버님은 아프셔서 누워 계실 때도 단팥빵을 참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끔 시댁에 갈 때마다 사다 드리곤 했는데…. 막내아들 얼굴도 못 보고 눈을 감으시더니, 그 아들이 사주는 단팥빵이 드시고 싶었나 봅니다.

남편은 그 꿈 때문에 회사에 출근해서도 계속 마음에 걸렸는지 저더러 한국에 계신 시어머님께 전화 한 번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시댁에 전화해서 어머님께 꿈 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어머님은 "아야, 나는 그렇게 보고 싶어 해도 꿈에 한 번 안 오더만 상근이 볼라고 중국까지 가서 못 왔는 갑다" 하셨습니다.

집에는 별 일 없다고 하시니 저는 어머님께 "혹 아버님 산소 가시면 단팥빵 몇 개 사다드리세요"라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습니다. 남편은 별 일 없다는 말을 듣고서야 안심을 하는 듯 했습니다.

남편이 그 꿈을 꾼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 올 추석엔 유난히도 그리움에 사무친 느낌입니다. 아마도 벌초도 직접 하지 못하고 제사상 앞에 절 한 번 올릴 수 없어 돌아가신 아버님께 죄송스러운 모양입니다.

아버님 살아생전 누워계실 때 곁에 있지 못하고 멀리 있어 그리움만 안겨주었는데 이제는 볼 수도 없어 영원한 그리움으로 남아버렸습니다. 그 아들이 오늘 취한 건 술이 아니라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인 듯합니다. 어쩌면 지금 꿈속에서 다시 아버지 품에 안겨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 더해가는 밤입니다.

덧붙이는 글 |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해야지 하는 마음은 있으나 실천하지 못하니 늘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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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동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와 생활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삶속에 만나는 여러 상황들과 김정들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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