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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계싯소. 여그 연동마을이요. 혹시 이번 주 토요일 날 임실 집에 가요?”
“예, 갈 것 같은데요.”
“글먼 우리 집에 댕기서 가싯쇼. 작년에 닭 잡아줄 때 섬다더게(소홀하게) 잡아줘서 늘 맘에 걸렸는디 올해는 집이 몫까지 닭을 키웠응게 잡아줄라고 그러요.”

“에이, 뭔 닭을 또 잡아준다고 그러세요. 자식들과 사위들 오면 잡아주세요.”
“아니요. 집이 몫으로 더 키웠응게 꼭 들렸다 가싯쇼 잉.”
“예, 알았습니다. 그러면 들렸다 갈 테니 힘들게 닭 잡지 말고 그냥 놔두세요. 닭집에 가면 금방 잡아주니 작년처럼 절대로 잡아서 끓여놓지 마세요.”
“닭 삶아줄라고 젠작 인삼이랑 사다 놓았는디….”

▲ 연동 어머니 집에 있는 닭장
ⓒ 김도수
주말 오후, 고향집에 갔다가 일요일 오후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곡성 연동마을에 들렀다.

연동 어머니는 혹시 집에 없을지도 모르니 미리 전화를 하고 오라는 말에 연동마을에 도착할 즈음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 대신 젊은 아가씨가 전화를 받는다.

“부산 사는 손녀인데요, 할머니께서 조금 전에 밭에 나가셨거든요. 금방 온다며 아저씨께 혹 전화 오면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그러잖아도 할머니께서 아저씨 기다리고 계셨어요.”

올 봄, 연동 어머니는 부화된 토종 닭 12마리를 사서 마당 한켠에 있는 닭장에 키우기 시작했다. 아들과 사위가 오면 잡아주고 또 추석 명절이나 제사상에 올리려고 닭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연동 어머니는 닭장 앞에 있는 헛간을 철망으로 막아서 닭들이 운동을 하며 클 수 있도록 했는데 부화된 토종 닭 12마리는 한 마리도 죽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나 닭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연동 어머니는 내게 가장 큰 닭을 잡아주려고 닭장 속에 있는 닭들을 이리저리 살폈다.

“닭들이 아직 다 크지는 안 했소만 그래도 거의 다 큰 것 같으요. 작년에 제일 큰 닭을 잡아서 달아봉게 5키로가 나갑디다. 제사 지내러 부산 아들네 집으로 갖고 가면 어치게 크던지 다들 놀래부요. 근디 왜 이렇게 큰 닭이 안 잽힌데아. 큰 닭이다 싶어 잡아보면 별로 근수가 안 나간 것 같고 닭들이 다 고놈이 고놈인 것 같고만….”

“어쩐대요, 자식들과 사위들 아직 햇닭 맛도 못 보았을 텐데 제가 먼저 맛보게 되어서 식구들에게 겁나게 미안허네요.”
“그런소리 맛쇼. 자식들이나 사위들 내가 알아서 골고루 다 잡아준게 신경쓰지 말고 갖고가서 애들이랑 삶아서 묵읏쇼.”

연동 어머니는 12마리 중 가장 큰 닭을 잡아 날개를 묶어 종이 박스 속에 넣고는 저녁밥 먹고 가라며 밥을 안친다. 밥을 다 안친 어머니는 아무래도 가장 큰 닭이 안 잡힌 듯 뜰방 박스 속에 들어 있는 닭을 들었다 놓았다 하더니 다시 닭장으로 간다. 닭장 속에 든 닭들을 요리조리 살피더니 “아무래도 요놈이 제일 큰 것 같고만…” 하시며 닭을 다시 잡더니 박스 속에 들어있는 닭과 바꾼다.

▲ 내 고향 진뫼마을 돌담 위에 열린 호박
ⓒ 김도수
밭에서 막 따온 참외를 하나 깎아먹고 있는데 연동 어머니는 이웃집에 놀러 간 앞 집 겸면 어머니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전화를 계속 해댄다.

“겸면 떡이요, 우리 집에 시방 순천 사위 왔고만. 얼릉 와.”

잠시 후 도착한 겸면 어머니는 안방에 들어서자마자 “성님, 비도 오고 그렁게 우리 순천 가서 저녁이나 함께 묵고 옵시다. 어쩌요, 순천 사위도 공일잉게 특별한 약속 없겄제.”

겸면 어머니는 친한 이웃집 어머니 두 분을 더 불러 순천에서 친척이 운영한다는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식당은 공교롭게도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옆에 있었다. 겸면 어머니는 우리 집을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어서 여기까지 오셨으니 잠깐 집에 가서 차라도 한 잔 마시자며 연동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모시고 갔다.

우리 집을 방문한 겸면 어머니는 집을 한 바퀴 빙 둘러보고는 “식당에 사람들 안쳐 놓고 우리들이 여기서 한가롭게 차 마시고 있으면 안 됭게 빨리 가자”며 아내와 애들에게 함께 저녁 먹자고 외출준비를 서두르란다.

