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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부터 9일까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수학여행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여행 계획에서 업체 계약까지 폭넓은 의견 수렴과 민주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준비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특정 업체를 고집하고 이전의 관행을 강요하는 학교 문화 때문에 그저 그런 수학여행이 될 것 같은 차에 한 선생님의 아이디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 노용래
연초 제주도에서 있었던 전교조 선생님들의 수업사례 발표대회(참교육 실천 보고대회) 이후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생태기행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화산지형인 오름과 곶자왈을 다녀온 것이 너무 좋았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아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저하지 않고 바로 제주환경운동연합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매달렸습니다. 아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저의 제안에 “사실상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이 수화기 건너에서 전해져 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500여명이 되는 학생과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생태기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또 한 번 말씀드렸습니다.

“방법은 찾아보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제주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 보다 더한 교육은 없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제주도는 신혼여행과 패키지 여행으로 이전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손 쉽게 드나드는 곳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쉽게 가는 곳, 여행사의 짜여진 일정과 계획 대로 모든 사람들이 떠올리는 기억속의 제주도는 한결 같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만큼은 그런 제주도를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소 힘들고 어려운 일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기억속의 제주도는 검은 현무암이 뒤덮인 작은 '해안', 작지만 독립 화산활동의 결과로 제주 이곳저곳에 마치 산처럼 서있는 '오름' 그리고 제주사람들의 생명수를 만들어주는 숲 '곶자왈'을 남겨주고 싶었습니다.

어렵게 승낙을 받고서야, 이젠 어떻게 하나 고민이었습니다. 생태기행 자체가 10여명 단위의 소규모로 움직이면서 안내 선생님의 설명을 통해 직접 만져보며 두 발로 걷고 체험하는 것이라, 인원이 많다는 이유로 계획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우선 12대의 버스를 6대씩 나누어 2개조로 편성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정을 바꾸어가며 앞 조는 생태기행을, 뒤 조는 관광을 잡았습니다. 물론 다음 날에는 앞 조가 관광을, 뒤 조가 생태기행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기로 하고 버스 한 대당 한 명의 강사를 섭외하기로 하였습니다. 학생들에게 좋은 추억과 체험을 통해 제주의 면면을 알려주시겠다는 제주환경운동연합의 배려 속에서 마침내 수학여행 계획이 확정되었습니다.

ⓒ 노용래
제주도 현지에 내려가서 안 사실이지만, 이런 제안을 한 학교가 처음이며 무척 소중한 기회가 될 것 같아 나름의 준비를 오래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부탁을 한 쪽은 이쪽인데,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셨다면서 고맙다고 하시는 것을 송구스럽다며 머리 숙여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처음으로 간 곳은 김녕 해안이었습니다. 제주 북쪽 해안에 자리 잡은 조그만 해안이었습니다. 용암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면서 검게 굳어진 바위 위로 작은 생명들이 열심히 생명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이 빠져, 바위 이 곳 저 곳을 기어다는 소라게와 게 등을 잡아 보겠다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사이로 분주히 이곳 지형을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의 표정과 듣는 학생들의 모습은 진지했습니다.

사진도 찍고 바다 내음을 만끽하며 다음 장소인 다랑쉬 오름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제주 한가운데 크고 높은 한라산 말고 제주도에는 모두 360여개의 오름이 있다고 합니다. 한라산 주위의 여러 곳에서 작은 독립화산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오름 가운데 가장 높은 다랑쉬 오름(381m)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40도에 달하는 경사가 말해주듯 아이들은 가뿐 숨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정상으로 옮겼습니다. 불평과 불만이 오고 갔지만 문득 오르면서 뒤로 보이는 제주의 경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훌륭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오른 다랑쉬 오름의 정상(분화구)을 돌면서 눈에 보이는 제주를 돌아보고 아이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단체사진과 그룹사진을 열심히 찍었습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가면서 마지막으로 간 곳은 교래 곶자왈이었습니다. 도로 한쪽으로 난 길을 따라 10분 정도 들어가니 어두컴컴한 숲이 나타났습니다. 들어서자마자 풍겨오는 숲 내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날아다니는 하루살이와 풀숲에 소리도 지르고 안 들어가겠다는 것을 억지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숲은 생각보다는 더 서늘했고 바위틈에는 온갖 이끼와 고사리가 뒤덮고 있었습니다.

습도가 높아 그런 것인데 이유는 내리는 많은 빗물이 곶자왈을 통해 땅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런 지하수는 오랜 정화과정을 통해 육지 위로 흘러나와 제주인들의 생명수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를 삼다수란 상표로 외지에 팔고 있다고 하니 그 규모와 사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노용래
그곳을 나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 한구석 뿌듯함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너무 힘들었다며 선생님을 원망하면서도 지금껏 제주에 대한 기억을 오늘의 경험을 통해 바꿀 수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관광지와는 달리 제주의 자연을 몸과 마음으로 느꼈을 생각에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제주환경운동연합 문미희 선생님 그리고 생태기행을 준비해주신 여섯 명의 선생님들께 마음 속 깊이 존경과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또 힘들었지만 무리한 일정을 참고 잘 견디어준 학생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 전합니다.

아름다운 제주, 생태기행과 함께 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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