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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옌으로 건너가는 철선이 다가오고 있다.
ⓒ KOKI
충북 제천군 덕산면 도전리. 지금이야 충주호반 잘 뚫린 포장길을 씽씽 달려 갈 수 있는 곳이지만, 불과 15년 전만 해도 울퉁불퉁 꼬불꼬불 비포장길을 먼지 풀풀 날리며 꽤 오래 달려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산골이다 보니 완행버스를 타고 거쳐가는 사람들이 아니면 외지인들의 출입이 거의 없던 동네였다. 간혹 청주나 서울 번호판을 단 자동차만 보여도 유심히 살펴 보던 것이 우리마을 사람들의 첫인사. 무슨 옷을 입었고 어디를 가는지, 그저 궁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유럽에 간 우리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동물원의 원숭이 정도는 아니었어도, 한 겨울에 캠핑카를 타고 여행한다는 것이 유럽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자연히 우리에게 시선이 몰렸다. 특히 동양인이 캠핑카 타고 여행하는 모습은 드물기에 현지인의 시선이 더욱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프랑크푸르트나 쾰른, 암스테르담 같은 대도시는 괜찮았다. 특히 쾰른과 암스테르담은 개방적이라 흑·백·황 다양한 유럽인들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하옌은 달랐다.

배를 타고 들어간 하옌

▲ 철선은 완전 무동력선이었다. 발판을 내리고 있는 사공.
ⓒ KOKI
'허풍선이 남작'의 고향 보덴베르더로 가는 길이었다. 그다지 맑지는 않지만 흐르는 모습이 참 평화로워 보이는 베저강을 따라 남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비가 개어 산뜻한 하늘 아래 83번 국도를 달리다 길 왼쪽으로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목장을 지나게 되었다.

제주도가 아니면 한국에서 말을 보기란 쉽지 않은 일. 어차피 급할 것도 없고 말 구경이나 한 번 하고 가자고 했다. 베저강 옆에 나무로 허름하게 지은 목장에는 갈색 윤기가 흐르는 말 몇 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양을 많이 보았는데 이곳에서는 말들이 종종 보인다.

그런데 목장 옆에 작지만 있을 것은 다 있어보이는 선착장이 있었다. 그 앞에 서있는 표지판은 하옌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는 곳이라 설명하고 있었다. 실제로 강 건너편에 배 한 척이 떠있는 것이 보였다. 운치 있는 나룻배가 아니라 철선이었다는 것이 걸렸지만 매인 줄을 따라 강을 건너는 완전한 무동력선이었다.

이렇게 말들이 많고 강과 목초지가 잘 어울려 있는 마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마을에 한 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선착장 벨을 누르자 강 저편에서 철선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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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그러나 우리에게는 낯선 농촌의 풍경

▲ 끝없이 이어지는 들판. 그저 풍요롭기만 한 모습이다.
ⓒ KOKI
'피리 부는 사나이'의 배경 하멜른에서 남쪽으로 14km 더 달려 도착한 하옌은 웬만한 여행책에는 나오지 않는 그저 평범한 농촌 마을이다. 마을 한 가운데 교회가 있고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10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자그마한 동네.

마을 외곽은 높지 않은 구릉과 끝없는 들판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이어져 있다. 겨울이라 그런지 곡식이 열린 것은 아니지만 마을에서 만난 한 우체부는 이 마을의 기반이 농업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 한쪽 구석에 큼직한 공동 농기구 보관소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일행은 흩어져,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독일의 농촌 마을 하옌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한국이라는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에서 온 이들에게는 정말 특별한 마을일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씨만 뿌려 두면 혼자서도 잘 자랄 것 같고, 풀어만 놓으면 자기가 먹고 싶은 풀 맘껏 뜯을 수 있을 것처럼 풍요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을을 거닐 던 중 만난 한 노인이 "지금은 사람 손으로 하는 게 거의 없다"고 했는데 그 정도로 대부분 농사일을 기계로 하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평범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농촌 풍경.

또 이들은 공동 농기구 보관소는 차치하고서라도 개인 트랙터 보관소를 둘 정도로 고가의 농기계를 갖고 있었고, 너른 마당에는 승용차도 한두 대씩 있었다. "도시 지역에 비해 소득 수준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며 "독일 통일 전 동독 농촌 지역과 여실한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이라는 것이 이 노인의 설명이었다.