겸면 어머니께서 사준 갈비를 맛있게 먹고 연동마을로 출발하려 하는데 연동 어머니는 내게 “어서 닭 집에 가서 닭 잡아붓쇼. 닭을 묶어 논게 살 다 빠져분고만….”

일행 분들께 식당에서 잠시 담소를 나누며 기다리라고 해놓고 닭집에 가서 닭을 잡으려 하는데 닭 잡는 기계가 없단다. 그 닭집에서는 잡아 놓은 닭을 공급받아서 팔지 직접 닭을 잡아 팔지는 않는단다.

닭을 묶어 놓아 살 빠지니 얼른 잡으라는 연동 어머니 바람을 뒤로하고 일행 분들을 모시고 연동마을로 향했다. 연동 어머니 집에 도착한 나는 아파트에서는 닭을 잡기가 곤란하여 여기서 닭을 잡아가야겠다고 말하니 재빨리 물부터 끓인다.

연동 어머니와 함께 닭을 잡는다. 뜨거운 물에 닭을 담근 뒤 닭털을 뽑는데 나는 뜨거워서 빨리 못 뽑겠는데 어머니는 빠른 손놀림으로 잘도 뽑는다.

내 어머니도 봄이면 둥그런 망태기 속에 어미 닭에 알을 품게 하여 병아리를 부화시켜 마당 한켠에 있는 닭장에 여러 마리의 닭을 길렀는데 매형이 오면 어머니는 꼭 닭을 잡아주었다.

어머니는 닭장 속에 든 닭들을 요리조리 살피며 그 중 가장 큰 닭을 잡아 나더러 강가에 나가 닭을 잡아오라 했다. 그러면 나는 강가로 나가 닭털을 뽑고 볏짚을 태워 하얀 잔털을 제거했다. 내장은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못하는 것들을 가려내 씻었는데 그 중 모래주머니와 기다란 창자를 끝까지 졸졸 따서 굵은 소금을 뿌려가며 돌 위에 비벼 깨끗이 씻었다.

20년이 흐른 뒤 닭을 잡다 보니 내장 중에서 먹을 것과 버릴 것을 잘 가려내지 못하고 모래주머니와 긴 창자 따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고향에 어머니 살아 계실 때 저도 닭 많이 잡아봤는데요, 오랜만에 잡아보니 잘 안 되네요.”

“그러제 하먼. 요새는 누가 창자 같은 것은 따가디(칼로 창자를 따서 똥을 버리고 씻는 것). 귀찮응게 다 버려불고 안 묵제. 닭이 아직 쪼께 더 컬 수 있는디 지금 잡아 묵으면 고기가 연히서 아주 맛있을 것이요. 닭들이 운동을 허면서 커서 아마 쫄깃쫄깃 허니 맛있을 것이고만이라우.”

▲ 지난 봄, 연동마을 어머니 집에 간 아들과 딸
ⓒ 김도수
닭을 잡아 연동 어머니 집을 나서는데 자식도 사위도 아닌 내가 어머니께서 봄부터 애쓰게 키운 닭을 처음으로 먹게 되니 연동 어머니와 식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연동 어머니는 승용차가 주차 된 골목까지 따라와 “비가 내려 도로가 미끄러웅게 조심히서 천천히 운전허고 가라”며 몇 번을 당부한다.

“예, 어서 들어가세요. 천천히 운전하고 갈께요. 요 닭, 식구들과 맛있게 먹을게요.”
“애기 엄마한테 인삼이랑 대추랑 밤, 마늘 넣고 푹 삶아서 먹으라고 헛쇼. 글고 닭 국물에 녹두허고 찹쌀 넣어서 죽 끼리 묵으면 참 맛있소.”

어서 집으로 들어가시라고 해도 어머니는 컴컴한 골목 길에 계속 서 있다.

“또 오싯쇼 잉. 나는 언제나 차가 마을을 다 빠져나가야 집으로 들어강게 어서 조심히서 운전허고 가싯쇼.”

연동 어머니는 컴컴한 골목길에 홀로 서서 멀어져 가는 내 승용차를 향해 계속 손을 흔들고 계셨다. 연동마을 어머니와 함께 오랜만에 잡은 닭을 끓여 가족끼리 오순도순 맛있게 먹는다.

딸내미는 맛있는 토종닭을 뜯으며 “아빠, 연동 할머니 참 인정 있는 분이지요 잉. 할머니 자식들과 손자들도 많다는데 친척도 아닌 우리까지 닭을 잡아주고….”

아들 녀석은 닭이 쫄깃쫄깃하니 맛있었던지 한 다리 들고 맛있게 뜯다가 누나가 연동 할머니 이야기를 꺼내자 한마디 거든다.

“아빠가 연동 할머니 사위잖여. 긍게 닭을 잡아주제 안 그러면 잡아주겠어.”

아내와 나는 피식 피식 웃다가 기어이 밥상에 밥알을 뿌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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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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