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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준수가 구급차에 실려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하던 때 제가 입고 있던 옷이 반팔 티셔츠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주말엔 두꺼운 옷을 입고 세브란스 병원으로 갑니다. 깊어 가는 겨울만큼 추위도 심해진 탓이지요.

준수가 입원한 후 저희 가족에게 가을은 없었습니다. 준수와 아내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광수는 원주에서, 저는 영월에서 헤어져 살면서 보낸 시간들입니다. 언제 단풍이 들었는지, 그 단풍이 언제 낙엽이 되어 떨어졌는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이번 겨울은 그 어떤 겨울보다 견디기 어려운 겨울이 될 거 같았습니다. 시린 손을 보듬어 감싸줄 가족이 함께 살지 못하고 헤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준수의 병상 생활을 떠올리면 더욱 추위가 심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번 겨울은 생각처럼 그렇게 춥지 않았습니다. 시린 손을 보듬어줄 가족이 헤어져 생활하는 대신, 눈물겹도록 고마운 이들이 따뜻한 격려와 사랑을 베풀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준수가 수술 받고 치료를 받는 동안 제가 근무하던 학교에는 많이 소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능고사를 한 달 정도 앞둔 때에 3학년 담임이었던 제게 닥친 시련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반 녀석들은 불평 한마디 없이 담임의 빈자리를 채워주었습니다.

수시모집 원서를 옆 반 담임선생님께 부탁해서 쓴 웅이는 그 날 저녁 병원에 있는 제게 전화해서 준수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연세대 수시모집 면접을 보러온 상민이는 면접 보러 가기 전에 먼저 준수의 병실에 들러 준수를 위해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 이기원
수술이 끝나고 담임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녀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토요일 오후 교실이며 화장실을 깨끗이 청소했다고 합니다. 내가 베푼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내게 주었던 녀석들의 사랑 앞에서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준수의 투병일지를 연재하면서 많은 분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따뜻한 마음을 보내주셨습니다. 멀리 제주도에서부터 가까운 경기도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알고 지내온 이들은 물론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분에 넘치는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셨습니다.

ⓒ 이기원

ⓒ 이기원

ⓒ 이기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어찌 보면 준수가 아빠에게 준 선물인지 모릅니다. 더불어 사는 게 소중하다고 말만 할 줄 알았던 제게 이웃이 무엇인지 정이 무엇인지 더불어 나누는 사랑이 무엇인지 이보다 더 절실하게 느낀 적이 없습니다. 그게 다 준수의 투병으로 인해 비롯된 것입니다.

ⓒ 이기원
많은 이들의 고마운 격려와 성원에 힘입어 오늘도 준수는 힘차게 재활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제 의자에 의지하지 않고 힘겹게 일어설 정도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다리 근육과 엉덩이 근육에 힘이 붙게 되면 본격적인 걷기 훈련을 시킬 거라고 합니다.

어느 해보다도 힘겹고 추운 겨울이 될 거라던 생각과는 달리 그 어느 겨울보다 훈훈하고 따뜻한 정을 느끼는 겨울입니다. 저희 가족에게 닥친 시련을 극복할 수 있도록 사랑과 정을 베풀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깊은 사랑을 또 다른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재활 훈련을 받고 있는 준수와 함께 여러분의 고마움을 소중히 간직하고 살겠습니다. 절망과 희망을 함께 경험한 한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의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시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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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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