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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꾸물거리는 구름의 모양새가 썩 내키지는 않지만 먹장구름이 아닌 것으로 보아 비는 내리지 않겠다. 그래도 나무의 흔들거림은 거칠다. 바람이 꽤나 칼칼하게 불어대는 듯하다.

오늘은 4월 3일 ‘제주4.3사건희생자 범도민 위령제’가 있는 날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곳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설 채비를 한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반의 준비를 한다. 여러 겹의 옷을 껴입고 모자와 장갑을 챙겨 넣었다. 감기기운이 있으신 아버지는 겨울 외투에 마스크까지 착용하셨다.

차를 몰아 4.3 평화공원으로 향하는 봉개동 입구로 들어섰다. 평소보다 10분쯤 늦게 나온 게 마음에 결렸었는데 역시나 2차선 도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동차 행렬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이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끝도 없는 행렬은 위령제가 열리는 평화공원까지 이어졌다. 평소엔 20분 정도면 다다를 수 있는 거리였지만, 오늘은 그보다 배 이상이 걸려 도착했다.

▲ 식전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 조미영
▲ 위령제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유족들의 모습
ⓒ 조미영
이미 행사장에서는 원혼을 위무하는 식전공연이 한창이다. 그리고 이를 촬영하기 위해 수많은 카메라맨들이 운집해 있다. 앉은 좌석에서는 그들의 뒤통수밖에 볼 수 없지만, 유족들은 물끄러미 앞을 응시한다. 읍면단위로 아침 일찍부터 차를 타고 온 유족들은 이렇게 오랫동안 앉아있었던 듯 추위에 잔뜩 웅크려 있다. 워낙 바람이 많은 제주 섬이라 어느 정도 단련이 되었을 법도 한데, 이렇게 산자락에서 불어대는 칼바람에는 몸이 오그라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꼼짝 않고 자리를 지켜 앉는다. 사뭇 비장함까지 감돈다.

각급 단체장들이 속속 자리를 채우고 11시쯤 되어 이해찬 국무총리가 도착했다. 국민의례를 하고, 유족회장의 경과보고에 이어 고유문(告由文 ), 주제사, 추도사, 추모글 낭독, 그리고 헌화 및 분향으로 공식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뒤이어 유족들의 헌화가 이어졌다. 작년과는 달리 위패 봉안실을 10배 이상 늘린 탓에 원활하게 참배가 이루어졌다.

▲ 헌화를 하는 모습들
ⓒ 조미영
▲ 위패가 모셔진 봉안소 내부
ⓒ 조미영
참배를 마치고 봉안실을 나오니 어느새 일만 명이 넘는 유족과 관계자들로 꽉 들어찼던 행사장은 휑하니 빈 의자들만 덩그렁 하다. 썰물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은 빠져나가고 일부는 점심을 먹기 위해 각 지역별로 모여 있다. 도시락 배급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마치 통과의례를 치르듯 일사천리다. 내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귀동냥이나마 기대했던 나는 묵묵히 밥만 먹어야 했다. 위령제가 시작될 때까지의 애틋함과 끈끈함은 더 이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시간이후로 먼지바람을 견디며 앉아있을 이유는 없다는데 만장일치 동의라도 한 듯 사람들은 빠르게 사라져갔다.

▲ 마을별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제사가 끝나고 음복을 하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 조미영
공원 입구 쪽에 마련된 시화전도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지 못한다. 식전행사 때에도 내내 카메라맨에 가려 앞을 볼 수 없었지만 누구하나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내용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무언가를 대단하게 하고 있다는데 의의를 두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국가에 의한 공식의례라는 것에 더 큰 의의를 두고 있기 때문이리라!

50여년이 넘는 아픔도 이렇게 1시간여의 공식일정으로 말미암아 희미해져 간다. 긴 세월동안 끝없이 복받치던 울음들도 이제는 멈추었다. 모두다 해원과 상생을 한 것은 아닐 터인데 이상하리만치 감정은 건조하게 말라붙는다. 미래의 평화를 위한 기원의 말씀들 앞에서 과거의 반추는 어울리지 않는 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탓이다. 또한 아스라한 한라산과 오름들을 가리고 턱 버티어선 축조물의 위용도 낯설고 부담스럽다. 다만 나라의 높으신 분들이 이 자리에 같이 참석해 주셨다는 데 위안을 얻는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여기까지 와서 찬바람을 마다않고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늘 이 시간은 국가에 의해 인정받고 위로 받을 만큼 떳떳하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는 자리이다. 가슴 졸이며 살아온 세월동안 제2국민쯤으로 버려져온 유족들에게는 그래서 오늘이 중요하다. 우리도 당당한 국민임을 확인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신님들의 억울한 죽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유족들에게 그간의 시간은 인고의 세월이었다.
ⓒ 조미영
하지만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는 것으로만 멈추어서는 안 된다. 역사를 교훈삼아 비극이 되풀이됨을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령제가 박제화 되어가는 것에 경계를 해야 한다. 유족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분위기야 말로 어떤 역사교과서 보다 교훈적일 것이다. 위령제를 위한 기다림은 여기까지가 아니라 여기서부터 시작일 수 있어야 한다.

▲ 봉안소 입구의 모습
ⓒ 조미영
▲ 4.3 평화공원의 임시 전시물들
ⓒ 조미영
공원을 빠져나오면서 역시 기다란 차량행렬이 이어졌다. 내리막길이라 멀리 길게 늘어선 차량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봉안소에 새겨진 1만3700여명의 위패에서도 실감을 못한 희생자의 수가 현실감 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비록 차량으로 이어진 줄이었지만 숫자감각에 둔감한 나의 두뇌는 흥분하고 말았다. 일말의 감정도 전달받을 수 없었던 4.3평화공원에서의 위령제와는 달리 시속 20㎞ 이내로 밖에 달리 수 없는 차안에서 많은 생각이 교차해 갔다.

▲ 유족들은 나랏님들의 말씀을 아로새기며 돌아간다!
ⓒ 조미영
웬일인지 이쯤이면 온갖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거리의 나무들이 꽃 봉우리조차 영글지 못하고 있다. 예년보다 날씨가 쌀쌀한 모양이다. 그랬다. 몇 월 며칠이 되었다고 꽃망울이 탁 터지지는 않는다. 순리는 달력의 날짜에 얽매이는 게 아니었다. 자연의 법칙에 충실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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