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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수년전부터 러시아 극동지역으로부터 송전선로 연결을 통해 50만kW 용량의 전력을 공급받는 계획에 남한이 지원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편집자주>
최근 정부가 제안한 대북 송전사업에 숨겨져 있던 기술적 문제들이 밝혀지면서 송전방안의 타당성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통일부는 발표 당시 이미 한전으로부터 기술자문을 받았다고 밝혔으나 최근 한전이나 산자부의 갈팡질팡하는 입장을 볼 때 실질적인 자문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제안은 경수로사업이 지난해 국제사회의 반대로 좌초되면서 남북간 약속의 이행이라는 순수한 정치적 고려에서 발단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북측 입장에서 고 김일성 주석의 '유훈'인 경수로사업이 중단된 후 수개월만에 그 대안을 제시한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약속 이행이 불가능하거나 지원수준이 심각히 제한된다면 이는 남북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대북 전력지원 자체에 부정적인 일부 언론에 대한 과잉 반응으로 충분한 기술적 검토 없이 강행하겠다는 자세를 버려야 할 것이다.

1~2개의 송전선로 건설은 북한 인구분포현황에 맞지 않아

현재 통일부가 밝힌 대북 송전사업이란 약 5천억원의 양주 또는 파주~평양간 송전선로 건설과 1조원 규모의 변전소 건설 정도이다. 그러나 오래 전 황폐화된 북한의 송배전망을 고려할 때 주거지와 공장 등 수요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건설된 변전소에서 다시 별도의 송배전시설을 건설해야 한다. 즉 정부방안대로 북한에 전력을 공급하려면 지금 정부가 밝힌 것보다 두 배의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북한의 도시와 산업단지의 분포가 한국과 달리 분산되어 있어서 정부계획대로 전력을 지원할 경우 송배전비용은 극대화된다. 대진대학교 도시계획학과 김현수 교수는 "북한의 인구분포가 개성, 남포, 사리원 등 넓게 분산되어 있고, 산업단지 역시 분산되어 있어서 과연 1~2개 송전선로로 북한 전력난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밝힌다. 오로지 평양까지의 송전선로 건설만을 밝히고 있는 정부계획을 보더라도 이번 방안이 온전한 의미의 대북전력지원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하다.

수도권 송전망 병목현상 저감위해 이미 매년 7~8천억원 소요

대북 직접 송전방안은 남한의 전력수급지형과도 전혀 맞지 않는 제안이다. 최근 일간지들에 폭로된 것처럼 국내 전력수요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도권의 전력수급사정은 열악한 상황이다. 수도권이 여름철 최대수요 대비 자체 보유한 발전설비는 절반인 50~55% 수준이다. 결국 나머지 절반을 한반도 남쪽의 발전설비들에서 송전망을 통해 충당해야 하지만 이른바 "북상조류"에 따른 송전망 병목현상으로 남쪽에 발전소를 더 건설해도 수도권 수급안정에는 제약적일 수밖에 없다.

전력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같은 수도권 송전망 병목현상을 저감시키기 위한 설비보강과 보조관리만으로 이미 연간 7~8천억원이 소진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대북송전비용으로 제시한 송변전시설 건설비용 1조 5천억원은 매년 추가되어야 할 수천억원의 전력계통 보강비용과 1조원의 발전소 가동비용을 감안할 때 별 의미가 없다.

오락가락하는 한전-산자부의 수도권 전력예비율 논란

애초 통일부의 대북 송전제안 발표 직후 산자부와 한전은 수도권 전력수급문제와 추가발전소 가동문제를 근거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산자부는 내부보고서에 부족한 수도권 전력공급량으로 인해 인천의 영흥화전 5기를 조기건설하고 심지어는 가동 중인 보령화력발전소를 서울로 옮겨와야 한다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알려진 후 이틀만에 산자부와 한전은 서로 입을 맞춘 듯 전력예비율이 충분하다고 말뒤집기를 하였다.

지난 주 동안 정치권 차원에서 산자부와 한전에 대한 '교통정리' 작업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주목할 사항은 산자부-한전의 대북송전으로 인한 수도권 전력예비율의 충분-불충분 주장이 모두 단편적인 전망치를 근거로 주장되었다는 점이다. 애초 수도권전력수급의 문제점이 지적되었을 때는 대북송전이 시작되는 2008년 한 해의 전력예비율(6.6%)이 근거로 사용되었던 반면, 이후 "문제없다"고 말뒤집기를 할 때는 그 직후인 2009~2011년 예비율 전망이 사용되었다.

▲ 대북송전시 수도권 전력예비율 전망
ⓒ 석광훈
그러나 산자부가 근거로 사용한 <제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전망을 기준으로 대북송전을 할 경우 2013년부터는 수도권 전력예비율이 급전직하하면서 0.6%까지 떨어지게 된다. 결국 단순한 전력예비율 전망만으로는 대북송전이 적절한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찬반을 떠나 산자부의 입장이 복잡한 전력계통 문제를 단편적인 전력예비율 전망치로 오락가락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도 정부가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대북 전력지원, 분산형 전원과 러시아-북한 송전선 건설로 전환하자

반면 북한의 도시 및 산업단지 분포현황에 맞는 중소규모의 분산형 전원과 수력자원이 풍부한 러시아 극동지역으로부터의 전력공급방안은 시간과 예산을 단축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방안이다. 북한의 주요 도시나 산업단지에 약 20만~40만kW급 석탄 또는 LNG 화전 2~3개를 건설할 경우 건설기간, 건설비, 운영비용을 절반 가까이 절약할 수 있게 된다.

다만 북한은 연료 확보가 어려우므로 이들 발전시설들은 남측으로부터 안정적으로 연료를 공급할 수 있게끔 북한의 남쪽 휴전선 인근에 국한되어야 할 것이다. 도시나 산업단지 외의 농어촌지역에서는 연료수송 인프라 자체가 열악하므로 별도 연료가 필요없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통해 교육, 보건, 농업 등 필수분야에만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북한의 북쪽지역은 인근 러시아로부터의 전력공급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되어왔다. 북한과 인접한 러시아 극동지역의 경우 현재 7200MW 규모의 발전설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향후 수력발전 개발로 2007년에는 9100MW까지 증대될 예정이다. 반면 전력수요는 높지 않아 발전설비 예비율이 50% 수준에 이르고 있어 북한 등 인접국에 전력을 수출할 수 있는 잠재력이 매우 높으며 러시아 에너지공사(UES) 역시 수출계획을 갖고 있다.

▲ 러시아 극동에 위치한 브레야 수력발전소
ⓒ UES
북측도 이 같은 방안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핵전문가인 강정민(평화네트워크 자문위원) 박사는 "북한은 수년 전부터 러시아 극동지역으로부터 송전선로 연결을 통해 50만kW 용량의 전력을 공급받는 계획에 남한이 지원해줄 것을 요청해왔다"고 밝힌다.

정부가 진정 대북 전력지원을 의도하고 있다면 이처럼 분산형 전원과 러시아-북한간 송전망 연계 등 현실적인 지원방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는 대북직접 송전방안이 아직 기술적으로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만큼 북한에 전력을 지원하겠다는 원칙은 그대로 유지하되 지금이라도 그 지원방안에 대해 전문가들의 조언과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렴해야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석광훈 기자는 1996년부터 녹색연합에서 핵발전소, 핵무기문제, 에너지정책 등을 담당해왔으며, 현재는 에너지시민연대와 반핵국민행동 정책위원으로도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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