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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2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선생은 그 때 고전과 한문을 가르쳤다. 김진경 선생이 참여정부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에 내정되었다는 뉴스가 나오자 두 가지 기사가 눈에 띄었다. 당시 선생에게 배운 제자들에 대한 기사와 <조선>과 <동아>의 사설이었다.

내 기억 속의 선생은 온화하고 지성적인 분이었는데 기사에 나온 선생은 잘못 읽으면 마치 고등학생들 수업시간에 불온한(?) 이야기만 하신 분 같다. 내 기억 속의 고진화 의원과 양정철 비서관은 마음이 따뜻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어서 김진경 선생이 아니었어도 암울하고 부정한 당시의 사회 현실에 이미 눈떠 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조선> <동아> 사설 분위기는 김진경 선생을 시대착오적이고 경직된 평등주의자로 보는 듯하다.

얼마 전 선생이 새로 쓴 교육에세이 <미래로부터의 반란>에 관한 기사를 <오마이뉴스>에서 읽고 서둘러 책을 구해 읽었다. 이미 선생 인터뷰 기사가 많은 것을 다루었으니 한 가지만 지적하자. 교육의 '수월성'과 '평등'에 대한 선생 생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선생은 아이들의 수월성이 부모의 경제 능력과 같은 가정환경, 다시 말해 사회구조적 제약으로 좌절되지 않는 것이 교육의 평등이라고 본다. 그럼 왜 수월성 교육과 평등교육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있나? 그건 집단의 이해일 뿐이라는 것이다.

김진경 교육문화비서관 내정에 대한 <조선일보> 5월 23일자 사설('대통령의 교육관이 궁금하다')은 놀랍다. 우선 한 구절을 인용해 보자.

"전교조와 현 정부의 교육개혁론자들은 대학 서열화 철폐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왔다."

대학 서열화 철폐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란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우리가 허리 펴고 떳떳이 살 수 있는 길은 우수하고 창조적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밖에 없다."

그럼 현재와 같은 대학 서열화가 우수하고 창조적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인가? 아닐 것이다. 대학교육의 질적 제고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있다.

김진경 비서관의 최근 교육에세이를 읽어보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을 달성한 시점에서 대학교육에 대한 투자가 그 후의 경제발전과 상관성이 있다는 여러 나라의 자료를 제시하면서 우리 대학교육의 질적 수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조선>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이 정권은 우수한 사람을 길러내고 그들의 창조성을 북돋워 나라의 살길을 개척하려는 생각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능력 있는 사람을 끌어내리는 평등교육의 깃발로 평등사회를 실현시키고…."

우수한 사람을 길러내고 창조성을 북돋을 생각이 없기 때문에 김진경 선생을 기용하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그럴까?

<조선일보>는 우수하고 창조적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 아이들의 창조성을 북돋는 교육은 평등교육과 대립한다고 본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신임 교육문화비서관은 그렇지 않다. 우수하고 창조적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이 평등교육하고 대립한다는 인식 자체가 바로 우수하고 창조적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을 가로 막고 있는 이해집단의 산물이라는 것이 김진경 비서관의 생각이다. 이런 면에서 그는 최근 전교조의 행보에 대해서도 조심스런 입장이다.

모두가 똑같은 교과서를 배우고 똑같은 시험을 치러 아이들을 한 줄로 서열 짓는 우리 교육 현실이 우수하고 창조적으로 될 수 있는 아이들을 가두어 두고 있다는 것이 김진경 비서관의 생각이다.

<조선일보>는 대학서열의 철폐가 우수하고 창조적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을 망가뜨릴 것이라고 걱정하지만 표준화된 시험으로 점수 따기 경쟁의 교육이 우수하고 창조적 인재를 길러낼 수는 없다는 것은 다만 김 비서관의 생각만은 아니다.

교실을 구성하고 있는 아이들은 표준화된 교과를 습득하는 능력에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차이가 나는 만큼 그들은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 다양한 관심에 봉사하는 교육을 생각하는 것이 김 비서관이다. 지식기반산업사회에서는 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창조적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면서도 표준화된 지식의 수월성과 평등성의 대립이라는 늪에 빠져 있는 우리 교육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김진경 비서관이 조금이나마 바꾸어 놓을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한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시험성적이 좋은 학생을 뽑는 데만 치중하는 대학을 비판한 것은 뽑아가기만 하고 학생을 우수하고 창조적으로 길러내기는커녕 4년 후 오히려 학생들 수준을 떨어뜨리는 대학교육에 대한 비판이지 우수한 학생을 확보하려는 대학의 노력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의 최고를 자처하는 대학의 신입생 수준은 세계 어느 대학에 내놓아도 자랑할 만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 아닌가?

앞서 말했듯이 우리 대학 교육이 질적 수준의 도약을 이루어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김 비서관이다. 김 비서관은 서열을 철폐하는 것에 관심 있지 않다. 그는 건설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것이 서열의 폐단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없애려고 하기보다 아마 새로운 시각을 열어 놓을 것이다.

김 비서관은 "학력을 경시하고 하향 평등주의"(5월 23일자 동아일보 사설 '전교조 원조' 교육비서관에 앉힌 뜻은')를 해서는 안 된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생각의 틀을 바꾸어 줄 수 있을까? 그 초석을 놓아주시길… 손을 모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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