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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정국은 국민들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나. 어떤 이들은 비온 뒤에 땅이 굳는 법이라며 광화문 광장에서 희망을 봤다고 얘기하고, 또 어떤 이들은 군사독재 후계자들이 민주주의의 꽃을 다시 한번 꺾었다며 분통을 터트린다. 87년 6월항쟁 17년, 그리고 2004년 봄. 한국 민주주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오마이뉴스는 우리 사회 원로들을 찾아 길을 묻는다...편집자 주)

"종철아! 잘 가그래이∼"

▲ 박정기 유가협 이사장은 T셔츠 차림으로 앉아 있다가 '사진은 예의를 갖춰 찍어야 한다'며 서둘러 양복을 꺼내입고 포즈를 취했다.
ⓒ 장윤선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학생 박종철이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고문으로 숨졌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신문 활자는 독재에 시름하던 국민들이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었다.

너나없이 거리로 쏟아져 밤새 민주주의를 성토했고, 정국은 삽시간에 고문정권 규탄과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열기에 휩싸였다. 1987년 6월항쟁의 서막은 그렇게 열렸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이사장. 그는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다. 17년 전 독재정권에게 아들을 빼앗긴 노인은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저녁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한다. 16일 오후 2시 서울 동대문 유가협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나는 이번 탄핵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큰 장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87년 당시 군사독재의 아성을 물리친 장본인이 바로 우리 국민입니다. 정치인이나 재벌처럼 힘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어떻게 국회의원들이 비민주적으로 탄핵할 수 있습니까."

17년의 세월동안 백발이 더욱 성성해진 박 이사장은 "헌법재판소 첫 평의 때부터 탄핵을 단행한 국회의원들을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적으로 헌재가 잘 판단하겠으나 현재 흘러나오는 국민 여론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87년 6월항쟁에서도 국민들이 독재정권을 뒤엎는 결정적 역할을 했었거든요. 민주주의의 퇴보를 가져와서는 안 됩니다. 헌재는 지금 들끓고있는 국민의 함성과 판단을 귀기울여주시기를 바랍니다."

박 이사장은 '진심으로 헌재에 당부한다'고 몇 차례 청유형 어미로 얘기했다. 그는 "사법부의 판결로 시시비비가 가려지겠지만, 어느 하나 한쪽으로 쏠리지 말고 법률가의 양심에 따른 목소리를 내기 바란다"며 "국민의 법 감정을 거스르는 처사가 나타나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가 거듭해서 법률가들에 호소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87년 6월항쟁 당시, 작열하는 태양 아래 아스팔트는 녹아 내리고 최루탄이 난무하던 그 거리의 상흔이 다시는 우리 역사 속에서 되풀이되지 말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박 이사장은 기억을 더듬어 17년 전, 역사 속으로 돌아가 탄핵가결을 주도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 박정기 이사장이 독재정권에게 고문당해 숨진 아들 고 박종철 열사의 동판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 장윤선
"탄핵가결 주도한 한나라당 의원 대부분은 과거 독재정권에 기생했던 사람들이라고. 물론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소장파를 지지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더 나빠. 탄핵반대를 표시했다가 다시 찬성한 사람들이에요. 그건 권모술수지."

박 이사장은 87년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가 치미는 모양이다. 온화하던 노인의 낯빛이 어느새 붉어졌다.

"국민들은 그런 사람들 용서 안 합니다. 4월 15일날, 보자고! 우리 국민들, 이제 바보 아니에요. 벌써 수십 차례 선거를 경험했잖아요. 민주주의가 뭔지, 왜 좋은 건지, 우린 다 알아요. 그런데 아직도 정치인들은 우리 국민을 바보 취급한다고. 그게 참 기분 나쁘지요."

지난 12일 탄핵안이 가결되던 날, 박 이사장은 유가협 회원들과 함께 TV 수상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라의 체통과 위신이 한꺼번에 날아갔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

"우리가 해방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또 이런 일을 맞는 거예요. 조순형 의원, 자기 아버지가 친일파입니다. 최병렬 의원, 잘 아는 것처럼 군사독재시절 민정당 골수 멤버지요. 박관용 국회의장, 87년 당시엔 부산 동래갑구 국회의원 했지만 오랫동안 YS 비서실장 했던 위인이에요. 박 의장도 말이에요. 16대 국회 얼마나 남았다고, 유종의 미를 보이지. 아마 죽어도 12일 탄핵하던 날은 목에 걸릴 거야."

"나 하나가 민주주의에 도움된다면 몸뚱이를 아낄 수 없지"

▲ 박정기 이사장은 "아무리 늙고 허리가 휘어도 내 한 사람이 민주주의에 도움이 된다면 몸뚱이를 아낄 수 없지…"라고 말했다.
ⓒ 장윤선
박 이사장은 내성적이라 좀체 남들과 얘기를 안 하는 성격인데, 요즘 택시를 타면 기사들이 하도 말을 시켜 종종 얘기를 하게 된다며 한 토막의 대화를 들려주었다.

"촛불집회 끝나고 늦은 시각 집에 갈 때 택시를 타요. 기사들은 탄핵정국과 관련해서 손님들에게 많은 정보를 주더라구요. 어떤 기사는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할아버지, 이번 총선에서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투표하셔야 됩니다, 안 그러면 나라 큰일나요라고 말하더군요.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거예요. 정치에 관심 없던 서민들도 뉴스에 귀를 쫑긋 세운다고."

민심을 읽는 할아버지가 된 박 이사장은 매일 밤마다 촛불시위에 참석하는 게 고단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청년의 얼굴로 돌아가 답했다.

"아이구, 무슨 소리예요. 87년 6월항쟁 때는 매일 아스팔트에 앉아 뙤약볕에서 소리를 질렀어요. 한낮엔 태양이 이글이글 타올라서 아스팔트에 발자국이 꾹꾹 난다고. 그렇기만 해? 최루탄, 사과탄… 그 매캐한 냄새는 또 얼마나 고약한지 눈물 콧물 다 쏟고 다녔지요. 지금 하는 촛불집회는 그때 비하면 투쟁도 아니야. 그냥 젊은 사람들 즐기는 문화행사지."

그는 이 말 끝에 "아무리 늙고 허리가 휘어도 내 한 사람이 민주주의에 도움이 된다면 몸뚱이를 아낄 수 없지…"라며 허공에 대고 계면쩍게 웃었다.

남들보다 먼저 집회 현장에 도착하고 더 큰 목소리로 '민주수호' '탄핵무효'를 외치고 싶다는 박 이사장. 그가 27일 앞으로 바짝 다가선 총선을 앞두고 던진 각오는 이렇다.

"나는 그냥 국민의 한 사람이에요. 종철이 아버지고 또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눈을 감은 영령들을 위로하는 민주공원도 짓고 해야하지만, 그래도 난 일반 시민이에요. 그런 몫으로 한 마디 하고 싶다고. 민주주의를 거역한 그 사람들, 이번엔 정말 국민들의 힘을 똑똑히 보여주고 싶어요. 물론 헌재에서 빠른 시간 안에 탄핵을 원천 무효하라고 판결내주면 금상첨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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