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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8일 저녁 9시 30분]

▲ 구상나무
ⓒ 한석종
▲ 누에가 허물을 벗 듯 여린 싹이 힘겹게 허물을 벗고 있다.
ⓒ 한석종
지난 휴일(6월 6일) 비움산수회 가족들과 지리산 바래봉으로 산행을 다녀왔다. 5월 중순 바래봉의 온 능선을 그야말로 화려하게 수놓았던 철쭉꽃은 이미 지고 메마른 흔적만이 그때의 영화를 짐작케 했다.

철쭉꽃은 저버렸건만 바래봉으로 가는 길목마다 또 다른 이름 모를 꽃들의 향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남원 운봉 용산마을- 운지사 갈림길- 철쭉샘- 지능선- 주능선 삼거리-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산행길을 잡았다.

입구에서부터 차 한대가 올라갈 만한 완만한 경사의 임도가 잘 닦여져 있어 그 길을 따라 등반하기에는 별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길가에 땡볕을 가려줄 만한 수림이 전혀 없어 뜨거운 햇볕을 고스란히 안고 가야 하는 고행길이었다.

▲ 이제 막 허물을 벗기 시작한 여린 새싹이 햇살에 섬광처럼 빛나다.
ⓒ 한석종
임도는 시야가 훤히 트여 지대가 높은 남원 운봉의 길고 드넓은 들판이 한눈에 시원하게 펼쳐졌다. 지리산 고리봉에서 뻗어 내려와 새로운 행진을 시작하는 백두대간은 운봉 바닥을 형성하는 밥그릇의 가장자리처럼 보였다.

남원 방향에서 여원치를 막 넘어 오기 전에 위치한 고남산은 꽤 험준한 산이지만 바래봉에서 보면 나즈막한 동산처럼 보인다. 그만큼 남원 운봉의 지대가 높이 위치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운봉벌은 인근 평지보다 삼백여 미터 이상 높이 둥근 사발 그릇 모양을 하고 공중에 떠 있는 셈이다.

유월 초순임에도 삼십 도를 웃도는 날씨에 우리 일행은 그 땡볕을 고스란히 안고 비지땀을 소낙비처럼 쏟으며 더 이상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바래봉 정상 바로 턱밑에서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운 좋게도 우리 지척에는 이 폭염과 갈증을 한 방에 날려 버릴 청량한 약수가 무심하게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목을 축인 우리 일행의 다시 산행은 계속되었다.

▲ 허물을 막 벗어 던진 여린 새싹들의 자태가 맑고 곱기기만 하다.
ⓒ 한석종
1100고지서부터 다른 나무는 찾아볼 수 없었고 구상나무만이 듬성듬성 서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구상나무 이파리마다에는 섬광처럼 광채가 빛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이게 웬일인가, 구상나무가 허물을 벗고 있지 않는가!

뱀이 이맘 때쯤 허물을 벗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나무가 그것도 구상나무가 허물을 벗고 있을 줄은 꿈엔들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분명 허물을 벗고 있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처음엔 나 혼자 보다가 내 눈이 의심스러워 아내를 불렀고 아내는 급기야 우리 일행 모두를 불러 모았다. 이런 구상나무의 허물을 보느라 소란스런 우리 일행의 모습은 바래봉 정상을 향하여 이를 악물고 힙겹게 마지막 스퍼트를 내고 있는 사람들의 집중력을 흩어 놓았다.

바래봉을 지척에 두고서 한참 동안 구상나무를 자세히 살펴봤다. 이미 허물을 벗고 파릇파릇한 자태를 뽐내는 놈도 있었고 지금 막 힘들게 허물을 벗고 있는 놈도 있었다.

▲ 허물을 완전히 벗고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커 가는 여린 새싹.
ⓒ 한석종
▲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여린 새싹이 잘도 어울렸다.
ⓒ 한석종
▲ 새순 사이로 장쾌하게 뻗은 지리산의 여러 능선
ⓒ 한석종
▲ 구상나무 바로 옆에서 이름모를 들풀 또한 허물을 벗고 있다. 봄은 허물을 벗는 시즌인가 보다.
ⓒ 한석종
▲ 두팔 벌려 손을 내밀고 있는 구상나무, 마음을 열어 우리 서로를 보듬자는 메시지.
ⓒ 한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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