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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는 김밥을 맙니다. 김밥집에서 일을 합니다. 그것도 야간에 말입니다.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힘이드는 일이었습니다. 김밥을 마는 일보다 밤을 지샌다는 것이 사람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가게이기 때문에 눈코뜰새 없이 바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손님이 많이 없는 것이 사람을 더욱 늘어지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더군요.

일직선으로 늘어선 길가에 10여 미터를 두고 김밥집이 3개나 있습니다. 옆의 다른 가게들은 이름들도 거창하여 김밥으로 '천국'도 만들고 '왕국'도 만들었는데, 제가 일하는 가게는 '마을'밖에 만들지 못했습니다. 가게 크기 만큼이나 소박한 이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게에서 제공하는 메뉴는 무려 74가지나 됩니다. 사실 가지수는 많지만 분류를 해보면 그렇게 많은 종류는 아닙니다. 기본 라면에 떡 넣으면 떡 라면 되고, 그 떡으로 떡국 만들고, 떡국에 넣는 육수로 칼국수 만들고… 이런 식입니다.

제가 처음 가서 한 일은 김밥을 마는 것이었습니다. 위생을 고려하여 비닐 장갑을 끼고 양념된 밥을 한 주먹 꺼내들어 김 위에 넣고 단무지, 당근, 시금치, 게맛살, 햄, 계란을 넣고 돌돌돌 마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조 김밥은 1000원에 팔립니다. 시범을 보여준 사장님은 쉽게 쉽게 마는데, 제가 마니 터져버립니다. 슬쩍 사장 눈치가 보입니다.

기본에 깻잎을 깔고 참치를 넣으면 참치 김밥이 되고 치즈를 넣으면 치즈 김밥이 됩니다. 이런 '특별' 깁밥들은 원조 김밥의 두배의 가격으로 팔립니다. 미리 말아둔 김밥들은 밥이랑 김이랑 잘 붙어서 썰기가 편한데, 이렇게 즉석에서 만들어진 특별 김밥들은 썰기가 참 힘이 듭니다.

제가 하나를 써니 터져버립니다. 참치와 함께 마요네즈가 튀어 나옵니다. 결국 사고를 친 것입니다. 마음은 급한데 손은 따라주지 않고 가슴은 타버립니다. 그 김밥은 저의 입으로 그냥 들어가 버렸습니다.

한 일주일 지나니 속도도 붙고 요령도 생깁니다. 밥통에서 양념된 밥을 꺼낼 때부터 손놀림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김 위에 밥을 펼 때도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김밥들의 크기도 일정해 지고 모양도 찌그러지지 않고 동그랗게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놓여짐 김밥들을 보고 있으면 괜시리 마음이 좋아집니다. 하던 일이 잘되면 계속 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몇개를 더 말아놓으니 그만 말라는 사장님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말아논 김밥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이번에는 단무지를 포장하러 갑니다.

한 봉지안에 4개씩 넣어 싸는 일인데, 김밥이나 만두를 사가시는 손님들에게 싸주는 것이지요. 사장님은 자신이 개발한 방법이라면서 바람이 들어가 있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포장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매듭짓는 것이 다르지는 않는데, 매듭을 짓기전에 몇 번을 더 감아야 합니다. 일이 더 많은 것이지요. 그렇게 해야 단무지의 물이 흘러내리지 않고, 모양도 이쁘게 된다고 합니다. 그 방법을 알아낸 사장님은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보입니다. 사실 제가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는데 말입니다.

장사가 안되면 일하는 사람도 힘이 듭니다. 일하는 사람의 잘못은 아닌데, 사장님의 한숨 소리에 걸레질을 한번 더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분위기 파악못하고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었습니다. 커피도 한잔 타서 말입니다.

사장님이 퇴근하고 나자 주방의 이모가 와서 조용히 말을 합니다. 아무리 손님이 없다고 해도 그렇게 있으면 좋아할 사장이 어디 있겠냐며, 테이블 닦고, 정리 정돈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내가 사장이라도 못마땅 할것 같기도 했습니다. 닦았던 테이블을 다시 닦아봅니다. 그러나 쓸데 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 꿎은 김밥에 다시 손을 댑니다. 말아놓았던 김밥을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하는 것이지요. 터진 부분을 보수하기도 하구요.

그렇게 아침이 오면 퇴근 준비를 합니다. 오늘도 매상이 얼마되지 않습니다. 새벽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일찍 학교가는 학생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7시에 퇴근을 하고 집으로 옵니다. 바로 잠이 오면 좋을 텐데 잠이 안옵니다. 원래 낮 시간을 활용하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결국 2시까지 빈둥거리다 잠이 듭니다. 그래서 일어나면 8시. 부랴부량 씻고 출근을 합니다. 또 김밥을 말고 별다르지 않은 하루가 밤 9시가 되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제 저의 하루를 마감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깊은 잠을 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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