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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태클이 들어옵니다.

"커플 매니저도 너는 안 받아 줄 걸. 나이 많지. 게다가 마이너스 연봉이잖아. 학생이니까."

맞습니다. 저는 서른한 살의 05학번 대학생입니다. 십년이나 어린 학생들과 다시 대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숙제, 스터디, 동아리 활동까지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 멀쩡히 나와 사회생활 '짬밥'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다 늦게 대학이라니, 그것도 여자가!

제가 하고 싶었던 '영어통역'을 공부하고 있으니 남들이 뭐라든, 그래도 행복합니다. 물론 난관은 있습니다. 바로 여기저기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들어오는 '태클' 때문입니다. "서른한 살이나 되는데 왜 결혼을 안 하냐"는 거지요.

사실 저 나름대로도 할 말 많습니다. 이 나이면 결혼 축의금도 낼 만큼 냈으니, 슬슬 거둘 때도 됐죠, 명절 때마다 친지들에게 "이제 결혼해야지"라는 덕담을 듣는 것도 지쳤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모든 태클을 '영어 통번역사'라는, 목매달아 죽어도 좋을 꿈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접수' 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도 조리 있게 하지 못하고 영어도 어설펐던 국산 토박이지만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건데…. 이제와서 '포기'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까이꺼 태클, 걸면 거는 대로 막아 버리면 그뿐입니다.

태클 반격은 이렇게…

기왕 늦은 공부, 다시 기본기부터 다지고 있습니다. 입학할 때 토익점수 920점. 영어는 꽤 한다고 생각했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제까지 뭐했나 싶습니다. 제대로 걸린 거죠.

저의 이런 '불타는' 학구열에도 불구, 지금까지도 주변의 결혼 압박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덕분에 맷집만 좋아진 건지, 이제는 어지간한 태클에는 끄덕도 안 합니다. 서른만 넘으면 아줌마 아니냐고, 제가 아끼는 '삼식이'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괜찮습니다. 게다가 요즘엔 든든한 지원군인 '김삼순'까지 나서 '이 땅의 삼순이'들을 전면 방어하고 있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일 밖에요.

이 땅의 삼순이들과 예비 삼순이들을 위해 제가 몇 년의 세월 동안, 경험을 통해 쌓은 태클 대처법 네 가지를 '공짜'로 공개합니다.

ⓒ 배수원
첫째, 지나친 '맞선'은 정신 건강에 해롭다

여. 30세. 158cm, 49kg. 연봉 3000만원. 은행원. 부모 재산 10억. 이런 조건의 한 친구는 주말마다 끌려 나가 맞선을 봅니다. 그 스트레스로 가뜩이나 머리숱이 적어 걱정인데, 그 아까운 머리카락이 다 빠질 지경이라고 합니다. 가장 심하게 태클을 거는 사람은 바로 어머니. 겪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보통 어머니들의 맞선 레퍼토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해야지. 늦기 전에 자식도 낳고. 그게 사람 사는 순리지."

간단한 워밍업을 마치면, 본론은 이제부터입니다.

"좋은 사람이 하나 있다는데. 전문직이고, 시어머니 자리도 좋고, 인물도 훤하고…."

인물이 훤하다는 말만 믿고 나갔다가 대략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중매 시장에는 이마가 훤한 대머리 아저씨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급기야 그 친구는 100만원이나 주고 결혼정보회사에 등록을 했습니다. 10단계 중에 6단계랍니다. 처음에 10명의 남자를 만났고 30만원 더 보태서 또 다른 10명을 만났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주말마다 중매시장에 나갑니다. 오늘은 또 '뭐'가 나왔나 싶어서요.

하지만 이것도 지나치면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느 날 문득 앵무새가 되어 커피숍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거나, 딱지 맞았던 남자와 연거푸 부딪히게 되는. 태클이 강해서 피할 수 없다고요? 빈번한 선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적절히 조절하세요.

둘째, 염장 지르는 친구에게 할 말은 한다

ⓒ 배수원
이 땅의 삼순이들은 밤이나 주말이면 괴롭습니다. 밤이 외롭다거나, 주말에 데이트 약속이 없어서 일까요? 아닙니다. 결혼한 친구들이 늦은 저녁 시간이나 휴일에 전화를 해대기 때문입니다. 남편들이 야근을 하거나 휴일에도 놀아주지 않아 심술이 났겠죠.

"사는 게 왜 이런지 모르겠어. 내가 욕심이 너무 많은 걸까?"

이런 전화를 받으면 아직 결혼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차마, 그런 말은 못하겠고 그래도 친구라고 전화해준 게 고마워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결혼하고 초기에는 다들 적응하느라 힘들대. 너네도 좋아 질 거야."
"그래 고마워. 결혼도 못한 너한테 이런 말 자꾸 해서 미안해."

