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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이야기 5]"엄마 아빠, 제발 이혼하지 마세요"

새해 벽두부터 왜 이리 이혼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창원지방법원에서도 어제 하루만 해도 14쌍이 이혼을 했습니다. 14쌍이면 이혼 당사자만해도 28명입니다. 한 가족당 아이가 두명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총 56명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어제 하루 사이에 56명이 이산가족이 되었습니다.

저는 사건 번호 순서대로 이혼부부를 부릅니다. 한 부부(夫婦)가 법정에 들어섭니다. 그런데 여자가 고집을 피웁니다. 같이 앉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제가 부부에게 말합니다.

"아주머니,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릅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좋게 지내세요."
"그렇게는 못합니다. 보기만 해도 역겹습니다."
"아주머니, 그럼 오늘 이혼 못합니다. 빨리 남편 옆자리에 앉으세요."

그제야 마지못해 여자가 남자 옆에 앉습니다. 판사가 이들 부부에게 묻습니다.

"두 분께서는 20년 넘게 사셨습니다. 새삼 이제 와서 이혼을 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도저히 성격이 맞지를 않는데요."
"성격이 딱 들어 맞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서로 양보하면서 살아가는 거지요."
"아닙니다. 오죽했으면 이렇게 법원에까지 왔겠습니까. 그냥 이혼 시켜 주십시오."

판사는 몇 번 더 설득해 봅니다. 그러나 부부는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할 수 없다는 듯 판사가 이혼을 확인시켜 줍니다. 저는 다른 부부를 부릅니다. 이번에는 젊은 부부입니다. 남자가 갓난아기를 안았습니다.

순간 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판사도 표정이 어둡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판사에게 기대를 걸어 봅니다. 잘 설득해서 이혼 의사를 철회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판사가 이들 부부에게 묻습니다.

"아이가 아직 어리네요. 태어난 지 1년도 안되었습니다. 꼭 이혼을 해야겠어요?"
"가정 불화가 너무 심해요."
"그래도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을 한 거 아니겠어요. 사랑으로 극복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심각하세요?"
"판사님, 그냥 이혼 시켜 주세요."

"제가 할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분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에요?"
"우리라고 어디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헤어지는 게 서로에게 좋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군요. 아이는 남편이 맡는다고 하는데, 맞으세요?"
"예."
"남편 되시는 분, 부인에게는 아이에 대한 면접 교섭권이란 게 있습니다. 이혼하시더라도 부인에게 아이를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14쌍이 이혼을 하는데 3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혼 의사를 철회한 부부는 한쌍도 없었습니다. 판사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혼 기록을 정리하며 제게 말합니다.

"마음이 영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매번 마음이 아픕니다."

판사가 법정을 나갑니다. 저는 다시 이혼 당사자들을 법정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들에게 다음 절차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이제 이들 부부는 호적 관서에 가서 신고만 하면 그때부터 남이 됩니다. 그들이 법정을 나갑니다. 저는 복도까지 그들을 따라갑니다. 그들 뒷모습이 무척 쓸쓸합니다. 그때 환청처럼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직원들이 제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박 계장님, 이혼 많이 시키면 천당에 못 갑니다."

저는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콧등이 여간 시큰한 게 아닙니다. 왜들 그렇게 헤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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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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