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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준수의 수술을 마치고 녀석을 아내에게 맡기고 병원 문을 나설 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일어나 앉을 수도 없고 밥도 제 손으로 먹을 수 없는 상태, 오줌도 똥도 제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태인 준수를 병원에 두고 떠나야 하는 심정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쉽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마땅하게 돌봐줄 친척이 살고 있지도 않은 서울에서 아내 혼자 모든 병 수발을 해야 하는 일이 걱정이 되었지요. 수술 전까지 제대로 먹지도 못하던 아내였습니다. 준수의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면서 아내도 기운을 차리고 잘 먹고 있다고는 하지만 원래부터 아내는 먹성이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어르신들 표현대로 한다면 입이 짧은 편입니다.

준수 몫으로 주어지는 식사에 밥 한 공기 추가해서 먹는 게 입맛에 맞을 리 없는데 그렇다고 무작정 식당 밥을 사서 먹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요. 병원 가까운 곳에 챙겨줄 친척이라도 있었으면 이따금 반찬이며 따뜻한 밥을 챙겨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상황도 못되었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한 달 이상을 환자 침대 옆의 조그만 보조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며 준수를 간호해온 아내는 제 걱정과는 달리 잘 버티고 있습니다. 준수의 몸 상태에 따라 기복이 심하지만 그래도 생각 이상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엄마의 힘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준수는 안간힘을 써 상체를 일으켜 앉을 수도 있습니다. 누워서 떠 먹여주던 밥을 이젠 앉아서 제 손으로 먹을 수도 있습니다. 관장이나 관을 통해 배설을 해야 했던 단계에서 이제는 제 힘으로 배설을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준수가 엄마 생각을 많이 해줍니다. 오전 일곱시 조금 넘으면 병실의 아침 식사가 시작됩니다. 새우잠 자며 한 달을 지내온 아내가 입맛이 없다며 밥을 남길 기미가 보이면 준수가 엄마 앞에서 시위를 한답니다.

"엄마 밥 안 먹으면, 나도 안 먹어."

그 말이 무서워서 아내는 어쩔 수 없이 밥을 먹게 된다고 합니다. 하반신이 마비된 상태에서 제 몸 버티기도 힘들텐데 엄마까지 생각하는 걸 보면 녀석이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젠 엄마를 생각할 만큼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있다는 쪽으로 해석해보기도 합니다.

아내의 욕심만큼 준수의 상황이 빠르게 회복될 거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희망이 보입니다. 힘이 든 아내가 전화에 대고 맥빠진 소리를 하면 하루 종일 우울합니다. 그래도 마음을 진정시키며 직장 일을 할 수 있는 건 준수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때로는 준수가 엄마를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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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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