마치 경험자인양 없는 말 지어내 애써 위로하는데, 이런 반응 보이면,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곤란하죠.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아 정수리를 때리고, 제 윗니는 어느새 아래 입술을 꽉 깨물고 있습니다. 이런 게 제대로 들어온 태클입니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됩니다. 버릇됩니다. 적당히 한 번은 쏘아야 합니다.

"야. 넌 내 생일날은 전화 한 통 안 하다가 꼭 심심하면 전화해서 이러더라. 이 나쁜 X야."

양심 있는 친구라면, 더 이상 징징거리진 않습니다. 물론 그래도 될 친구인지 한 번은 생각해야 '의' 상하지 않습니다.

셋째,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한다

가끔 앞 뒤 안 가리고 들이대는 남자들 있습니다.

"왜 아직 결혼을 안 하셨을까? 저녁이나 한 번 같이 먹죠."

이런 태클 정도야, 기분 나쁠 건 없습니다. 하지만 급하다고 덥석 물면 안 됩니다. 영화 <싱글즈>에서 동미(엄정화)도 나난(장진영)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배고프다고 아무거나 먹으면 안된다"고. 일단 한 템포 쉽니다. 자신이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라도 되는 양 착각하면 인생 힘들어 집니다. 제대로 된 삼순이라면 삼식이와 민현우 정도는 가릴 줄 알아야겠죠?

"저 남자친구 있는데요."

요즘은 세상이 험해서 이런 말이 잘 안 통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확실하게 통합니다.

"저 서른 한 살인데요."

제대로 된 태클인가, 아닌가. 걸릴 것인가, 말 것인가. 한국에서 여자의 나이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당하기만 하지 마세요. 적절하게 활용하고 즐기면, 돈 들여 요가 하지 않아도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넷째, 옛 애인의 결혼 소식을 즐겨라

싱글에게 가장 태클다운 태클은 헤어진 애인의 결혼 소식이라고 합니다.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습니다. 그리고 표정 관리도 안 됩니다. 기억은 가물가물해도 맥주 한 잔 정도는 마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헤어지자마자 청첩장을 돌린다거나 내 친구와 결혼한다면서 "미안하지만 축하해 줘"라고 하는 경우는 제욉니다. 술값 아까우니까요.

"에잇, 난 지금까지 뭐했지. 나도 확 결혼이나 할까."
"죽자고 쫓아다닐 때는 언제고, 얼마나 잘 사는지 두고 보자."

이렇게 속 끓이면 위장병만 생깁니다. 잘 생각해보면 옛 애인의 결혼 소식은 충분히 즐길 만합니다. 당시 그 신발을 신고 발이 아팠던 이유는 내 발에 맞지 않는, 너무 작은 신발이었기 때문이거든요. 그때 내 눈에 맞지 않는 안경을 썼기 때문에 앞길이 막막했던 겁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결혼을 잘 했다고 해도 알고 보면 "에게, 겨우" 이런 소리가 나오거든요.

다른 친구 결혼 소식을 대하듯 그냥 축하하면 됩니다. 도저히 가슴으로 축하가 안 되면 혼잣말이라도 합니다.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렇게 하면 훨씬 더 좋은 사람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살다 보면 곱게 마음 써서 손해 볼 것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No problem. 태클 걸지 마세요

독일에서 공부하는 한 후배는 한국에 들어오는 게 무섭답니다. 앞서 열거한 태클에 걸려, 다치기 십상이라나요. 독일에서는 스물여덟 된 미혼 여자가 대학에 다니는 것이 별 일도 아니지만, 한국에 오면 뭔가 문제(?) 있는 취급을 당하는데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답니다. 5분마다 10개씩 붕어빵을 구워내야 하는데, 시간을 못 맞춰서 큰일 났다는 식입니다.

친구들이 가정을 꾸민다고 바빴던 20대.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했고 가보고 싶은 곳에 여행을 다녔습니다. 0.1mg의 아쉬움도 없습니다. 친구들이 줄줄이 하나 둘 아이들을 낳기 시작할 때, 저는 세계 곳곳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배낭 하나 메고 떠나면 다들 반갑게 맞아줄 친구들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제 꿈을 이루기 위한 훌륭한 밑거름입니다. 이왕 늦은 결혼, 시간이 뭐 대수인가요. 이혼율 47% 의 시대, 결혼은 이미 인생의 옵션이라고 하더군요.

남들보다 좀 늦으면 어떻고, 좀 다르면 어떻습니까.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면 그게 멋진 인생 아닌가요?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에게 바가지 긁을 일 없으면 어떻습니까. 너무 이뻐서 깨물어주고 싶은 자식이 없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닙니다. 각자의 시간표에 맞춰 살면 되지 않을까요? 전 괜찮으니, 이제 태클 걸지 마세요. 이 땅의 모든 삼순이들이여, 화이팅!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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