여기서 되살아나는 기억 하나. 시집을 오기 전까지는 흙 한 번 만져본 적이 없었다지만 여섯 남매를 홀로 농사지어 키워낸 나의 할머니. 당신은 밭일거리가 없는 날이면 말린 고사리와 깐 은행을 갖고 충주 공설시장에 나갔다고 한다. 한겨울 시장 바닥은 결코 따뜻하지 않지만 겨울에 아무 일도 안 하고 집에 있는 것이 뭣해 나가는 것이라면서.

지금이야 '투-잡'을 그만두었다지만 "이웃에는 농사도 짓고 품팔이도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다"는 것이 당신의 말씀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정부 농업 정책만 믿고 있다가 쪽박 차는 사람 여럿 봤다"고. 그런 당신에게 이 풍경을 솔직하게 전해도 될까? 열악한 우리 농촌의 실상이 떠오르면서 왠지 모를 씁쓸함이 가시지 않았다.

▲ 때묻지 않는 주택들과 자동차, 트랙터.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이 그렇게 인상적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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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도 상당히 정돈된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거쳐온 적잖은 독일 마을들이 그랬지만 차도와 인도 어디에도 쓰레기는 보이지 않았다. 집들도 때가 탄 구석은 보이지 않고 꽃과 화초로 꾸며 놓은 화단 도 무척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무리 독일이라고 해도 도시 지역에서는 인도에 쓰레기도 떨어져 있고 일부 지역은 슬럼화 되어 있기도 했다. 하지만 하옌에서는 당최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너무 깨끗해서 부담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여권 좀 봅시다"

▲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마을 출신자를 기리는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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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구경을 어느 정도 했다 싶어 보덴베르더로 가야할 것이 떠올라 부랴부랴 선착장으로 향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마을 출신자를 기리는 추모비를 지나 도착한 선착장. 마을의 조용한 분위기를 그 누구도 깨면 안 된다는 듯 건너올 때와 마찬가지로 선착장에는 사공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없었다.

바로 그때. 저쪽에서 폴리자이(경찰)차가 좁은 마을길을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사이렌은 켜지 않았지만 경광등을 번쩍거리며 헤드라이트를 깜빡 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이 배에 이상이 있던 걸까? 아니면 사공에게 문제가 있던 것일까? 이곳 선착장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는데 경찰차는 분명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쇼우 미 유어 패스포트…(여권 좀 봅시다)"

차에서 내린 검은색 가죽 점퍼 차림의 경찰관은 딱딱한 영어로 우리에게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다. 인천공항에서 한 번,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을 때 한 번 꺼내본 이후 펴본 일이 없는 여권이다. 그런데 왜 경찰관이, 그것도 조용하기만 한 하옌에서 보자고 하는 것일까?

처음엔 어리둥절, 혹시 우리가 뭐 잘못한 게 없나 하는 생각에 여러 상황들을 되짚어 보았다. 지금까지 25년.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모르는 길 물어본 것 외에는 경찰관과 말도 한 번 해본 적 없는 순진한 사람이었다. 나뿐만 아니었다. 다들 괜히 여기서 일이 꼬이면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행에 큰 차질이 생기리라는 생각에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 문제의 그 경찰관과 해얼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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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 왜 여권을 보여줘야 하는지 묻자 그 경찰관 왈, 어떤 마을 사람이 우리를 신고했다는 것이다. 이유? 이상한 남자 네 명이 마을을 기웃거리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유라는 것들이 너무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을 돌아다니는 게 무어 그리 잘못이고, 사진 찍는 것은 또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 독일에서는 겨울에 눈을 쓸지 않아도 신고, 옆집에서 큰 소리만 나도 신고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과장된 측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좀 너무 한 것 아닌가!

그래 불편한 일, 그냥 편하게 생각하자. 아무리 정돈된 하옌이라 한들 이곳도 사람 사는 동네 아닌가. 풍요롭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인적 교류가 그리 많지 않은 시골이었다.

독일인들의 성격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외부인 특히 동양인이 거의 보이지 않는 이 마을에 사내 4명이 사진기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신고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경찰 신고는 너무 한 거 아니야? 덕산에서는 신고까지는 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 하옌. 이곳 역시 풍요롭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인적 교류가 그리 많지 않은 시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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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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